# 다독임_오은 산문집_난다.
몇 년 전에 이 책을 시장의 작은 독립서점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오은 작가님’을 몰랐고, 책의 표지만으로 귀여워서 읽을까, 말까 여러 번 책을 잡았다 놓았다 했더랬다. 그러나 그냥 읽지 않았던 책. 그때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더 일찍 ‘오은 작가님’의 책을 접하고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책을 읽게 되었으니, 그것으로도 좋다. 편하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얼마 전에 읽은 ‘초록을 입고/출판사 난다’가 참 좋았기에 이번 책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아, 오은 작가님 책이다’라며 선택할 수 있었다. 주말 본가로 내려가는 동안, 본가에서 뒹굴뒹굴하면서. 하루 만에 다 읽은 책이다. 쉽고 편하게 읽힌다. 지난번 책에서도 느꼈는데, 정말 언어를 잘 활용하여 언어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이 되었다. 백지에 단어 하나를 써 놓고 한참을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 아침이면 국어사전을 펼쳐 오늘의 단어를 발견하는 작가의 모습.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모습을 찾아가는 작가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수업에서도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단어에서 발견하는 삶, 좀 더 고민해 보아야겠다.
제목, ‘다독임’ 단어가 주는 위로가 있었다. 아마 지금의 내 상황 가운데 ‘다독임’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늘 시의적절한 위로와 필요를 채워주시는 나보다 더 크고 높으신 어떤 존재에 대한 인정이 내 삶에는 있기 때문에, 그때 읽지 않고 지금 읽게 된 것도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순간 돌아봄이 돌봄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가족을 돌보고 가까운 이들을 챙기고 반려식물에 물을 주고 단어를 돌보며 책을 껴안는 일. 그것은 나의 숨통을 틔우는 일이기도 했다. 한밤의 다독임에는 늘 책이 있었다. 다독(多讀)하는 일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나와는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사람에게조차 눈길이 갔다. 나도 모르게 다독다독 감싸고 달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거듭하고 있었다. (6쪽)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갔다. 한밤의 다독임에 늘 책이 있었다는 작가, 나에게도 다독임에는 책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 읽는 일이 때로는 쉼이고, 때로는 위로이며 때로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이었으며, 때로는 애끓는 마음을 잠재우는 이성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한 ‘다독임’을 느꼈다. 참 좋다.
1. 마음에 틈을 내는 일, 작은 것들의 반짝임.
여유는 크게 두 가지 층위에서 이야기된다. 먼저 물질적 여유, 공간적 여유, 시간적 여유처럼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으로 규정되는 여유가 있다. (중략) 여유는 마음의 상태를 얘기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마음의 상태를 지칭하긴 했지만 그 마음이 드러나는 표정, 태도, 행동 등을 통해 여유를 가늠할 수 있다. (중략)
여유를 만드는 일, 스스로의 마음에 틈을 내는 일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다. 쉬는 것이 죄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여유를 능동적으로 찾는 일은 언뜻 뒷걸음질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유를 낼 때에야,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한발 물러섰을 때에야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는 일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도 가능해진다. (111쪽)
얼마 전에 김현 시인을 만났다. 그는 매해 새해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작년의 계획을 듣는 순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늦잠을 더 자주 자고, 야식을 종종 먹고, 줄넘기를 하다 중도에 포기하고, 마감 같은 거 일주일씩은 늦을 것, 짝꿍에게는 더 징징대고 인간관계는 더 복잡해질 것. 그러니까 마음을 다해 대충 살 것.” 그리고 그는 작년 계획의 상당수를 달성했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잠들기 전에 그 계획들이 자꾸 떠올랐다. 거창하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사람임을 자각하는 순간들은 다 저기에 있었다. (218쪽)
최근 계속 사고가 생겼다.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스려도, 도통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밤에 유턴을 하다가, 길을 착각하고 벽에 충돌하여 차가 부서졌으며, 당장에 두 시간 거리의 출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체력은 바닥이 났고, 비까지 내려, 오며 가는 길들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누수로 아랫집에서 올라왔고, 원인이 우리 집에 있음을 발견했다. 공사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그 사이의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마음에 틈이 없었다. 이미 자리 잡은 짜증은 분노로, 또 구질구질한 삶에 대한 비하로 이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오래가지 않았다.
작가는 두 번째 여유의 경우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마음에 틈을 내는 훈련.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도 마음에 틈을 내는 훈련임을 잘 알고 있다. 한발 물러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인 것들이 더 많았다. 사고가 났지만 아이도, 나도, 주변 사람들도 다치지 않았고, 운전자 보험의 특약으로 일상생활 배상 적용이 되어 매뉴얼 대로 하나하나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스스로의 마음에 틈을 내기 위해선, 긍정의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사건을 사건으로 보지 않고 삶의 불행으로 보는 것, 그것이 여유를 앗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일 앞에 담대하게, 괜찮단 마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책 속 김현 작가의 새해 계획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작은 성취의 기쁨을 누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야겠다.
2. 곁을 내어 주는 좋은 사람, 다독임
김소연의 『한 글자 사전』(마음산책, 2018)에는 한 글자로 된 다양한 단어가 등장한다. 나는 ‘곁’이라는 단어에 오래 머물렀다. “‘옆’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나와 옆’, 그 사이의 영역. 그러므로 나 자신은 결코 차지할 수 없는 장소이자, 나 이외의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장소, 동료와 나는 서로 옆을 내어주는 것에 가깝고, 친구와 나는 곁을 내어주는 것에 가깝다.” 이처럼 나의 곁과 너의 곁이 늘 같을 수는 없다. 관계 사이의 오해는 사실상 ‘옆’을 ‘곁’으로 착각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옆’이라는 말이 공간적 거리를 지칭한다면, ‘곁’이라는 말은 그 안에 심리적 거리를 포함한다. 옆에 있다고 해서 다 가깝다고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곁에는 거리감뿐만 아니라 양감과 질감, 온도와 습도 같은 성질이 다 담겨 있다. 무수한 사람 사이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곁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곁에 다가오지 않았거나 옆에 있는 사람들을 곁에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이 자신의 곁이 꽉 차 있다고, 온기로 가득하다고 느끼기를 바랐다. (204쪽)
김소연 작가의 ‘한 글자 사전’도 읽어봐야겠다. 예전에 아이들이랑 한 글자 게임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오는 단어들은 참 원초적인 것들 뿐이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곁’이라는 단어,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곁의 정의가 참 좋다. ‘나와 옆, 그 사이의 영역.’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워낙 관계가 좁은 편이라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곁을 내준, 또 곁을 내어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책을 읽으면서 그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용한 다독임을 느꼈다. 존재 만으로도 참 크나큰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삶이 나에게 준 복이며, 선물이다.
가만가만 생각해 본다. 나에게 참 소중했던 ‘다독임’의 경험에 대하여. 정말 많았구나,라는 마음에 감사함이 먼저 든다. 사람을 너무 미워하여, 내 바닥을 경험하고 스스로에게 혐오를 느끼고 있을 때, 그런데도 미워하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 사람 저마다의 행과 불행이 있음을 알려주었던 선생님, 현명한 조언 덕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다독임이었다. 빠져나오려 하면 더 꽉 껴안아 숨 막히도록 안아주는 그 사람의 마음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다독임이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며 무슨 일이든 격한 공감을 아끼지 않던 그 친구의 위로도 나에겐 다독임이었다. 옆이 아니라 곁을 내어준,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다.
3. 정리
쉬운 책이다. 작가가 펼쳐 놓은 일화 중 작가의 아버지가 작가에게 글이 쉬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쉽고 재미있는 글이다. 읽고 나면 입 안에서 언어들이 맴돌아 간질간질한 책이다. 잘 읽었다. 나는 또 하나의 다독임을 선물 받는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마음의 틈을 내기 위해, 여유를 가지기 위해 나는 어떤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누리는 여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나에게 곁을 내어 준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