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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14.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X 황선우 지음_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by 벼리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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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쾌하게,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즐거운 어른(이옥선)’ 책 때문이었다. 책에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그 딸의 책을 찾아보다가 만나게 된 책. 이옥선 작가님의 딸이 김하나 작가님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동기. ‘조립식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한 흥미로움.

최근 열심히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조립식 가족’. 현대 사회의 가족 구성원의 형태는 계속 바뀌고 있으며,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독거노인과 청년세대의 새로운 가족 형태의 등장,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이웃과의 공생, 그런 동거 형태를 ‘조립식 가족’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정말 입에 딱 붙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여자의 한집 살기.


책의 표제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지만, 부제로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부제처럼 이 책은 김하나 작가님과 황선우 작가님이 공동 집필한 책으로, 공동명의의 집에 함께 살게 된 과정과 그 생활을 보여주는 책이다. 읽으면서 오랜만에 참 유쾌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는 뭔가 모를 마음이 가슴에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자신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이해하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 분명 나는 두 여자의 삶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이렇게 위로를 받는 건 뭘까? 책의 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 한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행어에도 진실이 아주 없지 않지만, 내 생각에 타인만한 토털 엔터테인먼트도 없다. 자기만의 세계관, 음악 취향, 관심사와 말솜씨, 표정과 몸짓, 신념과 상상력, 농담의 방식…… 이런 요소들은 그 사람 고유의 분위기와 매력을 형성한다. 물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여행자의 예의를 품을 때, 내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을 거다. (22쪽)

혼자 다니는 닌자 스타일이자 또 언제나 스스로가 뭘 더 해낼 수 있을까에만 전전긍긍하는 범생 기질의 나로서 동거인에게서 발견한 또 한 가지 신기한 부분이 있다. 바로 누군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기뻐하고, 돕는 데 헌신하는 성향이다. 각기 국어와 역사를 가르친 교사 출신 부모님의 피가 흘러서인지,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뭔가를 참 요령 좋게 잘 가르쳐준다. (219쪽)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막연한 어떤 선한 느낌, 그런데 브런치 글을 쓰면서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이 책에 있다는 것. 내가 그것을 배우고 싶어 하고, 지키고 싶어 하며, 그것이 나에게는 참 중요한 가치임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라는 것.


서로 다른 두 여자가 만나 한집에서 산다. 결혼이라는 어떤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동명의의 집에서 서로의 일상과 생활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짐을 한데 모아 함께 살아가는 것.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대학 시절, 기숙사, 하숙, 자취, 그 모든 것을 다 해 보았다. 원체 혼자 밥도 못 먹는 성격이며, 타인과 쉽게 친해지지도 않는 성격에 수업도 누군가와 함께 들어야만 들을 수 있었던 성향이라 함께 다니는 친구가 있는 낮시간은 괜찮았지만, 아침, 저녁으로 혼자 무언가를 해야 했던 시간은 내게 참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래서 하숙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아침이나 저녁 식사 시간에 낯가림이 심해 피해 다녔으며, 기숙사에서도 식당을 혼자 가지 못해 밥을 먹지 못했던 날이 많았다. 그런 내가 방값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자취를 할 때 다른 과 친구와 함께 한 적이 있다. 원래 친했던 사이도 아니었지만 건너 건너 소개를 받아 함께 1학기 동안 자취를 했다. 그때는 고생스러웠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안하다.


어릴 땐,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여행자의 마음을 품지 못했다. 그래서 좁은 방에 친구와 함께 있으면,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내가 먼저 나가버렸으며, 나는 일찍 자는 그 친구의 습관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친구는 술 마시고 들어와 늦게까지 불을 켜 놓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청소며 식사 준비며, 그 친구는 내가 하는 것을 못 미더워했고, 나는 그 친구의 생활비 요구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1학기 만에 우린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나는 자차로 2시간 거리의 통학을 결정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공간을 공유하여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는 다른, 김하나 작가와 황선우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일, 그리고 서로의 멋짐을 발견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구나 느꼈다.

나는, 현재 나의 동거인, 남편에게 어떤 멋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찾아봐야겠다.


2. 잘 싸운다는 것.


잘 산다는 건 곧 잘 싸우는 것이다. 타인과의 입장 차이와 갈등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인 이상 그렇다. 꽤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싸움에 대해서도 오해한 채 살아왔다. 스스로 누구와도 잘 안 싸우는 사람인 줄 알았고, 또 살면서 되도록 싸울 일이 없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큰소리를 내면 다투는 사람들을 보면 뭐가 그렇게나 열을 올릴 일인가 싶기도 했다. 애인이나 친한 친구와 크게 다툴 만한 상황이 오면 언성을 높이는 대신 냉랭한 분위기 속에 좀 일찍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게 내 방식이었다. 혼자가 되었을 때 그 마음을 곱씹으며 삭이거나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면 평정이 돌아오곤 했다. (113쪽)

나중에 심리학에서 나 같은 사람의 애착 관계 형성 양상을 회피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걸 알았다. 공격적으로 말하기보다 부드럽게 둘러서 얘기하고, 마찰이 생길라치면 상황을 외면해 버리기에 독립적이고 쿨해 보이는 이런 사람들은 실은 비겁한 부류다. 실망하기 싫어서 기대하지 않은 척하고, 부딪치기 싫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척하는, 인격이 성숙해서 잘 안 싸우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미숙해서 잘 못 싸우는 사람에 가까웠던 거다. (116쪽)


나 또한 원래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선우 작가님이 쓰신 부분. 황선우 작가님의 생각이 딱 내 생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큰 갈등이 없었다. 그렇게 갈등이 없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먼저 피해서였고, 갈등 상황에 먼저 사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결혼에서의 싸움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남편과의 성향 차이는 그것 그대로 인정하기가 힘들었으며, 손에 꼽히는 몇 번의 큰 싸움은 상처를 크게 남겨, 더 이상의 어떤 기대감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온 평화는 사실 평화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중간 지점을 찾기는 했지만, 내가 원하는 어떤 부분을 충족시킨 것도, 남편이 원하는 모습을 갖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함께 잘 지내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하지만 마음의 밑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는 싸우지 않으려는 어떤 마음, 그것을 더 크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 나름대로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잘 싸운다는 것에 대하여 오래 생각해 보았다. 잘 싸운다는 것, 결국은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을, 잘 싸운다는 것이 오히려 성숙한 인간관계의 한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고 배운다.


3. 정리.


황선우와 나는 여전히 가장 좋은 대화 상대이자 술친구, 운동메이트, 그리고 세 고양이의 돌봄 파트너이자 생업의 동료로서 서로를 믿고, 또 서로에게 책임감을 가지며 잘 지낸다. 한 사람이 집필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를 맞거나 몸이 아플 때면 나머지 한 사람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상대를 돌봐준다. 상대는 그 고마움을 기억했다가 반대의 상황이 되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아직 생활동반자법 제정은 요원한 듯 보이지만, 혼인과 혈연 밖에서도 우리 같은 조립식 가족들은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292쪽)


이 책을 통해 ‘생활동반자법’ 제정에 대하여 관심이 생겼다. 김하나 작가님의 말처럼, 혼인과 혈연 밖에서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역할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다. 가족 아닌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가족이라고 그 역할을 다 해내는 것도 아니란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활동반자가 가족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들에 대한 법적 제도의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봐야겠다.


동거인은 체력이 좋은 데다 천성적으로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마흔이 넘으면 체력과 성실성은 직결된다. 아무리 성실하고 싶어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중략)

집안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사는 건 잔소리쟁이가 사는 것보다 천배는 동기 부여가 된다. 그렇게 동거인 눈치가 보여 꾸역꾸역 뭔가를 하더라도 결과는 모두 내 것으로 쌓인다. 더 나아진 체력, 더 많은 성과가 나에게 더 큰 뿌듯함과 동력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나에게 본보기가 되는 동거인의 존재 자체가 고맙다. (263쪽)


이 책을 다 읽고는 화장실로 가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날, 새로 산 카디건을 입었는데, 아무래도 요즘의 옷들 길이가 좀 짧다 보니 엉덩이가 신경이 쓰였다. 늘 엉덩이까지 덮이는 긴 옷들을 입는 편이라 그날도 긴 옷으로 엉덩이를 가리고 카디건을 덧입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긴 옷을 청바지 안에 넣어 입고 짧은 카디건 그대로 입었다.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 책이 그런 용기를 주는 책이다.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멘털을 관리해 주는 책도 아니며,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도 아니었지만,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들어 주는 책. 성실한 어떤 주변인의 모습을, 하고 싶은 것들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책. 참 좋은 책이다.

책의 표현을 빌려 존경할 만한 어떤 사람을 보았을 때 더 동기부여가 되는 것, 이 책이 나에게는 그런 동기부여가 되는 책이었다. 잘 읽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더 가족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관계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가족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산 경험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계기로 함께 살게 되었는지,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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