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5회 대상 수상작 끝없는 밤_손보미 외_주식회사 교보문고
젊은 작가상, 이상문학상, 그리고 이효석 문학상 등등. 사실 우리 문학계에 있는 많은, 문학상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종류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몇 개 챙겨서 읽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효석 문학상이다. 매년 발표되는 단편 중에서 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수상작들을 모아 놓은 책. 워낙 단편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심사평을 읽으면서 내가 이해한 어떤 장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읽히는지 발견하는 것도 좋으며, 작가의 수상소감을 읽는 것도 재미있어 수상집을 읽는 것이 나는 좋다.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올해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소설가는 어떤 소재로, 또는 어떤 주제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표현하였으며,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기대감을 가지고 읽은 책이다. 재미있었다. 어떤 소설은 너무 마음이 아픈데, 그저 담담하게 쓰이어 오히려 그 슬픔이 배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다정하게 살고 싶다 만들어 주었고, 어떤 소설은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 현상을 담고 있기도 했으며, 어떤 소설은 나의 장례식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었다.
역시, 소설은 힘이 세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해의 기회를 마련해 주며, 마음에 품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도 해 준다.
정체성 정치는 사회적인 화두만큼이나 문학의 중요한 화두이며, 노골적인 형태에서 점점 더 세련된 형태로 변화하며 오늘날 소설의 구성은 물론 그 독해에까지 변화를 요구했다. 젠더와 계급, 직업과 세대 등으로 전면화된 정체성은 소설 인물을 몇 가지 대표성으로 단순화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허구와 현실 사이의 명확한 경계 이상으로 소설을 읽는 일이 독자의 근본적인 현실과 교차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정체성 개념의 대두로 인해 근대문학으로서의 자기에 대한 개념이 소설에서 희미해지거나 해체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우리는 자기라는 개념을 포기하기 어렵다. 허구적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삶에서도 우리는 선택과 그 결과, 연속적인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적극적 역할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사평 중)
심사평을 읽고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자기’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정체성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다. 이 수상집에도 다양한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선택과 결과, 연속적인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적극적 역할’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를 찾아가는 일.
1.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삶
그녀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콕콕 쑤시냐고? 쓰리냐고? 꼬이는 것 같냐고? 이 모든 것들이 구분 가능한 고통인가?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걸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통의 종류를 다 구분할 수 있나?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있나? 어른이 되면 그런 게 가능해지나?
아니었다.
아, 어쩌면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도 아픔을 언어로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몇 년 전 갑자기 어깨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정형외과를 찾아갔을 때, 의사는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찌르듯이 아픈가요? 찌릿찌릿한가요? 근육이 뭉친 것 같나요?” 그녀는 항복하듯, 비굴하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119쪽)/ 천생연분_손보미
불륜. 참 다루기 힘든 주제다. 나도 피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책에서 많이 다루고 있으며, 요즘 들어 유난히 잘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연애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워낙 좋아하여, 연애의 참견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기도 하고, 딸아이의 이십 대 연애에 마치 내 일처럼 감정 이입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불륜’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랑에 어떤 도덕적 기준을 들어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나는.
사랑이 전부였던 이십 대의 어떤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결혼한 지 이십오 년이 다 되어가고, 단단한 책임감은 있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도, 사랑이 아니라 말하기에도 뭔가 조금 애매한 감정 속에 쌓일 때도 있으며, 전혀 사랑은 아니지만 관계의 깊이로 인해 정 비슷한 어떤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번 2024년 이효석 문학상의 대상 수상작은 손보미 작가님의 ‘끝없는 밤’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여자. 남편과 함께 요트를 탔다가 요트의 침몰로 인해 구조를 기다리면서 발견하게 되는 통증의 원인, 불륜 관계였던 수의사에 대한 생각의 왜곡. 반려견의 죽음과 수의사의 죽음. 끝없이 생각이 이어지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함께 실려 있는 대상 수상 작가의 또 다른 소설 한 편. ‘천생연분’. 부모의 이혼, 학창 시절 양호선생님과의 만남, 그리고 실상은 볼 것 없는 어떤 남자와의 비도덕적인 사랑.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결국은 본처에게도 돌아가는 남자와의 만남과 헤어짐. 다양한 사건 속에서 ‘길을 잃은’ 여자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통증’을 느낀 여자는 통증의 원인을 발견하기도 한다. 결국, 선택과 결과, 자기 삶의 의미 구성. 소설이 보여주는 삶이다.
나도 소설의 인용된 부분처럼 아픔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통증을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가 어떻게 얼마만큼 아픈지 설명하지 못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 상실도, 사랑도.
내가 이제껏 읽은 소설들, 소설 속 인물이 느끼는 상실감과 괴로움들, 삶을 살아간다는 건 무언가를 계속 잃어가는 과정이야,라고 나를 읊조리게 했던 순간들. 나는 소설을 통해 그런 것들을 배웠다고 여겼고, 소설을 통해 세계 도처에 숨죽이고 있는 상실감과 괴로움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쩌면 내 소설을 통해 그런 것들을 전달하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진실된’ 반응을 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중략) ‘진짜’ 상실을 겪지 못한 내가 제멋대로 ‘겪었다고’ 믿은 것들. 내가 소설을 통해 배웠다고 믿었던 것들은 착각이었고, 내가 쓴 것들은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그래서 소설을 쓰게 게 싫었다.(그래도 써야 했다). (149쪽) - 대상 수상작가 수상소감 중
수상 작가의 소감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소설은 결국 허구적 인물의 삶이고, 소설을 통해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고 믿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믿지만 내가 겪지 않은 일들이 주는 한계임을 온전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의 힘을 믿는다. 어쩌면 폭풍우 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 노력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소설이 보여주는 인물의 삶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기에.
2. 담담
내가 발작적인 울음을 터뜨리자 은석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내 뺨에 번진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나를 일으켜 앉히고는 가만히 끌어안았다. 한번 터져버린 울음은 멈춰지지 않았고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인가를, 구차한 변명이나 그를 안심시킬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말다운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오열하며 온몸을 떠는 나를 꽉 껴안은 채로 괜찮아요, 혀재 씨, 괜찮아요, 하고 말했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뻔뻔하게도 그 말에 기대고 싶었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싶었다. 그때 은석이 내게서 뭔가를 알아차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타고난 다정함이, 섣부르지 않은 태도가 내게로 흘러들어왔을 뿐. (305쪽), -담담, 안윤
수상작 중 가장 편하게 읽은 단편이다. 안윤 작가님의 ‘담담’. 소설을 다 읽고는 ‘타고난 다정함, 섣부르지 않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정말 되고 싶었다. 하지만 ‘타고난’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글렀다. 타고나기를 다정하진 않을 것 같기에.
소설은 아주 오래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 새로운 만남, 예전 연인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랜만에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사랑을 경험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 제목처럼 ‘담담’한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사실, 담담하지 않은 시간과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고백처럼,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나의 위로는 약하고 힘이 없다. 위로를 잘 못하겠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점점 사람들의 슬픔을 마주하여 위로하는데 힘겨움이 든다.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하나,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담담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담담.
얼마 전 남편이 ‘명예퇴직’ 이야기를 꺼냈다. 더 이상 직장을 다니고 싶지 않으며,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회사 생활이 외롭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남편의 말이 오로지 진심으로 다가와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 그렇게 해.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렇게 말하고는 내내 가슴이 요동쳤다. 하지만 신청한 명예퇴직은 수락되지 않았고, 남편은 또 힘겨운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어떤 위로를 해 줄 수 있을까? 특별히 덧댈 말은 없으며, 평소에도 말이 많은 부부가 아니었기에 그냥 여전히 그렇게 지낸다. 다만, 하루에 한 번 전화하던 것을 두 번으로 늘렸다. 출퇴근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집에서 잘 마주치지 못하기에, 퇴근 때 늘 전화를 했는데, 요새는 남편 출근 시간에도 전화를 한다. 나의 질문에 대답은 ‘응, 응, 응’ 밖에 없지만 소소한 일상을 물어봐 주는 것으로 나는 담담하게 위로를 전한다.
3. 정리
요즘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내가 또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고 부서지는 것을 느낀다. 마흔이 넘어서도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는 상상한 적 없지만 삶은 늘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내게 닥쳐온다.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전처럼 누구에 의해서 또는 누구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로지 내게로 온 것, 그뿐이다. 나는 다시 새롭게 흔들리고 부서지고 그런 나를 그러모은다. 누군가의 곁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로 있기 위해서. (315쪽) -담담, 안윤
탕수육과 맥주를 먹으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는 학교 수업 시간 발표 이야기를 하며, 아무런 어둠과 우울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밝음만이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는 말한다. 주어진 여유가 밝음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가 보통 그런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부정적인 어떤 모습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구나. 다행이다.”
아이는 그 사람들이 참 잘 자랐다고도 이야기한다. 나는 아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너도 참 잘 자랐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떤 면들이 그 사람들에게는 있음을 잘 안다. 그러니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말을 아낀다.
앞으로의 나의 모습도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방식과 다른 방법으로 또 흔들리며 부서지며 살아가게 될 것을 안다. 그때 나는 나로 있기 위해 노력하겠지. 담담하게. 나의 아이도, 자신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가지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부러움이 아이의 삶을 망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그러모아 고통스럽지 않게,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 나눠보기]
1)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왜 자신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담담한 위로’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나의 위로 방식은 어떠하며, 또 내가 받았던 위로는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