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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16. 방황하는 소설

# 정지아 외, 창비

by 벼리바라기
방황하는 소설_사진.jpg


이번 주제는 ‘방황’이다. 제목도 ‘방황하는 소설’ 방황을 소재로, 때로는 주제로 다양한 단편 소설들이 엮이어 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이지만, 결국 현실의 이야기임을 발견하게 되는 일, 특히나 이번 주는 마음에 풍랑이 일었다. 정치에 문외한이고 관심조차 많이 없지만,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가결하는 국회의원과 시민들의 모습, 소극적 행동으로 자신의 적극적 마음을 표현하는 군인들의 모습, 탄핵 시위에 참여하는 여러 세대의 모습과 시위의 현장을 보면서 괜스레 감동의 눈물이 났다. 12월 14일, 일련의 과정 가운데 끊임없이 허무해지던 마음과 우울해지던 마음이 방황을 멈추고 다시 일상을 찾아갔다. 그때 읽은 책이 ‘방황하는 소설(창비)’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사회적 공감대를 상실한 개인의 내면을 건조하게 묘사합니다. 이 작품을 쓴 알베르 카뮈는 삶의 부조리란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며, 이러한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기본 조건이라고 역설합니다. 하지만 부조리한 세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며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메말라 갑니다. (중략)

삶은 방황이며 방황은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은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방황하지 않으면 당신은 그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방황은 새로운 발견의 시작입니다. (7쪽) - 엮은이의 말 중.


부조리한 세상의 모습을 보았고, 마음의 방황이 찾아왔으며,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싸움 가운데 있겠지만 결국 더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한 과정임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해했다. 방황과 풍랑 없는 지극히 평온한 삶을 꿈꾸지만 결국은 그건 방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도. 그래서 참 길었고, 또 한편으로는 짧았던 12월 3일부터의 12월 14일까지의 시간.


1. 삶의 전환점이 되는 만남


베이징에서 돌아온 뒤로도 옥주의 날들은 그리 평안하지는 않았다. 자기 자신이 완전히 볼품없는 인간이 된 듯해 좌절했고 사람들과는 늘 가까워졌다 멀어지며 오해를 쌓아 갔다. 그래도 그해 예후이와 함께 보았던 호수를 생각하면, 세상 어디에서는 호수물로 등잔을 밝힐 수도 있다는 얘기를 기꺼이 믿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상심이 아물면서 옥주는 옥주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금 월계동 옥주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못난 자신이 갸륵해질 때까지 걷는 중랑천의 흔하디 흔한 사람으로. (160쪽)_월계동 옥주, 김금희



내 삶의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일상의 루틴을 지키는 것이다. 평일 출근하면 어김없이 50분을 걷는다. 그리고 업무의 시작, 퇴근하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일기를 쓰고,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지극히 단순한 삶. 그런 평온이 좋다. 지겨울 법도 한데 나는 평온함이 주는 안정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업무도 알고 있는 일을 준비해서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갑자기 뭔가가 툭 터지면 아주 많이 당황한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예측 가능한 어떤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그 당황함이 우울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그 순간을 벗어날까?


‘월계동 옥주’는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서 ‘예후이’를 만나 변화된 ‘옥주’의 이야기이다. 무엇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이 변화되었다고 혼란스러웠던 일상이 다시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볼품없는 자신에 대한 좌절과 오해로 이어지는 관계의 불완전함, 상심은 여전하였지만, 옥주는 한국에 돌아와 삶을 이어갈 때 예후이와 함께 보았던 호수를 떠올리면 상심이 아물면서 흔하디 흔한 사람 중 일부로 그렇게 돌아왔다.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방황의 순간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관조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다시 일상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 어쩌면 당시엔 그것이 어떤 큰 깨달음의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 순간의 어떤 선택이 자신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참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워낙 인간관계의 폭이 좁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꺼려하기도 하며,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 아주 오랜 시간,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 그 마음은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어려운 일들을 마주할 때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감사하다.


2. 불안이 만들어내는 어떤 모습.


현태의 불안 증세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종희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아니, 그건 농담이었다. 매일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태에게, 거실에서 쿵쿵 뛰며 게임을 하는 현태에게, 주말이면 기타를 치는 현태에게, 아파트 사람들이 다 우릴 싫어해, 특히 아랫집 남자가 우릴 죽일 거야,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174쪽)

현태의 이름이 쓰여 있지도 않은데 현태는 빨간색 스탬프가 찍힌 우편물을 두려워했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시 전 주인을 찾아오는 것이었지만 그 사람들은 종희와 현태를 의심했다. 뭔가를 숨겨 두었을 거라 생각하는지 전 주인을 전혀 모른다고 했는데도 계속 캐물었다. 그 사람들이 찾는 게 실은 나인 것은 아닐까? 현태는 다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종희가 뭐라 말해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이 그렇게까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 현태는 어떤 경로든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자길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종희는 현태가 낫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했다. 돌아보면 꾸준히 나빠지는 선택만을 해 온 것 같았다. (178쪽) 먼바다 쪽으로_김지연


관찰 예능에서 본 것 같다. 불안으로 인해 생긴 증세들. 더 이상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모든 것이 자기를 공격한다고 믿는 어떤 사람들의 모습. 그 곁을 지키는 부모나 연인, 형제자매의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움에 마음이 힘들었다.


‘먼바다 쪽으로(김지연)’는 불안장애가 생긴 남편과 그를 지켜보는 아내의 이야기이다. 누군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생활의 터전을 옮긴다. 하지만 소설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망상의 시작은 정말 별일 아닌 부부의 대화였다. 누구나, 정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떤 농담과 협박의 그 중간 언어. 사실 그것이 원인이 아니겠지만, 남편의 불안증세를 바라보는 아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사용한 잘못된 말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살면서 한 번쯤은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 생각으로 인해 타인을 미워하기도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해 집 밖을 나가지 못하기도 하며, 스스로가 판 동굴에 숨기도 한다. 그것을 벗어나기란 쉽지가 않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그렇다. 나는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도무지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순간, 그런 순간에 나는 스스로 참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 ‘현태’의 불안 증세도 일을 그만두고 난 뒤, 더 심해졌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불안을 가져왔던 것은 아닐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나열되는 어떤 매뉴얼의 과정처럼, 불안도 그 과정을 따라 했을 때 벗어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모든 증세가 사람마다 다르고, 극복의 과정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안다. 적어도 나는 불안이 엄습해 올 때, 그 불안이 나를 잠식하여 우울을 가져올 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음을 인정하는 편이다. 불안의 수용이 아니라, 도전하지 않는 것, 한편으론 어떤 일이든 쉽게 포기하는 것. 그래서 불안을 벗어나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발전이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나의 불안보다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필요한 사람이다.


3. 정리

‘방황하는 소설’을 읽고 오히려 이리저리 부유하던 마음이 차츰 가라앉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방황 가운데 살고 있구나, 그런 마음도 들었으며, 나의 문제가 가장 큰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란 생각에 조금은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나는 마음의 방황보다 상황에서 생기는 우울감에 휩싸여 있다. 크게 한숨을 내 쉬어 보고 이것저것 좋아하는 과자를 먹어 보았지만, 마음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는다.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함을, 늘 하던 것을 그대로 해야 함을 느낀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떤 일이지만, 선한 타인의 도움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임을,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또 산다.


덧붙임.

2024년도가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늘 저의 한해는 3월에 시작하여, 2월에 끝났기에, 사실 2024년도가 끝나고 2025년도가 다가온다는 것도 크게 실감 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늙음을 자각하면서도 성실히 브런치 글을 써왔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참 뿌듯합니다. 2024년도에도 저는 열심히 책을 읽었고, 생각했으며, 방황의 시간을 잘 살아냈습니다.

학교 방학 시기를 즈음하여 저도 글쓰기에 방학을 가지려 합니다. 물론 책 읽기에는 방학이 없겠지만, 그래도 따뜻한 봄날이 오면, 다시 겨울에 읽었던 책들의 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겠습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최근 가장 방황했던 시기는 언제입니까? 무엇이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고, 그 방황의 과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불안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나의 불안 증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또는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 있다면 서로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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