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운 삶을 감량하는 방법

'싯다르타'를 읽고

by pinggu

'내가 이렇게 고통받으면서까지 살아야 할까? 이전의 잘못된 선택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닐까?'

올해 들어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들은 생각들이다.

작년 이맘때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며 생각한 것과 다른 직무를 배정받고, 하루종일 수십 통의 전화에 시달리고 욕받이로 전락한 내 신세를 한탄한 올 한해.

일이 조금만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장난식으로 '죽고싶다'를 입에 달던 나였는데, 오죽했으면 머릿속에 살고싶다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어떤 삶이든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존재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결국 퇴사하고 아예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선택했는데, 한계라고 느꼈던 버거운 순간들이 모여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우여곡절로 가득한 올 한해, 한창 힘들때 읽은 책들 중 유난히 마음깊이 다가오는 책이 있었으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부처라는 모티프를 사용해 한 인물의 인생과 깨달음을 풀어낸 소설인데, 주인공 싯다르타가 깨닫는 것들이 우리 인간의 삶과 정말 깊게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1. 실존과 본질 사이에서


싯다르타는 자아와 세상의 본질을 추구하다, 결국 그 모든 것은 허상이고 본질을 좇다가 당장 눈앞 실제의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함을 알게 된다.

자아와 세계의 '본질'을 추구하던 싯다르타의 자세는, 삶에 어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목표를 위해 달리는 우리네 삶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보편적인 것'(싯다르타는 본질, 우리는 정답)을 갈구하는 데서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철저히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단식하고, 수행하고, 명상하다가 마침내 그런 것보다 지금 눈앞의 꽃 한송이, 따스한 햇살을 즐기는게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속된 것'이라고 여기고 배경으로만 치부했던 눈앞의 세계야말로 스스로가 집중해야 하는 것.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에 보편적인 기준(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추구하는 목표지향적인 자세가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자세가 너무 굳건하면 자기 목표 이외의 것들을 모조리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초중고 12년을 수단으로 삼고, 좋은 기업에 들어가겠다고 대학을 수단으로 삼고, 자신의 승진을 위해 부하직원을 수단으로 삼고, 자신의 노후와 대리만족을 위해 자식을 수단으로 삼는 것.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수단이 되어보기도 하고, 대상을 수단으로 삼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삶을 팍팍하고 버겁다고 느끼는 건, 목표지향적인 태도가 세계에 너무 두껍게 깔려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삶은 이래야 해'라는 기준을 잡고, 이를 목표로 삼아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는 삶.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꺾이기 마련이다. 상술했듯 어떤 삶이든 한번씩은 자기 한계와 부딪히고 존재를 위협받는 순간이 생기기 때문에.

이럴 때야말로 한번씩 '눈앞의 것'에 집중하며 버거웠던 삶을 한층 가볍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2. 강물처럼 흐르는 인생


싯다르타는 바주데바라는 뱃사공과 함께 살며 강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모두가 강물이 되었다. 모두가 강이 되어 그리움에 사무쳐서, 갈구하면서, 고통스러워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는 책의 구절처럼,

강에 흐르는 물줄기는 그 흐름에 따라 바다, 호수, 폭포 등 각자의 목표를 향해 흐른다. 목표에 다다른 물줄기는 증발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또 비가 되어 다시금 강줄기를 이루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흐른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물의 순환이다.


물이 강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하고 구름일 때도 있는 것처럼, 우리도 어떤 형상이든 계속 변하는 것이다.

형상이 변하는 것은 세계의 숙명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공 싯다르타 역시 고위 사제 계급의 아들이었다가, 온갖 곳을 떠돌며 수행하는 사문 중 하나였다가, 속세에 찌든 장사꾼이었다가, 뱃사공이 되는 등 형상의 계속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든 형태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강에서 득도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같아서, 물이 순환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듯 내가 어떤 형상으로 삶을 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현재 모습을 만든 과거의 선택도 후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변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덧없는 것이라고 하니 너무 초탈한 것처럼 들리지만;;)

형상적인 것보단 순간에 집중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사랑할 이유를 하나 더 늘리고 우리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몇 안되는 목적 중 하나가 아닐까?



이직을 결정하며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일의 재미나 보람을 느끼지도 못하고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이직하는 곳에 비해 조건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를 읽고 내가 어느 곳에 있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깨닫고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믿음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어차피 뭘 해도 바위와 파도에 부딪힐 거라면, 조건적인 것에 얽매이기보단 더 재미있고 보람찬 일을 하며

내 세계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더 재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아직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판사 유튜브에서 싯다르타에 대해 내린 평가들 중 인상깊게 다가온 것이 있었는데, '삶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책'(이유였는지 방법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었음)이었다.

작가 헤르만 헤세가 깊은 우울증을 겪은 후 나온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작품 속에 진한 깨달음과 해탈의 향기가 묻어있다.

내게는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책'으로 느껴졌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가 한번씩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 그 순간에야말로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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