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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Jun 21. 2023

곰치 국과고래사냥은 추억이다

                  (음주운전 면허증과 불량 육십대 아이돌)

 2016년 10월6일. 초등학교 졸업 오십 주년 동창회 겸 운동회에 참석해 달라는 성화(?)에

못이기는 척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침, 가게의 복잡 했던 일이 해결 되어 여행이라도 가서

쉬고 싶었을 때였기에. 열흘 예정으로 인천 공항을 밟았다. 오륙십년 만에 만남에도 불구하고

기억되는 몇몇 동창들을 끌어안으며 그네들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댔다.


"정애야, 영수야~. "




   육십 여 년 전 우리 모두는 발가벗고 냇가에서 미역도 감고,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몇 번씩 부를 때 까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사방치기’를 뒷동산에 달이 뜰 때까지 같이 놀던 소꿉친구들이었다.

  운동회 당일 우리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수 십 년 전 으로 돌아가서 청백 군으로 나뉘어 기마전, 이어달리기, 줄다리기 등을 헉헉 데며 있는 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는 무승부였다.




운동회 중간 중간 마신 소주와 막걸리.

그러나 코발트 하늘에 해처럼 발그레한 우리들의 얼굴색은 육 십 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정애가 해온 푸짐한 안주는 남자 동창들의 배가 더 나오는데 큰 기여를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운동회가

 끝나고 자연히 우리들 십여 명은 이차를 향해 자리를 옮겼고

 이야기의 중심은 자연스레 내가 되었음은 당연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앞집 옆집 뒷집에서 태어난 우리들.

 내가 중학교를 문안으로 통학 하게 되고 결혼 후 미국으로 갈 때 까지 못 만난 친구들 이다. 세월도 나이는

못 막는다고 했던가. 육십년 전으로 돌아간 우리들은 스스럼없이 자연스레 웃고 떠들며 마셔댔다.

 어쩜 그렇게 소주가 맛있는지, 나는 그날의 소주 맛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새벽 세시쯤 누군가가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고 ‘음주 운전 면허증’이 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의심조차

안한 나는 가자고 외쳤다. 다섯의 늙은 아이들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고래사냥을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수백 번 부른 후 속초 대포 항 에 도착했을 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어떤 의미인줄 모를 눈물들을 저마다 뿌렸다.



 



어시장 한켠 허름한 식당에 자리 잡은 우리는 해장에 좋다는 곰치국을 시켰다. 허여멀건 생김새에 메스꺼움을 느낀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내 상식의 매운탕은 빨간 색이어야 했으므로.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며 맛이나 보라는 동창의 성의의 인사로 한 수저 떠서 목으로 넘겼다. 순간,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황홀한 맛에 빠진 나는

오인분의 곰치국을 혼자 다 먹은듯했고 그 맛에 반해 버렸다. 세상에 그런 맛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 후 우리들은 가출한 불량 학생들처럼 바닷가 모래톱에서 해가 바닷물에 퐁당 빠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쌓인 삶의 무게가 서러워 우리들 모두의 가슴은 더욱 먹먹해졌나보다. 해가 순식간에 바다로 퐁당 빠지는 것을 본 정애와 나는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울었다. 우리의 끝도 저렇게 순간 사라질 것을 느껴서일까. 모두는 소리 없이 또 그렇게 일몰의 해에게 손짓으로 안녕하며 울음을 목으로 삼켰다.

그리고 마시고 또 마셨다. 세상에 있는 모든 소주를 마실 것처럼.



   

그날 새벽 대포항 수평선에 떠오르던 희망의 해와, 일몰 즈음 바다에 퐁당 빠져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 알게 해준 해, 그리고 두 해에게 뿌렸던 눈물은 가슴에 아직 생생하다. 더불어 그날의 소주와 곰치국도 나는 아직 가슴과 목구멍에 기억 하고 있다. 더욱이 음주운전 면허증은 한국의 에피소드 중 최고의 자리를 고수한다.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바다 보러가기 였으니. 지금도 가끔 그때를 하면 생각하면 등에 땀이 난다고 운전했던 용수는 고백한다. 정말 겁 없던 불량 육십 대의 행동을 했던 그날 이었다. 그러나 가슴엔 언제나 열두 살 시절의 꽃을 피우는 우리들이었음은 그때도 또 지금도 여전 할 테다.



   

몇 달 전 오년 만에 속초여행 할 기회가 생겼다. 간 김에 그때 그 집을 찾았다. 추억의 곰치국과 소주가 그리웠기에. 그러나 기억을 되살려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동안 많이 변하기도 했고 난 그때 제 정신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그리운 곰치국맛 을 보기위해 맛 집 을 찾아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아뿔사, 곰치국은 아침에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삼식이 매운탕으로 대신한 그날은 쓸쓸하고 슬펐다. 그래 그런지 소주도 너무 써서 한잔도 못 마셨다. 나의 아쉬움을 눈치 챈 주인은 치즈계란찜을 서비스로 주면서 오후에 올 땐 전화 주면 준비 해놓겠다는 친절함에 꼭 그리하겠노라 약속했다. 애끼 손가락 까지 걸고 왔으니 조만간 꼭 가서 곰치국과 조우를 해야겠다. 물론 소주와 추억을 곁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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