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방인의 시선
2019년 1월 17일. 캐리어 3개와 백팩 1개를 끌고 한국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사실 오스트리아를 오기전 네덜란드에서 1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유럽은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더 겁없이 갈수 있었고 더 준비해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오스트리아? 거기가 어딘데?
오스트리아는 인구 905만이 넘는 나라이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인구수가 작은 나라다. 사실 내가 오스트리아로 오게 될 거라고는 오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다. 사실 내가 20살이 넘어서 한국의 대학이 아닌 네덜란드로 대학을 가게 될 거 라고도 고3인 당시만 해도 상상도 못했다. 그저 남들처럼 한국의 대학에 가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재수를 하던당시 유학 준비도 하고 있었지만 부모님께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냥 되면 좋은 거지 라면서 영어 시험 성적을 제출했고 학교 성적과 공증을 보내서 운이 좋게도 네덜란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어쩔수 없이 금전적 도움을 받아야 할 수 밖에 없었고 어머니께 우선 말씀을 드려봤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보라고 하셨다. 결국 아버지를 설득하는게 가장 큰 문제이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어떻게 말씀 드릴 지 고민만 하다 시간이 흘렀고 그래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아버지 앞에서 내 미래를 프리젠테이션 했다. 내가 왜 유학을 가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 말씀을 드렸고 아버지께서는 비싼 학비 때문에 몇일 고민을 하시다가 오케이를 하셨다.
그 후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고 난생 처음 유럽 땅을 밟게 되었고 진짜 20대의 처음을 부모님의 곁이 아닌 혼자 헤쳐나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나름 활발하고 할 말 다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서 모든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이렇게 나에게 소심한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소심한 나 그자체였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등교를 할 당시 그저 위축되고 모든게 무서워 버스를 타지도 못하고 혼자 구글맵을 찾아가며 1시간 가까이 걸어서 등교를 할 정도 이었다. 그 당시는 내가 아무리 영어를 할 줄 알고 그래도 그저 모든게 무서웠고 험난했다. 하지만 6개월이 넘어가면서 주변에 좋은 친구들과 사람들이 생겼지만 유럽의 겨울은 나에게 너무 혹독 했고 몸과 정신은 점점 힘들어져 갔다. 정말 잠을 이렇게 자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밤낮이 바뀐 생활과 외로움은 나를 점점 잠식시켜갔고 결국 네덜란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고른 나라가 오스트리아 이었다. 독일어를 하는 나라라는 것도 유학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네덜란드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오스트리아 학교 지원을 해서 합격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문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한국에서 급박하게 출국해야 하는게 문제이긴 했다. 그래서 18년도 12월, 크리스마스 전 주에 합격 결과를 받았고 학교 등록 때문에 2주 만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출국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집 정리와 알바 하던 곳에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본가로 가서 캐리어에 짐을 구겨넣고 19년도 1월 17일. 오스트리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1월의 오스트리아는 무척 추웠다. 17년도 크리스마스 방학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러 온적은 있긴 했지만 1월의 오스트리아 역시도 매우 추웠다. 비엔나에서 하루 머물고 캐리어 3개와 백팩 1개를 열심히 끌고 비엔나 기차역에서 다시 린츠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래도 한번 유학생활을 해봐서 그런지 전처럼 무섭지도 않았고 잘 할 수 있을 거 라는 이유없는 용기가 났다.
그렇게 내 오스트리아 린츠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구 30만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서 이제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