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며, 어느 저녁
겨울을 지나며, 어느 저녁
해가 길어졌다.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인데, 퇴근길 저녁이 아직 환하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이렇게 사소한 변화로 먼저 스며든다.
한동안 짧기만 했던 해가 길어지듯,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봄이 오는 것처럼.
그런데, 정말 봄이 오고 있는 걸까.
변화는 때때로 너무 느려서,
지금도 제자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가 길어진다는 건,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우리는 쉽게 깨닫지 못한다.
마치 포레스트 검프 속 포레스트가
그저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것처럼.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누군가는 목표를 세우고, 의미를 찾고,
달릴 이유를 고민했지만,
포레스트는 그저 계속 달렸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니,
그를 따라 달려온 사람들,
그가 지나온 길이 있었다.
우리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달릴 때가 있다.
변화는 없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우리도 어느새 꽤 먼 길을 걸어왔다는 걸 알게 된다.
같은 풍경을 반복해서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해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늦게 진다.
흐름이 빠르게 바뀌어도,
결국 남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
트렌드가 아니라 본질.
시간이 지나도 의미를 잃지 않는 것들.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겠지.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
길어진 해를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