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게 '아이콘 그려달라'는 말이 무례한 이유

UX 디자인, '예쁘게 꾸미기'라는 오해의 늪에서 벗어나기

by 김석민

픽셀 뒤에 숨겨진 전략과 문제 해결의 세계

"UX 디자이너세요? 그럼 우리 앱 아이콘 좀 예쁘게 그려주세요."

UX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당혹스러운 순간입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UX 디자인은 '화면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오해받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그 작은 아이콘 하나, 버튼의 위치 하나는 사실 거대한 전략적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흔히 '예쁜 디자인'이라 칭하는 것 이면에서, UX 디자이너들이 어떤 치열한 고민을 하며 비즈니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혹시 컴퓨터 잘 고치세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공통된 비극

개발자가 명절에 친척들로부터 "컴퓨터 수리" 요청을 받을 때 느끼는 그 묘한 상실감을 아시나요? UX 디자이너가 다짜고짜 "아이콘 하나만 예쁘게 뽑아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느끼는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좌절감은 단순히 업무가 귀찮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 결과물 뒤에 숨겨진 방대한 논리적 공정이 철저히 무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에게 맥락 없는 아이콘 제작을 요구하는 것은, 건축가에게 설계도도 없이 "벽지 색깔부터 골라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장식'에 앞서, 그것이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계하는 것이 우리의 본업이기 때문입니다.


2. 아이콘은 여정의 마침표일 뿐 : UX의 4단계 프로세스

UX 디자인은 번뜩이는 영감이 아닌, 철저한 '프로세스'의 산물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아름다운 화면은 다음과 같은 네 번의 파도를 넘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해 (Understanding): 문제의 본질을 파고듭니다. 사용자 인터뷰와 데이터 속에서 '진짜 결핍'을 찾아내고 우리만의 가상 사용자인 '페르소나'를 세웁니다.

연결 (Bridging): 사용자의 갈증과 기술의 가능성을 잇는 다리를 놓습니다. 비즈니스 목표를 기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흐름 설계 (Flowing): UX의 정수가 발휘되는 단계입니다. 사용자가 목표에 도달하는 최적의 경로를 설계하고, 종이 스케치와 목업을 통해 끊임없이 가설을 검증합니다.

다듬기 (Refining): 앞선 모든 논리가 시각화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디자인 시스템과 색상, 그리고 비로소 '그 아이콘'들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아이콘은 과정의 시작이 아니라, 수만 번의 고민 끝에 찍히는 '마침표'와 같습니다.


3. '해야 할 일'과 '일어날 수 있는 일'의 평행선

현장에서 디자이너의 제안이 "개인적인 취향"으로 치부될 때 협업의 바퀴는 멈춰버립니다. 이는 사실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의 통계적 사고: "대다수 사용자를 위해 이 기능은 이렇게 작동해야 합니다(Should)."

개발자의 수학적 사고: "발생 가능한 예외 상황(Edge Case)에서 이런 오류가 날 수 있습니다(Might)."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취향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리서치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출한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가설'입니다. 이 가설을 취향으로 치부하는 것은 건축가의 설계도를 단순한 낙서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4. Mastodon 사례가 보여주는 '관점의 힘'

UX 리서치가 어떻게 팀의 막연한 논쟁을 종결시키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마스토돈(Mastodon)'의 인용 포스트 기능 개발 건입니다.

팀은 사용자의 코멘트를 원본 글의 '위'에 둘지 '아래'에 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초기에는 독설적인 포스트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아래로 숨기자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UX 리서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다수의 인용은 긍정적이었고, 특히 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코멘트를 상단에 배치하는 것이 소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리서치는 문제의 프레임을 '악플 방지'에서 '선한 영향력의 확산'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데이터가 '공유된 관점'을 만들어내자, 소모적인 논쟁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hero.png https://blog.joinmastodon.org/2025/09/introducing-quote-posts/


UX는 장식이 아니라 '전략'입니다

UX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을 예쁘게 포장하는 포장지가 아닙니다. 사용자와 기술, 그리고 비즈니스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팀 전체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공유된 관점'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혹시 지금 곁에 있는 UX 디자이너에게 아이콘 수정을 요청하려 하시나요? 그전에 먼저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우리가 지금 풀려는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요?"

그들은 당신에게 예쁜 그림이 아닌, 제품의 성장을 이끌 강력한 전략을 꺼내 보일 것입니다.


이 글은 비쥬얼스토리의 프로젝트 경험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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