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와 팬을 연결하는 디지털 전략
2010년, 웹사이트가 아직 단순한 브로셔 역할에 머물러 있던 시절이었다.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고, 소셜미디어도 지금만큼 일상적이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랜드와 팬이 만나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공간, 그런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K-POP이 본격적으로 해외로 진출하던 2010년. 유튜브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글로벌 플랫폼은 아니었고,
아티스트들이 해외 팬들과 소통할 공식 창구는 웹사이트가 거의 유일했다.
JYP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첫 글로벌 경험이자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리는 2PM, 원더걸스, JOO 등 JYP 소속 아티스트의 공식 사이트를 각각 구축하며
각 그룹이 가진 음악적 색과 세계관을 웹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아이돌 사이트는 팬카페나 간단한 이미지 업로드 중심이었기에, 앨범 아트워크와 멤버별 개성을 인터랙션과 모션으로 풀어내는 작업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
가장 큰 과제는 글로벌 오디션 플랫폼이었다. 전 세계에서 몇만 명이 동시에 접속해 지원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고, 다국어 지원부터 서버 안정성까지 모두 처음 맞닥뜨린 난제였다. 지원자가 지루하지 않게 정보를 입력하고 제출할 수 있도록 페이지 이동과 입력 과정을 직관적이고 간결하게 설계하는 데 집중했고,
접속이 몰리는 순간에도 끊김 없이 동작하도록 트래픽 분산과 DB 최적화를 수십 차례 점검했다.
서버 오픈을 앞둔 새벽, 팀원들은 모니터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접속 로그를 지켜봤다.
뉴욕에서 첫 지원 글이 올라왔을 때의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우리가 만든 웹사이트가 정말로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음악 시장이 CD에서 스트리밍으로 급속히 바뀌던 시기,
네오위즈 벅스캐스트 프로젝트는 지금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와 닮아 있었다.
아티스트가 직접 음원을 올리고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재생에 중점을 둘 것인가, 판매에 중점을 둘 것인가?” 이 질문을 두고 수십 번의 회의를 거듭했다.
결국 음악 감상과 구매, 팬 참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지만 당시 시장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이 경험은 이후 팬 참여형 콘텐츠를 설계할 때 큰 자산이 되었다.
플랫폼 중심이 아닌 아티스트 중심의 음악 생태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a9미디어 프로젝트는 또 다른 배움이었다. 남희석, 양세찬, 김신영, 조세호 같은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이 한 회사에 모여 있었고, 각자의 색깔을 살리면서도 회사 브랜드를 함께 세워야 했다.
실제로 남희석 씨와 회의실에서 마주 앉아 색상 하나, 폰트 하나를 두고 긴 대화를 나눴다.
각 아티스트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감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차례 디자인을 수정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브랜드란 단순히 로고나 색깔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함께 서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필수였다.
2019년 무렵, 팬들의 행동 패턴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웹사이트를 단순히 ‘보는’ 사람에서 직접 증명하고 놀고 싶은 참여자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젊은 팬들은 자신이 얼마나 그 아티스트를 사랑하는지를 데이터와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이 변화를 가장 먼저 웹에서 포착했고, 사이트를 하나의 놀이 무대로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첫 무대는 체리블렛이었다. 그룹의 ‘여전사’ 콘셉트에 맞춰 총알·체리 등 아이콘을 픽셀 아트로 구현하고
80년대 오락실을 연상시키는 레트로 게임 UI를 설계했다.
팬은 스크롤을 내리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몰입을 경험했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미세하게 반응하는 사운드와 진동을 넣어 웹 브라우저가 하나의 게임기가 되도록 연출했다.
이후 진행한 베리베리 프로젝트는 더 정교했다. 각 멤버에게 빵집, 농구장, 세탁소 등 개별 공간을 부여하고,
팬이 각 방을 탐험하며 힌트를 찾아 낱말을 맞추는 퍼즐 게임을 완성했다.
아트워크와 힌트까지 전 과정을 직접 설계해 멤버별 개성이 스토리와 퍼즐의 난이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했다.
방마다 숨겨진 키워드를 찾을 때마다 팬이 멤버와 비밀을 공유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두 프로젝트는 웹사이트가 단순한 홍보 채널을 넘어 팬이 머물고 놀며 증명하는 브랜드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 경험은 이후 우리가 진행한 모든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의 출발점이 되었고,
“웹은 더 이상 페이지가 아니라 무대”라는 우리의 신념을 굳히게 만들었다.
팬 경험이 복잡해질수록, 기업 브랜드를 어떻게 공간화할 것인가가 점점 더 중요해졌다.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웹사이트가 아니라 팬이 브랜드 세계관 속을 직접 여행하듯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Big Planet Made 프로젝트에서는 과감한 설정을 택했다. 각 아티스트를 하나의 행성, 회사를 우주 전체로 상징화해 팬이 우주비행사가 되어 각 행성을 탐험하는 여정을 만들었다.
메인 화면에 들어서면 우주 공간이 펼쳐지고, 커서를 움직일 때마다 별빛이 반응하며 행성의 중력을 느낄 수 있다. 각 행성에는 아티스트의 색채와 음악, 영상이 고유한 방식으로 담겼다.
추상적이었던 ‘회사’라는 개념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그리고 팬이 직접 탐험하며 브랜드를 체험하도록 이끄는 새로운 방식의 실험이었다.
팬엔터테인먼트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글로벌 드라마 제작사라는 특성상 팬뿐 아니라 투자자·플랫폼 관계자·해외 파트너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한곳을 찾는다.
우리는 드라마 IP와 제작·투자 정보를 한 페이지 안에서 자연스럽게 탐색할 수 있도록 정보 구조를 여러 층으로 나누고,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짧게 혹은 깊게 접근할 수 있는 다중 동선 시스템을 설계했다.
메인에서는 최신 작품과 글로벌 프로젝트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되, 하단으로 내려가면 제작 파이프라인과 투자 지표까지 신뢰를 강화할 수 있는 데이터가 바로 이어지도록 배치했다.
팬에게는 드라마 세계를, 투자자에게는 안정적 파트너십의 증거를 전달하는 이중 설계였다.
CJ ENM 웨이크원 제로베이스원 프로젝트에서는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음악이 발매되기 전부터 팬들이 곡의 느낌을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프리세이브 페이지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그래픽을 구현했다. 클릭할 때마다 음악의 비트에 맞춰 그래픽이 움직이도록 설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보고 만지는 경험이 되도록 했다.
제로베이스원의 마지막 무대가 웹 위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한 생동감을 주고 싶었다.
체리블렛과 베리베리에서 시작된 게임화 UX는 2025년에 이르러 한층 더 정교해졌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 진행한 아이브와 몬스타엑스 프로젝트는 팬 참여형 웹의 진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무대였다.
아이브 프로젝트는 이전 실험을 최신 기술로 확장한 작업이었다.
팬은 페이지 곳곳에 숨겨진 오브젝트를 찾아내며 멤버와 비밀을 공유하는 듯한 몰입을 경험했고, 모든 단서를 모으면 새로운 힌트와 콘텐츠가 열리도록 설계했다.
단순한 티저 페이지가 아닌, 발매 전부터 팬이 스스로 스토리를 ‘해킹’하듯 참여하게 만든 무대였다.
같은 해 공개된 몬스타엑스 페이지는 모스부호, 숫자 퀴즈, 같은 그림 찾기 등 다섯 가지 게임 미션을 순차적으로 클리어해야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였다.
앨범 콘셉트와 연계된 아이콘과 사운드를 곳곳에 배치해 마치 시크릿 요원이 미션을 수행하듯 사이트 전체를 탐험하도록 유도했다.
2010년 JYP와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가 만든 웹사이트들은 그저 예쁘거나 기능적이기만 한 페이지가 아니었다.
새벽에 서버 오픈을 앞두고 떨었던 순간, 기획서를 수십 번 다시 쓰던 집요함, 색 하나를 정하기 위해 이어가던 끝없는 토론, 처음 게임 요소를 적용했을 때 폭발적인 반응을 보던 짜릿한 기억.
이 모든 경험이 쌓여 지금의 비쥬얼스토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만든 무대들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앞으로도 브랜드와 팬을 이어주는 새로운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웹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팬들의 행동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20여 년간 지켜온 일이며, 앞으로도 이어갈 우리의 길이다.
이 글은 비쥬얼스토리에서 진행한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제작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