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과 가족과의 시간을 위한 기나긴 투쟁의 시작
싱가포르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16년 2월부터였습니다.
그때는 홀홀 단신의 몸으로 건너와 멋모르고 일하고 놀고 사람들을 만나며 그저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12월에 결혼을 하고 2020년 1월에 첫째가 태어나며 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첫째를 임신하고 출산할 무렵에는 다니던 회사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게 된 것인데 그 관계가 특이하고도 묘했습니다. 분명 돈을 주고 회사를 산 쪽은 우리인데 상대편 회사의 인원이 몇 배로 훨씬 많고 인사팀도 상대 회사 사람들이 장악해서 우리 회사 사람들이 하나, 둘 쫓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한국 비즈니스를 워낙 잘 알고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포트폴리오의 사이즈가 커서 상대편에서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흐르니 점점 교묘하게 상대 회사로 비즈니스를 넘기려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니 상대편 회사 출신인 매니저와 인사팀이 매우 협박적인 태도로 나왔습니다. 급기야 곧 출산을 앞둔 사람을 회사에 나와라 무슨 문서를 작성해라 인수인계를 해라 하며 엄청 괴롭혔습니다.
출산 전 재택근무가 가능하다고 매니저 승인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어쨌든 시키는 대로 사무실도 나가고 하라는 것도 하며 열심히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때 그 조치는 출산휴가 기간을 대비하여 백업 플랜을 짜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내 것을 모두 남에게 넘겨주고 떠 먹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즉, 출산 휴가 후 회사에 복귀한다고 해도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출산만 생각하고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모자를 때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고 나니 회사 생활이라는 것에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공격적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열심히 일하고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상당한 포트폴리오를 쌓아준 것에 대해 감사는커녕 오히려 회사에서 쫓겨날 판이니 얼마나 억울하던지요. 더 기가 막힌 것은 같은 회사 출신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나 그래도 같은 회사 출신인데 누구 하나 변호하거나 막아주는 사람 없이 각자도생 하느라 바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버려질 수도 있고 알맹이만 쏙 빼앗기고 아무런 공도 없이 물러날 수도 있는 허망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꼭 실력이나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와 정치에 좌우된다는 게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출산 휴가 후에도 시키는 대로 청소부 일 같은 잡다구레한 일만 하다가 정말 우연히도 좋은 기회를 만나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겪었던 마음의 상처와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악랄한 모습, 누구 하나 내 편이 되어 주지 않던 외로움 등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싱가포르 파이어족'을 결심하게 된 첫 번째 계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계기는 바로 아이와 가족입니다.
싱가포르는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헬퍼들이 입주하여 가사, 육아 등을 돕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가족과 멀리 떨어져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외국인의 경우에는 이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와 같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싱가포르에 입국하는 헬퍼들이 줄어들고 현재 싱가포르에 있는 헬퍼들이 귀해지다 보니 이 사람들의 근무 태도가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서양 주인만을 찾는 경우, 월급을 무조건 올리려는 경우, 아이나 특히 갓난아기는 아예 보지 않으려는 경우,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무조건 쉬고 심지어 토요일 밤에도 외박하는 경우, 술 마시고 밤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 등.
말도 못 하는 어린 아기를 맡기기에는 무책임하고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미얀마 헬퍼, 필리핀 헬퍼들을 써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경우를 겪었습니다.
아이에게 아예 무관심하고 전화기만 보거나 코 파고 한숨만 쉬는 모습, 아이는 유모차에 놔두고 과자만 먹이면서 다른 헬퍼들과 수다 떨고 놀기만 하는 경우, 아이를 데리고 다른 사람 집에 가서 음식을 만들고 심지어 그걸 다른 헬퍼들에게 팔고 장사하는 경우,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는데도 모르는 경우, 애한테 공 하나만 주고 놀이터에서 개처럼 굴리기만 하는 경우, 애가 유모차에서 우는데도 본인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느라 달래지도 않는 경우, 아이 이유식에 넣으려고 산 좋은 재료는 자기가 먹고 아이한테는 남은 것만 주는 경우 등등. 이것은 꼭 저희 아이와 헬퍼만의 경우도 아니었고 놀이터나 공원에 가거나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의별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재택근무를 하며 주인들이 가까이 있는데도 잠시 밖에서 놀게 하거나 할 때 이런 경우들이 발생하니 아예 사무실을 출근해야 한다면 얼마나 더 가관일까 정말 끔찍했습니다.
가끔 자신의 아이처럼 열심히 봐주는 아줌마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드문 경우이고 보통은 '외국에 나와 돈 번다.', '본인의 나라보다는 나은 여건에서 생활하니 좋고 일은 대충 하겠다.', '휴일에 열심히 놀러 다니고 남자 친구 혹은 남편도 만들어보겠다.' 등의 자세를 가진 아줌마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을 풀타임으로 등원하기 시작한 후로는 아줌마를 쓰지 않고 힘들어도 직접 육아, 가사, 근무를 모두 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직접 봐주니 아이도 더 좋아하고 태도도 더 활발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희도 안심하고 아이를 기를 수 있고요.
사실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고 재택근무가 연장되다 보니 역설적으로 아이를 직접 돌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여러 대륙과 전화를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업무 시간은 들쭉날쭉하지만 그런 미팅과 업무만 잘 소화해 내면 나머지 시간은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 2년간의 코로나 속 근무 경험은 오히려 파이어족을 꿈꾸고 실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자유롭게만 일할 수 있다면 육아, 가사, 업무 모두 관리할 수 있겠다는 실질적인 체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
집과 사무실을 오가느라 시간을 쓰는 대신 아이와 놀아주고 가족과 함께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반 은퇴 같은 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이렇듯 회사 정치로 인해 받았던 아픈 경험과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파이어족'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파이어족 준비에 도움이 되는 매체와 참고 자료는 무엇인지 하나씩 적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2023년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꿈꾸며
열심히 파이어족을 준비 중인
싱가포르 워킹맘, 싱클레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