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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 Feb 02. 2024

과거의 나에게 쓰는 편지

부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 / 구분: 편지글

(인사말 생략)

동생 세 살 무렵 아무리 배가 고팠어도 영양제 한 통을 다 먹고 동생에게도 먹인 건 정말 잘못했지!

그것 때문에 엄마에게 맞아서 머리 한복판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남았으니 말이야.

하마터면 동생을 죽일 뻔했으니 맞아도 할 말은 없지만, 돌아간다면 영양제엔 손도 대지 마.

동생과 둘이 텅 빈 집안에 덩그러니 남았을 때, 툭하면 "누나 집 나갈거야" 협박해서 동생을 많이 울린 것, 그것 때문에 편도가 부어 평생을 고생하게 만들어서 미안했지. 다시 돌아간다면 동생에게 잘해주는 누나가 되자. 동생에게 나보다 더 잘해준다고 샘내지 않고, 지금의 아들에게 하듯 많이 놀아주고, 다정한 누나가. 누나에게 가려져서 빛을 보지 못한 대신, 동생의 잘하는 것을 찾아내어 더 빛나게 해 주자.

함께 할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알았더라면, 사춘기 때 방 문을 꼭꼭 닫고 나가라고 소리치진 않았을 텐데.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혼자 벽을 친구 삼아 공을 차던 동생과 놀아줘.

아이를 키우면서 스킬을 많이 얻었잖아? 이제는 누구보다 잘 놀아줄 자신이 있는데 말야. 이미 결혼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나 역시 한 아이를 책임지게 되면서 같이 놀던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워.


교회 합창부 선생님이 추천하셨던 찬양 대회에 출전할 시기엔, 직전까지 열심히 가사를 외워야 해. '그 맑고 환한 밤중에' 에서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 평안하여라'를 '찬양하여라'로 바꾸어 부르지 않도록 말이야.

또 오리리 동요대회에 출전하기 전에도 '노을' 동요를 100번은 부르고 나가도록 해. 너무 떨려서 온 가족을 무대에 세우는 일이 없도록.

4학년 때 아빠를 따라 전학갈 학교에는 가지 말고 남아 있어. 그 학교에서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고, 어린시절의 기억이 몽땅 날아갈 거야.

6학년으로 돌아간다면 첫사랑이었던 그 애에게 마음을 전해. 비록 가정환경이 너무 달라서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겠지만 인사도 없이 훌쩍 전학갔던 것은 너무했지.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을 포기한 건 너무 일렀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될 너의 만화 사랑은 아주 지나쳐서 학업에 지장을 줄 거야. 너는 그림을 그리다가 인체가 너무 어려워서 슬럼프가 올 거야. 네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관심을 보이겠지만, 특출난 재능은 아니기에 취미로 삼고 학업에 열중하면 좋겠어. 너는 공부를 하면 될 녀석이거든. 그렇지 않으면 일산에서 볼 배치고사에서도 떨어질 것이고, 수능도 망쳐서 엄마의 가슴에 못을 박게 될 거야...

고등학교 1학년 때 너는 전학을 갈 거야. 배치고사를 망친 너를 위해 부모님은 맹자 어머니처럼 이사를 감행하실 거거든.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들을 만날 거야. 그 친구들은 네가 어른이 되고, 결혼한 후에도 변함없이 네 곁을 지켜줄 친구들이야.

아, 친구 하니까 말인데, 초등학교 때 만날 친구 중 네가 이사를 간 뒤에도 꾸준히 연락하다가 연락이 끊길, 승희라는 친구를 잃지 마. 편지를 쓰고, 찾아가서 만나면서 인연을 이어가. 훗날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그리움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스무 살에는 미리 난자 냉동을 해 놔. 뜬금없다 싶겠지만 나중에 맘고생하기 싫으면...

너의 남자친구 것도 해 놓으면 좋아. 너는 한 남자만 바라볼 것이고, 그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될 거야.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라 견고하겠지만 뜻하지 않은 시련이 널 힘들게 할거야. 그건 임신에 관한 거야.

그래서 꼭 당부해 두고 싶어.


부모님께서 교회 자리를 정할 때, 오봉초등학교 건너편 건물에 계약하는 걸 말려야 해. 우린 7년 뒤 쫓겨날거고, 건물주 성격은 너무 지독해서 1년간의 소송 끝에 엄마가 공황장애를 겪게 될 거야. 만일 그 일을 막지 못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네가 소송에 참여해. 엄마가 그 글을 읽고 마음의 병에 걸리지 않도록 네가 내용증명서를 모두 작성해.


너의 남자친구는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긴 사람이지만, 사랑받고 자라서 줄 줄 아는 사람이기에, 삶에 회의적인 사람은 아니야. 오해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할 필요도 없어.

부정적인 생각을 이겨내고 긍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취업은 쉽지 않을 거야. 너의 전공은 정규직 보다는 계약직이 더 많아. 너는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할 거야. 매일 야근을 할 것이고, 집에는 잠만 자러 오겠지. 그 때 해 줄 말이 있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아. 너 대신 동생이 집안 일을 다 할 거야. 부모님은 바쁜 너를 이해하시겠지만 너는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효도해야 돼. 그 때 엄마는 외할머니를 돌보느라 폭삭 늙으실 거야. 돈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야...




너는 결혼식장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거야. 그 죄책감은 너를 두고 두고 괴롭히겠지만, 훗날 너는 알게 될 거야. 아버지가 그 날 매우 후련해하셨으며, 기뻐하셨다는 것을.

결혼하고 1년간 신혼을 즐기느라 바쁘겠지, 너의 삶에 푹 빠져서 시댁은 안중에도 없을거야. 하지만 시아버지께 많이 찾아가야 해. 가능하다면 병원에 빨리 모시고 가야 해. 아니면 사귀는 동안 남자친구에게 잔소리를 해서 치료를 빨리 받으시도록 해야 돼. 아버님의 심장과 신장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야.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도록 노력해. 너는 몸이 약해서 일찍부터 운동을 시작했으면 좋겠어. 꾸준히 운동하고, 몸관리를 해 나가. 마흔 즈음에는 몸이 더 약해질거야. 아이가 걸리는 병마다 다 걸리고, 영양제를 달고 살게 될 거야.


선물같이 아들이 올 거야. 그 아이는 너 어렸을 적 모습을 꼭 빼닮았지만 더 잘생기고 똑똑한 아이일거야.

아이를 낳고 키우며 너는 비로소 철이 들고, 부모님께 잘못했던 모습들을 후회하게 돼. 하지만 너는 이미 미래를 알고 있으니, 앞에서 말한 실수들을 하지 않을거라 믿어.

아이를 낳고 행복하지만은 않을거야. 산후 우울증이 올 거거든. 그때 너는 일기를 통해 우울한 마음을 극복할 것이고, 또 신앙을 통해 이겨낼거야.


너는 일기를 꾸준히 쓰다가 아이 네 살 무렵에 블로그를 시작할 텐데, 그 이유는 너의 아이가 훗날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궁금해 했을 때 보여주기 위해서야.

블로그를 통해 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아이가 네 살이 된 후 12월에 밤호수 임수진 작가님과 이웃이 되어 블로그 마을이란 메타버스 세상을 처음 접하게 될 거야. 너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야. 현실 만남에서도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글은 정말 매력적이야.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아이엄마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진심을 담아 댓글을 써 주는 일곱 사람을 만나게 돼. 너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너의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돼. 그 중 한 분은 둘도 없는 글 스승님이야. 그 분을 만나서 인생의 힘든 부분을 가감없이 쓰는 것에 대한 희열을 처음 경험하게 되고, 치유받고, 너는 쓰는 사람의 길을 걷게 될 거야.


쉽지만은 않을 거야.

너는 현실의 벽에 부딪힐거야. 아이에게 매여 읽고 쓰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 아쉬움이 남을 거야.

그래도 잊지 마. 아이 6~7세의 가장 귀여운 시간은 그 때 뿐이라는 걸.

너는 절대로 아이의 곁을 지킨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 거야. 훗날 그 모든 시간을 기록한 너에게 가족들은 고마워할거야.

비록 마흔이 넘어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울 거라 해도, 경력단절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돼.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마.

내 당부들을 잊지 말고, 인생은 필연이라는 말이 있지.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들도 마음가짐에 따라 더 나은 미래로 바꿀 수 있으니까.

힘내!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깊은 사랑을 보낸다.



 2023년 12월 16일에 미래의 나로부터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들도 마음가짐에 따라 더 나은 미래로 바꿀 수 있으니까. / design by Na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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