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는 가족"이라던 사장의 문자 해고

제3부. [관계] 사랑과 우정마저 거래되는 장터

by Napolia

​12. "우리는 가족"이라던 사장의 문자 해고


​스타트업 사무실 벽에는 '수평적 문화', '님 호칭 사용' 같은 세련된 사훈이 붙어 있다.
사장은 직원을 '프로'라 부르며 입버릇처럼 말한다.
"우리는 회사 동료가 아니라 가족입니다. 끝까지 함께 갑시다."
​어제저녁 회식 자리에서도 그랬다.
삼겹살 연기 자욱한 식당에서 사장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건배사를 외쳤다.
"우리 김 프로, 내 동생이나 다름없어! 형만 믿고 따라와!"
술잔이 부딪치고,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만큼은 뜨거운 동료애가, 아니 가족애가 펄펄 끓어오르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숙취를 안고 출근한 사무실 공기가 서늘하다. 내 자리에 갔더니 모니터가 꺼져 있고, 책상 위 사물들이 박스에 담겨 있다. 책상의 위치는 화장실 앞 복도로 옮겨져 있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경영 악화로 인한 권고사직 통보. 오늘까지 정리 바랍니다.]
​보낸 사람은 '사장님'. 아니, 어제까지 '형'이라 부르라던 그 사람이다.
사장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노크를 해도 인기척이 없다. 메신저 아이디는 이미 삭제되었고, 회사 인트라넷 접속은 차단되었다.
​어젯밤의 그 뜨거웠던 '가족'은 하룻밤 사이에 남보다 못한 '불청객'이 되었다.
그가 말한 가족은 '가축(家畜)'의 오타였나 보다. 필요할 땐 부려먹고, 사료 값이 아까워지면 언제든 도축하거나 내다 버리는 존재.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해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했다. 얼굴을 보고, 사정을 설명하고, 미안함을 전하는 것이 '진짜 관계'다.
문자 한 통으로, 책상 배치 하나로 사람을 모멸감 속에 몰아넣는 것은 폭력이다.
​화장실 앞 복도에 덩그러니 놓인 내 책상.
그 위로 어제 회식 자리에서 사장이 "너를 위해 준비했다"며 건네준 숙취해소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뚜껑도 따지 않은 채.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 이제는 그 말이 '가족처럼 부려먹다가 헌신짝처럼 버리는 회사'라는 뜻으로 들린다. 쿨한 척하던 회사의 '가짜 수평 문화'가, 생계가 달린 직원의 '진짜 밥줄'을 문자 한 통으로 끊어버린 날.




​[작가의 한마디]

"쓰고 버릴 거면, 제발 가족이라 부르지나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