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관계] 사랑과 우정마저 거래되는 장터
스타트업 사무실 벽에는 '수평적 문화', '님 호칭 사용' 같은 세련된 사훈이 붙어 있다.
사장은 직원을 '프로'라 부르며 입버릇처럼 말한다.
"우리는 회사 동료가 아니라 가족입니다. 끝까지 함께 갑시다."
어제저녁 회식 자리에서도 그랬다.
삼겹살 연기 자욱한 식당에서 사장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건배사를 외쳤다.
"우리 김 프로, 내 동생이나 다름없어! 형만 믿고 따라와!"
술잔이 부딪치고,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만큼은 뜨거운 동료애가, 아니 가족애가 펄펄 끓어오르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숙취를 안고 출근한 사무실 공기가 서늘하다. 내 자리에 갔더니 모니터가 꺼져 있고, 책상 위 사물들이 박스에 담겨 있다. 책상의 위치는 화장실 앞 복도로 옮겨져 있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경영 악화로 인한 권고사직 통보. 오늘까지 정리 바랍니다.]
보낸 사람은 '사장님'. 아니, 어제까지 '형'이라 부르라던 그 사람이다.
사장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노크를 해도 인기척이 없다. 메신저 아이디는 이미 삭제되었고, 회사 인트라넷 접속은 차단되었다.
어젯밤의 그 뜨거웠던 '가족'은 하룻밤 사이에 남보다 못한 '불청객'이 되었다.
그가 말한 가족은 '가축(家畜)'의 오타였나 보다. 필요할 땐 부려먹고, 사료 값이 아까워지면 언제든 도축하거나 내다 버리는 존재.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해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했다. 얼굴을 보고, 사정을 설명하고, 미안함을 전하는 것이 '진짜 관계'다.
문자 한 통으로, 책상 배치 하나로 사람을 모멸감 속에 몰아넣는 것은 폭력이다.
화장실 앞 복도에 덩그러니 놓인 내 책상.
그 위로 어제 회식 자리에서 사장이 "너를 위해 준비했다"며 건네준 숙취해소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뚜껑도 따지 않은 채.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 이제는 그 말이 '가족처럼 부려먹다가 헌신짝처럼 버리는 회사'라는 뜻으로 들린다. 쿨한 척하던 회사의 '가짜 수평 문화'가, 생계가 달린 직원의 '진짜 밥줄'을 문자 한 통으로 끊어버린 날.
"쓰고 버릴 거면, 제발 가족이라 부르지나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