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의 설날에는.

by 빈칸센

설 연휴가 길다. 민족 대이동이란 단어는 해외여행에 밀린 시대가 되어도 고향에 가야만 하는 날. 지난 추석 과감히 생략한 고향, 올해는 가야만 한다. 그것이 아들 된, 한 다리 걸친 독립에 대한 도리이다. 케텍수를 타고 울산에 가도..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온다. 무뚝뚝한 아들 뭐가 그리 좋다고, 피곤한 몸뚱이를 이끌고 1시간 거리를 오는가. 어둑한 도로를 홀로 오는 길. 그리움이 체감시간을 줄여 줬으려나. 차를 타도 여전히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두 남자, 이상하고 머쓱한 사이 같다. 집에 도착하니 기억나지 않는 비밀번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1년 만에 보는 얼굴, 익숙한 집 냄새. 이상하리 만치 변한 게 없다. 이 집은


첫째 날,

친구들도 1년 만에 만난다. 코찔찔이 시절부터 ‘일’을 하는 직장인이 되기까지. 서로의 구질한? 면을 공유했던 그들. 우리도 벌써 15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더라. 그런데 결혼을 한다네? 최근 여자친구가 생겨 SNS를 도배하더니만… 결혼 준비가 힘들다며 너스레를 피우는 모습이 참 웃기고 재밌다. 철없는 시절을 알아 그런가, 미래나 결혼처럼 거창한 이야기들을 나누기엔 어쩐지 낯간지러운 나였다. 이젠 다른 녀석도 결혼 생각이 있다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7명 중 4명은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고, 아마 그들과 백년가약을 맺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 것이다. 1년에 한 번 만나기가 더 힘들어질 거고, 자신의 가정과 함께 여름휴가도 보내겠지. 그때 나는 연인이 있으려나..? 누군가와 감히 평생을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려나? 같은 출발선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의 미래가 훅 가깝게 느껴진다. 다시 대화에 집중해 본다. 직장생활, 주거비 대출 등등 내게는 생소한 단어들이 귓속을 방황하고 있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눈빛엔 조금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눈꼬리엔 주름살이 맺힌다. 애송이 티가 벗겨진 모습들이 눈에 걸린다. 새벽까지 거뜬했던 체력은 자정을 넘기니 급격히 시들어 갔고, 각자의 집으로 간다. 공기가 차다.


둘째 날,

오늘은 가족 식사를 하는 날이다. 두 명의 누나, 한 명의 매형 그리고 부모님과 나까지. 2022년 누나의 결혼으로 6명으로 불어난 가족을 본다. 우리 집 자식들은 결혼 불신론자였다. 사실 난 결혼을 못할 걸 생각해서 미리 안 한다 하고 다녔기에, 거짓부렁이었고 나의 누나들도 겉으로만 사납게 말했을 뿐, 속으론 결혼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독 불신했던 큰 누나가 결혼했기에 그들의 겉말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아이도 낳지 않겠다 했다. 나는 내 삶이 소중하고 나의 젊음을 소진하고 싶다나 뭐라나. 그런데 보라. 버젓이 배가 불러온 나의 누나였다. 우리는 단지 두려움에 미리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불러온 그녀의 배를 보니 기분이 멜랑꼴리 하다. 이렇게 큰 신체의 변화를 목도하게 될 줄이야. 그녀의 집에 가득 찬 아이용품들을 보니 더 이상했다. 내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감당하는 만큼 달라진 눈빛을 본다. 총기와 예민함 가득한 눈엔 약간의 염려가 담겨 있었다. 움직이기 벅찬 몸을 이끌고 걷는 사람, 자신이 가장 원치 않았던 삶 속에 뛰어든 사람. 다시 식사에 집중해 본다. 불판 위 장어는 바삭하게 익어 버렸다.


근처 카페, 밀크티, 라테, 스무디 각자 취향이 담긴 6잔의 음료. 마신다 약간의 정적. 내가 결심한 듯 말한다. “나 혼자서 해외여행 가려고” 흥미로운 표정의 5명. 나를 바라보고 묻는다. “살면서 혼자 해외여행 간 적이 없더라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갈 거야. 화려한 여행 말고 조용히 쉬러” 내 입에서 쉼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사실 해외여행은 나에게 짐이나 다름없다. 비행기, 호텔 예약은 그렇다 쳐도 짐도 싸야지, 관광, 맛집 알아보는 행위가 나에게는 정말.. 곤욕과 같다. 당장 내일 뭐 할지도 못 정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나만 빼고 혼자 여행을 가봤다 하더라. 나는 여태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했고 - 정해진 일정을 따라가는, 하나의 팀이라면 순종적인 팀원에 가까웠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다. 남의 계획에 맞추는 건 그렇다 쳐도 내 의지나 의도가 없는 여행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기에. 물론 이 결심도 막연한 것이라 어디를 갈지, 언제 갈지 그 어떤 것도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선언하고 지키면 될일 아닌가. 불과 1-2년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홀로 여행을 무턱대고 뱉게 되다니,..


이후 몇 개의 이야기가 끝나 정리하려는데 “어 xx이 오빠?” 낯익은 목소리와 얼굴, 잠깐이 정적 후에

“아..! 아..!! 너 진이구나” 자연스레 나오는 소리, 나와 2019년을 함께 했던 친구였다. 정확히는 1월, 학교를 통해 2주간 해외봉사했던 친구였다. 6년 전이 되어 버린 날들이 스쳤다. 반가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와 시기였다. 장어집 옆 카페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의 SNS를 알고 있기에 근황은 알았지만, 이젠 메시지를 보내기엔 굳이 싶은 사이가 되었는데. 새삼 나를 알아봐 준 그녀에게 고마웠다. 그냥 스쳐 지났다면 이 사소한 기억에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 우리의 해외 봉사가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듯, 6년 만의 재회도 2분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뜨겁게 남아 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변화를 느끼다 보니 연휴는 끝이 나버렸다. 아침 7시 20분 기차를 타야 하는 나. 역시나 아버지가 태워다 주시기로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마치니 엄마가 아침 먹고 가라며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나온다. 메뉴는 불어버린 떡국. 나는 불어 터진 음식을 좋아한다. 방금 갓 태어나 쫄깃쫄깃 생기 가득한 녀석이 아닌.. 시간이 지나 국물을 잔뜩 머금은, 쩍쩍 소리를 만드는 식감을 사랑한다. 삶을 감내한 녀석은 맛도 참 좋다. 그릇을 비우고 챙긴 캐리어, 엄마가 열어 주었던 현관문 앞에 당도했다. 나는 다시 홀로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녀를 끌어안고 손을 흔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매정하게도 문이 닫힌다. 물렁해진 마음을 엘리베이터는 단숨에 끊어 버린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해내고 있구나. 엄마와의 이별은 언제나 울컥, 눈물을 쏟아 내게 만들지만 나는 경상도의 남자 눈물 삼키기는 정말 쉽다. 사내는 살면서 3번 운다는 말을 정말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는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특히나 나의 엄마에게는.


31살 먹은 아들을 역까지 데려다주는 아버지의 마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는 아들. 여전히 그대로인 건 아빠와 나의 관계뿐이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무뚝뚝함을 견딜 수가 없어 인스타그램을 새로고침해 보지만 - 새벽이라 그런가.. 새로운 소식이 없다. 그렇게 30분을 조용히 달렸을까, 좀 더 비전 있는 일을 하라는,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외마디. 성의 없게 대답하는 아들에 더 말씀이 없다. 이런 상투적인 말 밖에 할 수 없기에, 철없는 아들의 심기를 지키고자 말을 아끼는 그를 잘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만이 아시겠지.) 그냥 알겠다는 말을 하고 캐리어를 챙겨 기차역으로 나 홀로 들어간다. 이제 다시 홀로 살아낼 시간이다. 헤어짐이 아쉽고 봄이 지나서야 다시 볼 수 있겠지. 아쉽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안고 기차에 몸을 싯는다. 봄이 오는가. 졸리워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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