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편지.

2022년 12월 연희동의 나에게로.

by 빈칸센

오랜만에 연희동 가는 길. 홍대입구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꽃다발을 든 친구들이 꽤 많았다. 아마 졸업식 시즌이라 그런 거겠지. 생각해 보면 나도 상경한 지 4년 차구만. 시간의 흐름은 겹겹이 쌓여 늘 -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28살 서울에 올라와 32살이 된 지금에서야 느껴지는 것처럼.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니 연희동의 경사진 길에서 내린다. 아직 추운 날씨 코트 앞섬을 잠그며 서점까지의 길을 찾아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산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 지도를 켜는 마음으로 연희동 산책을 시작한다. 골목마다 남겨진 기억들. 어느 날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막연하게 왔었고. 또 어느 날은 친구를 만나러, 술을 마시다 막차를 놓칠 뻔한 것까지. 골목 담벼락들이 채색되기 시작한다.


나에게 연희동은 키워드 3개로 기억된다. ‘조용한 주택가’ ‘불편한 교통’ ‘소문 같은 곳’이다. 상경하기 전에도 연희동에 대해 자주 들어왔다. 어떤 카페가 있고 데이트를 하는 둥. 드라마 촬영이나 배우들이 산다는 둥 뜬소문처럼 늘 귀에 익은 동네였기에 상경하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였다. 막상 가보니 지하철만으로 가기엔 멀고 불편한, 가더라도 크게 할 건 없는 조용한 주택가였지만, 그래도 몇 번은 걸음 하게 되는 그런 곳. 이것이 연희동에 대한 인상이다.


하지만 가끔 인상 깊은 순간들도 있었다. 예전에 친구가 일했던 ‘사색연희’. 태국 퓨전 음식을 맛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깔끔하게 꾸며져 있던 정원과 건물이 텅 비어 있다. 친구 생일 즈음이던가 에그 타르트를 들고 찾아갔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친구 직장에 멋있게 서프라이즈 하고 무심하게 퇴장하기! 당시에는 굉장히 뿌듯했는데 - 지금 와서 보니.. 나를 위한 행동이었구나 새삼 반성하게 된다. 바쁜 직장인들에게 괜한 변수를 드린 것 같기도… 그해 겨울엔 동호회 모임을 가졌었다. 그 이름은 ‘시네마 지옥’. 2020년 11월 코로나가 한참일 시기, 라이브 방송 플랫폼에서 우연히 만난 네 사람. 마침 영화를 좋아하던 우리들은 시네마 천국을 오마쥬해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영화 감상을 나누기로 한다. 그리고 결성 2주년이 지난 2022년 12월 두 번째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바로 연희동 사색연희에서!


그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열심히 웃었던 사실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울산에서 단조롭게 살았던 내 삶이. 조금씩 변해가고 - 새로운 결의 사람들을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감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잠시 다른 이야기들에 집중하다 보니 서른이 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신나게 말하고 들이키던 그날의 나는 잘 지내고 있니? 시간을 훌쩍훌쩍 먹은 지금에서야 너를 떠올려 미안한 마음이 커. 지금의 나는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어. 어디로 갈지 얼마나 뻗어 나갈지 모르는. 회사라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해. 처음엔 무서웠지만 - 지금부턴 괜찮을 것 같아. 지나고 보니 어차피 모든 게 다 처음인 길이었거든. 4년 전의 네가 감히 예상조차 못했던 것들을 해냈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 관계를 맺었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다시 퇴사하게 되었지. 그 사이에 하나하나 기억할 수 없는, 뜨겁기도 아쉽기도 한 시간이 차근차근 쌓였어. 모든 게 다 처음이었고 - 열심히 부딪혔기에 헛되이 보낸 시간들이 없더라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나처럼. 미래의 내가 3월 15일의 나를 반길 걸 알아. 그래서 한 걸음 더 걸어 볼 거야. 어차피 다 처음이고 낯선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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