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천을 살린 인사
박배근 시장은 왜, 어떻게 불과 33세의 박연수를 전국 최연소 국장으로 임명하였을까?
박 국장은 인천에 연고가 없었다.
지연도 학연도 심지어 아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단지 고교 3학년 때 여자친구와 영종도에 놀러 와서 하루종일 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기억 외에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이 인연은 영종도가 인천공항 입지로 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지만 연고라고 할 수는 없다.
1986년 여름 무렵 각 구청 산하 동장들까지 포함한 인천시의 전 간부가 참석한 회의가 시청에서 있었다. 일상적인 회의가 끝나갈 무렵 박배근 시장이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것을 직접 발표했다.
”박연수 과장 일어나세요. “
”이번에 퇴임하는 도시계획국장의 후임은 박연수 도로과장입니다. “
일순 좌중이 조용해졌다.
충격 같은 침묵의 파장이 넓은 회의장을 지나갔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박 국장 당사자였다.
훗날 돌이켜 봤을 때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는 길고도 철저했던 시험의 과정이 있었다.
통상 연초가 되면 시장의 각 구청에 대한 연두순시가 있다.
그러나 지난 연두순시는 예전과는 다르게 모든 동을 빠짐없이 방문하였다.
선거철에 대비한 바닥 시정상황 점검 차원이었다.
박배근 시장은 거의 모든 동 방문에 박연수 도로과장을 수행시켰다.
보통은 내무국장이나 시정과장이 동승하여 수행한다.
시장은 수행한 박 과장에게 도로와 도시계획 관련 사항뿐만 아니라 시내 구석구석의 현장 상황과 시정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물었다.
인천에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황할 법도 했지만 도시계획과장과 도로과장을 제대로 수행하고 인천의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고 공부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동 순시 마지막 날 열우물(십정동)을 나서면서 시장이 뜬금없이 내용을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말처럼 했다. ”됐다. “
그것들이 시험이었고 몇 개월에 걸친 시험에서 합격했던 것이었음을 모든 사람의 의표를 찌른 도시계획국장 내정발표 뒤에야 깨달았다.
박배근 시장은 행정가가 아니다.
평생을 경찰에서 잔뼈가 굵었고 경찰총수를 역임했다.
박배근 시장은 경찰에서 정보분야 전문가로 이름 높은 사람이다.
인사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판단과 그렇게 하는데 존재하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실세였지만 그러나 인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시 부시장을 역임했던, 직전 안찬희 시장이 도시경영에서 도시계획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전문가 물색을 통해 경남도청에 있는 박 국장을 찾아내어 인천으로 초빙했던 것처럼 박배근 시장도 막중한 도시계획국장을 아무에게나 맡기고 싶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본인이 직접 역량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든지 지역의 정서라는 것이 있고 텃세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승진 연한 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인천에 연고도 없고 인천시에 근무한 지도 얼마 되지 않는 데다가 국장으로서 33세의 나이는 얼마든지 논란거리가 될 수 있었다.
인사 논란을 방지하고 매듭짓는 방법을 시장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에 앞서 시장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했다.
그를 위해서 시장 스스로 직접 별도의 확인과 검증을 했고, 그 확신에 바탕을 둔 자신감으로 과감하게 인사를 하되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전 간부가 모인 자리에서 미리 발표를 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계획국장 보임 인사는 비록 일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논란 없이 매듭지어졌고 박배근 시장이 기대했던 대로 인천의 미래를 살려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사가 만사, 인사는 이렇게 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