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울이 된 사랑

by 전진식

너울이 된 사랑

전진식(田塵)




사람을 좋아해 보았는가


담장 너머로

가을을 스케치하다가

헛간 위의 넝쿨이 되어버린 사내


너 아니면 아니라는

인연을 두고

우산도 없이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린다


이쁜 옷이라고 아껴두었다가

헌옷 수거함에 넣어버린


사랑하는 일과 미워하는 일



***시 감상


전진식 시인의 「너울이 된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시이다. 시인은 단순히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너울’이라는 말처럼, 이 사랑은 조용히 다가오다 이내 인생의 한 부분을 삼켜버리는 파문이 된다.

첫 연에서 “사람을 좋아해 보았는가”라는 질문은, 독자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호오를 넘어선, 존재의 어떤 진동이다. 담장 너머의 가을을 스케치하며 조용히 세상을 들여다보던 화자는 어느새 “헛간 위의 넝쿨”이 되어버린다. 이 이미지에는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한 인간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덩굴처럼 어디에든 얽히고, 뿌리내리고, 그러나 제 뜻대로 자라지 못하는 사랑.

“너 아니면 아니라는 인연”은 절대적인 감정의 밀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절실함 속에서 화자는 우산도 없이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시간을 견뎌낸다. 사랑은 그리움과 기다림, 상처와 수용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특히 “이쁜 옷이라고 아껴두었다가 / 헌옷 수거함에 넣어버린” 구절은 이 시의 백미다. 그토록 소중히 간직했던 감정이 어느 순간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변화를, 너무도 담담히 말하고 있다. 사랑이란 그렇게도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때로는 미련 없이 내다버려야 할 옷처럼 낡아버리기도 한다.

마지막 연의 “사랑하는 일과 미워하는 일”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 이파리임을 말한다. 사랑이 깊을수록 미움도 깊어지고, 미움 속에서 다시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인간의 심리. 이 모든 감정은 ‘너울’처럼 삶을 덮고 흘러간다.

이 시는 사랑의 시작과 끝, 환희와 상처, 아픔과 놓아줌까지의 전 과정을 압축된 언어로 표현하며,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파장을 남긴다. 조용하지만 무겁고, 슬프지만 아름답다. 마치 가을 끝자락에 피는 들국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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