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것도 인연이 되고
간이역에서
전 진식
우리 모두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언제나 외면당하고
기차가 와도 스치고 지나버리는
8월의 뙤약볕이
처마 밑 거미줄에 걸려 대롱 거린다
가끔은
내려야 할 정류장도 까먹고
지나치면서도
또 까먹고
모두가 그냥 지나가버리고
보이지 않으면 잊기라도 할 것인데
또 기적이 울린다
종일을 기다리는 것으로
역사(驛舍)의 벽 모퉁이에 걸려있는
낡은 액자 속에는
툇마루 밑으로 웅크린 강아지 한 마리가
고무신을 뜯고 있다
할 일도 없이
낮달도 풍경이 되어
어쩌다가
대피하는 완행열차도 떠날 채비를 하고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철길 옆 옥수수 가지에 날개를 기댄다
스치는 것도 인연이 되고
깃발을 든 역무원이 프랫홈으로 가고 있다
***시집 [돼지가 웃을 때는] 中에서
.
전진식 시인의 시 「간이역에서는
외로움과 기다림,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서정시입니다.
시인은 낡고 한적한 ‘간이역’이라는 공간을 배경 삼아, 우리 모두가 겪는 외면과 망각, 그리고 덧없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감상문:
전진식 시인의 「간이역에서」를 읽고 있자니,
한여름 뙤약볕 속 작은 간이역의 풍경이 눈앞에 아련히 떠오른다.
이 시는 단순히 한 철 지난 시골 간이역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외로운 사람들이다’라는 첫 구절처럼, 인생의 한 자락에서 문득 느껴지는 쓸쓸함과 놓쳐버린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기차는 와도 멈추지 않고 스쳐지나가며, 사람들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잊은 채 살아간다.
이 장면들은 곧잘 인생에서 마주치는 무심한 현실, 혹은 관계의 단절을 상징한다.
누구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나 역시 무언가를 놓치고 지나치는 삶.
간이역은 그런 존재들의 피난처이자 잠시 숨 고르기를 허락하는 곳처럼 다가온다.
특히,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철길 옆 옥수수 가지에 날개를 기댄다”는 표현은 섬세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작지만 소중한 생명들이 철길 곁에서 안식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바쁘게 스쳐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붙잡고 싶은 작은 인연이나 위로의 순간일 수도 있다.
‘스치는 것도 인연이 된다’는 마지막 구절은 시 전체를 정리하며,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짧은 만남 하나하나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것이 아무리 짧고 스산하더라도,
그것이 곧 삶이고 인연이라는 따뜻한 시인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한 번쯤 멈춰 서서 자신의 인생역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놓친 정류장은 어디였는지,
기다리는 것만으로 버텨온 시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곁을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와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지를.
간이역처럼, 느리고 조용하지만 마음을 흔드는 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