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첩 다다미방창가에 앉아
詩가 아니 되는 날
전진식
詩가 아니 되어 끙끙거리고 있는데
누군가는 詩가 쉽게 쓰여진다고 했다.
남의 집 육첩 다다미방
창가에 앉아
북간도 그사람의 아픈 삶을 그리면서
삼수갑산 언덕배기로
당나귀의 발자국을 따라 가자
나타샤에 얽힌 양치기 노부의 사랑 얘기를 들으며
국화꽃 향기로
그립고 아쉬운 누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빼앗긴 들녘의 봄을 찾아
꼬부라진 논둑길에 앉아 노래도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그림자 위로
밤을 새워 파도가 철썩이고,
우체국 앞에서는 풋내나는 첫사랑의 편지를 쓰다가
서산의 지는 해를 보고 울었다
사평역의 풍경으로
난로에 불을 지피며
지연된 기차의 기적소리를 기다리는 소녀도 생각했다
연락선을 타니 뱃고동이 울린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는 별밤에는
부엉이의 울음도 그리움이 되었고
詩는 아니 되고
밤을 새워 달을 보고 또 울었다.
詩가 어렵다는 것은
가슴으로 던진 돌팔매의 파문이
멍석으로 깔려 멈춰져 있기 때문인데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린다.
우산도 없이
골목길 모퉁이에서 퉁탕하게 웃고 있는
선술집 주모.
나풀대는 손짓은 詩가 되려나?
시인은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소줏잔을 기운다
[시의 분석]과 시 감상]
전진식 시인의 「詩가 아니 되는 날」은 표면적으로는 “시가 안 써지는 날의 고백” 같지만, 구조를 뜯어보면 ‘
시의 부재’를 말하면서 오히려 시의 밀도를 높여가는 역설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에 구체적으로 풀어 봅니다.
1. 시의 구조와 흐름
시를 세 덩어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시가 안 써지는 현재의 화자
• "詩가 아니 되어 끙끙거리고 있는데"
시의 부재, 창작의 막힘에서 출발합니다.
• 곧바로 “누군가는 詩가 쉽게 쓰여진다고 했다”는 윤동주 시인의 목소리를 들이면서, 자기와의 비교가 시작됩니다.
• 시적 장면의 연쇄(기억·인용·환상)
• 육첩 다다미방, 북간도의 전설, 삼수갑산 언덕, 나타샤, 국화꽃, 논둑길, 사평역, 성산포 등등…
• 이 이미지는 화자의 직접 체험이라기보다 다른 시인의 작품과 시대적 풍경을 인용·재구성한 것입니다.
• 실제로 등장하는 주요 인용 배경:
• “남의 집 육첩 다다미방…” →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
• “빼앗긴 들녘의 봄” →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사평역” →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 “성산포” → 김수영, 김영갑 사진집 등의 제주 이미지
• “나타샤” →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귀」
• 시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그림자 위로 여행하듯 걸으며, 그 속에서 시적 장면을 수집합니다.
• 다시 현재로 돌아와 마무리
• “詩는 아니 되고 밤을 새워 달을 보고 울었다” → 시의 부재를 재차 확인
• 시가 어렵다는 비유: “가슴으로 던진 돌팔매의 파문이 멍석으로 깔려 멈춰져 있기 때문” → 시가 생동하지 않고 눌려 있다는 상태
• 비·눈·선술집 주모의 손짓 등 새로운 장면을 덧붙이며 “詩가 되려나?”라는 질문으로 여운을 남김
• 마지막은 “나는 소줏잔을 기운다”로 시인의 인간적 허무와 체념을 표현하고 있지요
2. 시의 핵심 장치
① 메타시(meta-poetry)
이 시는 시를 쓰는 행위 자체를 주제로 삼습니다.
• 겉으로는 시가 안 써진다고 하면서, 시적 이미지들을 계속 쌓아올리는 자기반어 구조입니다.
• ‘詩의 부재’를 말하면서 ‘시의 과잉’을 만들어내는 역설입니다.
② 인용과 변주
• 직접적인 인용 없이 다른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와 지명을 배치합니다.
• 이것은 ‘시를 쓰지 못하는 나’가 사실은 시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덕분에 시 전체가 **문학적 지도(literary map)**처럼 읽힙니다.
③ 시와 삶의 교차
• 시 속의 장면과 현실의 감정이 섞입니다.
• 예: 사평역의 풍경 → 지연된 기차를 기다리는 소녀의 모습 → 성산포 → 그리운 사람들 → 부엉이 울음
• 이 연결은 시인의 내면 여행이자, 시적 감각이 삶의 기억과 얽히는 방식입니다.
3. 주제와 정서
• 주제: 시가 안 써지는 날에도, 삶과 기억, 문학 속 장면은 여전히 시인의 내면에서 흐른다.
• 정서: 애상(哀傷) + 자기반어 + 은근한 유머
• 시인은 시적 영감이 막힌 날을 술과 함께 보내지만, 그 시간조차 시가 되어버립니다.
4. 왜 이 시가 매력적인가
• 시인들의 ‘그림자 여행’ – 직접 창작보다, 좋아하는 시 속 풍경을 걸으며 그 여운을 모읍니다.
• 역설 구조 – “시가 안 된다”는 말을 계속하지만, 사실 독자는 시를 읽고 있음.
• 감각적 장면 전환 – 장소와 시간, 인물과 사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 문학사적 대화 – 여러 시인과 시가 무대 뒤에서 등장하는, 일종의 ‘시의 대화극’입니다.
•
***정리하면, 「詩가 아니 되는 날」은 시의 부재를 빌미로 시의 존재를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인이 ‘시가 안 된다’고 투정하는 순간조차 이미 시의 한복판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감상]
그렇다면 이 시가 가진 감동의 결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도록, **‘겉에 드러난 풍경’과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겹쳐서 풀어보면
이렇게 보면, 이 시가 왜 단순한 ‘창작의 막힘’이 아니라 시와 시인에 대한 헌사가 되는지 더 잘 보입니다.
1. 첫 문장부터 시작되는 ‘자기반어’
詩가 아니 되어 끙끙거리고 있는데
누군가는 詩가 쉽게 쓰여진다고 했다
• 시작은 투정입니다. 시가 안 써져서 괴롭다고 하죠.
• 그런데 그 바로 다음,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 첫 구절이 떠오릅니다.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져서야”
• 즉, 화자는 이미 다른 시인의 목소리를 불러내며 시 속으로 들어갑니다.
• 이게 첫 감동 포인트입니다. — 시가 안 써지는 순간조차, 시인은 다른 시를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2. ‘시인의 길’을 걷는 여행자
나는 삼수갑산 언덕배기로 당나귀의 발자국을 따라 간다
나타샤에 얽힌 양치기 노부의 사랑 얘기를 들으며
•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이어집니다.
• 삼수갑산은 황량한 땅이지만, 그곳에서도 시인은 사랑 이야기를 듣고, 국화꽃 향기를 맡습니다.
• 즉, 시 속 여행길은 실제 길이 아니라 시가 깔아놓은 길입니다.
• 우리는 이 길 위에서 ‘시인들의 그림자’를 밟으며 걷게 됩니다.
•
3. ‘그리움’으로 묶인 풍경들
빼앗긴 들녘의 봄을 찾아서
꼬부라진 논둑길에 앉아 노래도 부른다
•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속, 빼앗긴 땅의 상처를 떠올립니다.
• 그러나 화자는 거기에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 이 장면에서 감동은 슬픔 속에서도 시인의 본능은 노래로 반응한다는 데서 옵니다.
4. ‘시간과 장소의 교차’ — 시인의 문학 지도
우체국 앞에서는 풋내나는 첫사랑의 편지를 쓰다가
사평역의 풍경으로 난로에 불을 지피며
지연된 기차의 기적소리를 기다리는 소녀가 생각났다
연락선을 타니 뱃고동이 울린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제주 성산포 풍경 등 한국 시문학 속 공간이 하나씩 이어집니다.
• 편지, 난로, 기차, 뱃고동, 바다… 이 모든 요소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 여기서 감동은 ‘시의 장소들’이 사실은 모두 그리움의 지도라는 걸 깨닫게 될 때 찾아옵니다.
•
5. 고백처럼 돌아오는 결말
詩는 아니 되고
밤을 새워 달을 보고 울었다
• 시가 안 된다면서, 이미 우리 마음엔 시가 한가득 차 있습니다.
• 달을 보고 우는 순간 — 시가 부재한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가득해서 쏟아낼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암시합니다.
•
6. 마지막 장면의 묘한 여운
골목길 모퉁이에서 퉁탕하게 웃고 있는 선술집 주모.
나풀대는 손짓은 詩가 되려나?
시인은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소줏잔을 기운다
• ‘선술집 주모의 손짓’ — 아주 사소하고 생활적인 장면이지만, 화자는 거기서도 시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 그러나 마지막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가 아닌 현실로 내려옵니다.
• 이 내려앉는 결말이 오히려 감동을 줍니다. 시는 화려하게 끝나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사라졌다가 또 살아나는 것이니까요.
***감동의 핵심
이 시는 겉으로는 “시가 안 된다”지만, 실제로는
• 시 속 풍경을 여행하고,
• 다른 시인들의 목소리와 기억을 부르고,
•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모든 장면을 엮어내고,
• 결국 시와 삶이 겹쳐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가 부재한 날의 시’**라는 역설을 통해,
시란 결국 우리 삶 속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진실을 감동적으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