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재 Jul 31. 2021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있을까?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로  고민해보는 '공간 특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소비의 사회』

부동산 가격을 보면 곧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보다 ‘여기에는 내가 살 집이 없겠군’이라는 절망감이 먼저 찾아옵니다. 역대 어떠한 정부도 부동산 가격을 컨트롤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도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지요. 그만큼 부동산 거품을 잡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저 또한 이사를 할 때마다 집을 구하러 다니는 일이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대학가 원룸도 신축이니, 담합이니 해서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찌는 여름에도 며칠씩이나 방을 보러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공간에 대한 권리가 생긴 것은 바로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이며, 또 공간의 조용함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일부 사람들의 특권이 된 순간부터다.”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중에서



어느 방송에서 꽤 흥미로운 말을 보았습니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 공존하지 못하고 과학 기술을 동원해 모두 없애버린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너무나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간에 대한 권리가 생긴 이후부터, 우리는 그 공간을 영위하기 위한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 들어설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부자들이 사는 타운하우스나 고급 주거시설엔 거주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도록 삼엄한 경비를 자랑합니다. 카페도 그렇습니다. 음료를 구매하여 ‘자릿세’를 내지 않으면 그 공간을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공간’은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경상남도에 청년센터가 처음 생길 때의 일입니다. 한 도의원은 ‘월세가 비싸다’며 청년센터가 소위 ‘목 좋은 곳’에 입주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이 사례는 의원 개인의 실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에게만 공간에 대한 권리가 주어져 왔고, 그러한 생각이 공공서비스 영역까지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노동 소득으로는 현상 유지만 가능할 뿐, 부를 축적하여 미래를 꿈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간에 대한 권리가 강해질수록 ‘공간’ 속에 끼지 못하는 이들의 사각지대는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요? 돈이 많든 적든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공간에서 배제되지 않는 곳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그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에서 배제된 이들이 놓인 사각지대를 가시권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겠지요. 몇 년 전부터 계속 화두가 되고 있는 토지 공개념과 과감한 주택 정책 등을 동원하여 주택 공급률이 100%를 훨씬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세상의 기울기를 바르게 맞추어야 합니다.



‘내 공간’에 대한 꿈과 희망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습니다. 이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공간이 일부 사람들의 특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통해, 우리가 아무런 불편함 없이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있던 '공간 특권'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공간’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실한 이들의 삶에 따뜻한 빛이 들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는 '모두를 위한 기호식품'이 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