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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회사원 루나 Nov 13. 2023

한국에서 자란 내가 미국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기까지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평범한 중학생이 미국에 살게 된 이야기

안녕하세요. 미국 시골에서 재택근무 하는 5년 차 미국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루나입니다. 평상시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서는 성공했었던 경험을 위주로 얘기를 하지만 당연히 저도 실패한 경험이 많고 오늘은 그 실패들을 통해 얻었던 점에 대해서도 같이 말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제가 요즘 가장 관심 있는 키워드가 '회고'인데요. 그 이유는 제가 듣고 있는 실리콘밸리 한기용 님이나, 카일스쿨을 운영하시는 변성윤 님 등 제가 배울 것이 많다고 여겨지는 분들은 모두 회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앞으로는 회고를 하는 습관을 쌓아보려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31살인 제가 어떻게 지금의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보겠습니다.



1. 나름 공부를 잘했었던 중학생 때의 나

어렸을 때부터 수학과 아이들을 좋아했어서 장래희망에는 항상 '수학 선생님'을 적어냈었다. 이 때는 학교에서 공부도 꽤나 하는 학생이었고 같은 사람과 연애도 계속하고 있었다. 중3 첫 학기에는 전교 1등을 하면서 성적은 최고치를 달렸었다. 나는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너무 좋았고 이런 좋은 성적은 나의 자존감/에고를 채워주었다. 

꿈에 대한 이야기, 중-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중학생

2. 도피 유학을 하게 된 고등학생 때의 나 

당시에는 중학교 내신과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를 배치받았었고, 그 당시에 경기도에서 나름 유명했던 사립고진성고등학교라는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측과 달리 나는 그런 억압적인 상황을 잘 못 견뎌하는 사람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도, 매주 학교에 돌아갈 때마다 가방 검사를 하는 것도, 그리고 외부 음식이 안 돼서 떡볶이를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서 먹어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 때부터 만나던 남자친구한테 버림을 받으면서? 이때부터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증 아닌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 책상에 앉아서 멍 때리거나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1년 만에 엄마한테 울면서 학교를 옮겨달라고 했다.


집에서 그나마 가까웠던 목동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겼고 우울증은 조금 나아졌지만, 공부를 다시 잘하지는 못 했다. 그렇게 수능이 다가왔을 때 엄청난 두려움과 나에 대한 실망감, 이런 나쁜 감정에 휩싸였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또 도움을 요청했고 엄마는 항상 그랬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도와주었다. 고3 10월에 그렇게 난 도피유학을 결정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상황이 안 좋으면 나를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편이다. 항상 그럴 수 있는 건 아닌데 내 인생에는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처음 있던 고등학교에서 실패했을 때도, 결국 대입 수능을 실패했을 때도, 나는 다시 도전하는 게 아니라 '도망'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도망이 나를 미국에 오게 해 준 어쩌면 나의 신의 한 수였는 지도 모른다.


3. 베이 에리아에서 인생을 즐겼던 20대 초반의 나

그렇게 급하게 결정했던 도피 유학을 나는 사진을 보고 샌프란시스코를 골랐다. 그리고 이 결정은 진짜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잘했다. 나는 내가 20대에 큰 도시를 살아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미국을 샌프란으로 와서 인종 차별을 별로 받지 않았고 그리고 머신러닝의 출발점? 테크 기업이 많은 실리콘밸리를 어린 나이에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 랭귀지 스쿨에서 시작해서 커뮤니티 컬리지를 가고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다 보니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데 수학선생님이 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리고 수학 선생님이 되기에는 유학한 것이 아깝기도 했다. 그러던 중 통계 수업을 듣게 되었고 통계가 재미있어서 통계학과로 편입을 신청했다. 그렇게 다음 해에 통계학과로는 미국에서 탑 3안에 드는 UC 버클리 통계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이 편입 성공 경험은 계속 실패만 하던 내가 방향을 틀어 성공을 경험해 보는 시작점이다.

버클리 통계학과 동아리 사진


이때부터 미국인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컬리지는 각자도생이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 미국인이나 나처럼 편입을 준비하는 외국인이 많아서 내 또래 미국인 친구를 사귀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버클리에 와서는 내가 학교를 좀 늦게 와서 나보다 어린 동양계 미국인 친구들이랑 놀기 시작했고 이때 영어가 가장 빨리 늘었다.

유 씨 버클리 학생증 + 내 첫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직장 (유일하게 회사를 갔었어야 했던) 사원증


계리사가 될 줄 알고 계리 동아리에도 열심히 참여를 하고, 계리사 시험을 쳤지만 결국 계리 인턴만 얻고 계리사로 풀타임을 잡지는 못 했다. 이 때는 그저 내가 외국인이어서 취업이 어렵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노력이 한 참 부족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내가 원하던 취업에 실패를 한다. 그리고 또 나를 바꾸기보다는 상황을 바꿨다. 계리사로 취업이 안 되니까 그냥 이런저런 모든 애널리스트 롤에 지원을 했다. 그렇게 스타트업 머신러닝 인턴 포지션 하나랑 미국 리테일 대기업 월마트에서 merchandise planner로 오퍼를 받았다. 큰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월마트로 갔고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선택이었다. 특히나 이때 배웠던 배경 지식이 지금도 리테일에서 일하다 보니 쓰이고 있다.


월마트를 다니면서 배우는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역시 엑셀을 하는 포지션보다는 코딩, 통계를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나는 통계가 좋아서 통계를 전공한 것인데 내 직무가 통계를 많이 쓰지 않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그 당시 월마트에서 같이 일하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분들과 얘기해 본 결과 석사를 가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걸 깨닫고 바로 석사를 지원했다. 이때 급하게 일하면서 준비하느라 GRE 성적도 낮고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부족하다고 다음 해로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겼던 점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4. 20대 후반 - 석사, 커리어 시작, 평생 파트너를 만남

지원한 석사에 붙자마자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갔다. 이때 한국에 3개월 정도 있었는 데 미국에 오고 나서 지금까지 한국에 간 것 중에 가장 오래 간 거였다. 그리고 이때 이렇게 해놓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 가을 미국나이로 27살에 피츠버그로 옮겨서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통계학과 석사를 시작했다. 1년짜리 석사라 정말 시간이 빨리 갔다. 당시에는 논문을 쓸 마음이 없어서 취업용 석사를 위주로 지원했었는 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석사 1년 더 하더라도 논문을 쓰는 석사를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조금 있다.


그렇게 석사를 1년 만에 해치웠다. 내가 들은 수업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통계학과라서 조금 통계에 치우치기는 하지만 파이썬이랑 머신러닝을 정말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학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미국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꼭 데이터 사이언스 / 통계 / 컴공 석사처럼 깊게 배우는 석사를 가라고 한다. (물론 연구 쪽은 박사를 가셔야 한다). 나는 내 석사를 통해 배운 것이 정말 많고 이후에 오퍼를 받은 것들이 초봉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1억대였다. 그리고 5년 차인 지금은 보너스 포함 2억 정도를 벌기에 석사에 쓰는 돈은 절대로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튼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자면,  받은 여러 오퍼 중에 외국인 워킹비자 스폰서 + 연봉 + 하는 일 + 인터뷰 때 느낌 등을 다 통틀어봤었을 때 괜찮았던 곳에서 일을 시작했었다. 사실 캘리포니아 , 실리콘밸리 쪽으로 다시 돌아갈 기회도 있었는 데 피츠버그에 남게 되었고 피츠버그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금 남편을 20대 후반에 만났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주니어로서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회사에서 배운 점,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등은 따로 회고를 할 예정이다. 20대 후반에 제대로 된 커리어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팬데믹으로 대부분이 재택근무였고, 그래서 그랬는지 지금 남편을 그때 만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내 본캐에 집중을 하기보다는 남편이랑 노는 데, 블로그 등의 부캐를 꾸리는 데 많은 초점을 뒀었다. 이런 시도를 해본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않지만, 내 본직장에 집중/몰입을 덜 했다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5.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30대가 된 나

그리고 어느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만 31살이 되었다. 내 10대는 참 암흑 투성이었지만 미국에 온 후의 내 20대는 밝은 이야기 위주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30대는 이제 시작이라 아직 어떤 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좋다!


올해 초에 직장을 바꿨으며, 남편과의 미뤄뒀던 결혼식을 잘 마무리했고, 그리고 수영장이 있는 예쁜 2층 집을 사서 다음 달에 이사를 갈 예정이다. 나는 커리어 욕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이 욕심이 더 커서 내년에는 아기를 계획 중에 있다. 아이는 꼭 2명 이상을 낳고 싶고 그러려면 내년에는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찍은 우리 집 수영장 사진, 겨울이라 수영장을 파란색 커버로 덮어놓았습니다

최근까지 하던 미국 취업을 도와주는 데이터 코랩이라는 사이드비즈니스를 같이 하는 분한테 넘길 예정이다. 사람을 좋아해서 코리안클래스에 봉사를 하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썼었는데 이제는 그런 바깥일보다는 (곧 있을) 육아 그리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내 본캐에 집중을 하는 30대 초반이 되기를 바라며 나에 대한 회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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