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쥐의 심장 쫄깃한 아침

by 나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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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말 들을 걸! 엄마의 만류를 물리치고 내 고집대로 먹이활동에 나선 게 화근이었어. 우리 마우스들은

밤눈이 밝아 주로 밤에 활동을 하잖아. 하지만 난 돌연변이인지 아침이 더 좋더라. 풀숲 사이로 여명이 번져 옴과 동시에 어둠이 옷깃을 끌고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면, 페르귄트의 아침 선율이 귓가에 잔잔히 밀려들기 시작해. 장엄하기까지 한 이 아침을 깨뜨리는 바지런한 천적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이들이 도처에

활개를 치는 아침에도 나는 빠른 몸놀림으로 얼마든지 위험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자부하거든. 지구가

생겨난 이래, 특유의 날랜 동작 덕분에 지금껏 꿋꿋하게 살아남은 우리 마우스 과의 역사를 살펴 보더라도

여기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톰과 제리 봐 봐. 고양이 톰을 피해 제리는 얼마나 잽싸게 잘도 도망치냐고. 나는 제리보다는 좀 더 큰, 어른

쥐에는 못 미치는 이를 테면 청소년 쥐라,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마우스야. 또 성장 속도에

비해 지나치게 충만한 자신감- 그거 참 위험천만한 건데- 말이야, 고것이 참말 못 말리는 것인 줄 난생처음

깨달았지. 난 뭐든지 할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고 인간들의

수준 높은 용어를 빌자면 과대망상쯤 되는 그런 감정들이 어느 틈에 그리도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던지.

아무튼 아무도 오늘 아침의 날 말릴 수는 없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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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떠난 아침 사냥. 햇살도 경쾌한 미소와 함께 나를 응원하는 듯했어. 눈을 반짝이며 길을 갔어.

갑자기 거대한 수로가 나왔어. 돌아가도 될 텐데 굳이 건너뛰고 싶은 자신감이 등을 떠밀었어. 1차 도전은

실패, 2차 도전도 실패! 자신감과 달리 수로는 거대했어. 엄마 쥐도 건널까 말까 할 정도로 깊고 넓었지.

‘안 되겠다. 작전 변경!’ 앞으로 나아갔어. 그런데 저만치서 뭔가 희여 멀쑥한 두 기둥 같은 것이 내게로

전진해 오는 거야. 사람이었어, 그것도 맨발인 상태의. 이쪽저쪽 다섯 발가락이 번갈아 가며 다가오는데

심장이 힘차게 쿵덕거리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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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들었는데 사람들은 위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대? 아리송한 그 말을 어제까지는 못 했었어. 여차 하면 튈 생각에 조심조심 나아갔지. 그 사람은 내가 다가가는 게 싫었던지 나룻배 두 짝(신발)으로 땅을 툭툭 두드리더군. 다가오지 말라 이거겠지? 그래서 반대방향으로 수로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가 안 되겠기에

다시 방향 전환, 사람에게 다가갔어. 날 어쩌기야 하겠어? 내가 살짝, 방해되지 않게 아주 살짝 지나가기만

할 텐데 말이야. 반드시 목표 지점으로 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나를 무모하게 이끈 거 같아. 그곳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어.


사람이 다시 나룻배를 땅에 내리쳤어. 하는 수 없이 다시 방향을 바꿔 가는데 이번에는 더 커다란 사람이

저 앞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거야. 반바지를 입은 그는 나룻배를 발에 꿰고 있었지만, 보폭도 처음 마주쳤던

사람보다 더 넓고 키도 더 커서 한층 무섭게 느껴졌어. 옆으로 비껴갈 틈조차 내주지 않을 것처럼 무지막지해 보이기에 눈물을 머금고 방향을 180도 틀었지. ‘풀숲에는 톰(고양이)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 길로

가야 하나, 저 길로 가야 하나, 수로를 건너자니 너무 넓고 깊고. 진퇴양난이로구나. 엄마 말 들을 걸! 엄마는 이럴 때를 걱정하신 거였어. 사방이 막혀버렸어. 그렇담 덜 무서운 쪽으로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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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그 사람을 향해 쭈뼛쭈뼛 걸음을 옮겼어. 넘쳐나던 그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얼른 엄마한테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그 사람은 나랑 대면하는 것이 끝내 싫었던지, ‘아----악!’ 길게, 커다랗게 고함을 쳤어. ‘타잔 환생하셨네. 타잔도 당신보다 더 우렁차게 고함치진 못했을 거라고요.

살짝 방해되지 않게 지나가기만 할 텐데 그게 그렇게 용납 못할 일이냐고.’ 하지만, 따지고 들기에는 너무 상황이 안 좋았어. 심장은 쫄깃쫄깃, 벼룩의 간보다 작을 만치 졸아든 간덩이는 엑스레이 촬영을 해도 안 잡혔을 걸? 선택의 여지가 더는 없었지. 무조건 수로를 건너야 했어. 냅다 뛰어버렸어.


이런이런! 나의 컴퍼스는 짧고 점프력은 너무 약했나 봐. 멋들어지게 수로 건너편에 착지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수로 벽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지 뭐야. 혼비백산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 같아. 수로 벽을 정신없이 기어올라야 했어. 나를 이 위험에 빠뜨려놓은 인간은 위험과의 사투를 벌이는 나를 흘끗 일별 하고는 가던 길을 가대? 야속한 맨발의 청춘 같으니. 위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신 엄마 말씀이 그제야

이해가 가더군. 톰처럼 나를 못살게 굴지는 않아도 뇌성벽력이 불시로 터져 나올 수 있는 성대를 지닌 인간이라는 존재. 그중에는 우리를 호랑이나 사자만큼 무서워하는 이들도 있다지? 그래도 우리 마우스들은 인간을 보면 무조건(!) 먼저 피하는 게 상책임을 절실히, 아주 절실히 느꼈어. 상대를 파악하려 들기보다 바람처럼

내달리는 게 더 합리적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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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고만 것이 귀엽기만 한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럽니까?”

“징그럽잖아요!”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게 아닌데 이런 대화라 들리더군. 징그럽다고? 내가? 당신이 더더더더더 징그럽거든?

나처럼 이쁘고 눈이 초롱초롱한 미키마우스에게 무슨 실례의 말씀을! 울 엄마한테 다 이를 거예욧! 나를

징그럽다 한 당신 - 맨발의 청춘은 들으세요. 앞으로, 미키 마우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톰과 제리 같은 만화영화는 절대 시청 금지입니다. 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걸고 맹세해요. 손주와 함께 보려고 부탁을 해도 절대 안 봐줄 겁니다. 네버!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난 더 슬기로워지기로 했어. 쪼글쪼글하던 심장이 탱글탱글 회복된 지금, 이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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