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몽 살구 클럽을 읽은 후에

소하에게 하고픈 말

by 나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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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야리야리한 새싹 같은 네게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라니, 게다가 엄마는 너를

두고 집을 나가버리다니, 참 너무했다! 생존을 위해 도망친 엄마를 원망하니? 너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을

거라 이해를 하자. 분신과도 같은 너를 밀쳐내고 짐승으로부터 도주하는 엄마에게 이성 따위가 남아 있었을까? 필사의 탈출에 전념하라는 삶의 명령만이 엄마를 지배하고 있었던 게지.


사춘기인 너로선 생활을 위해, 육신을 위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집안 살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엄마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 나갈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 죽음보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네게, 생의 의지를 찾아 호흡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너를 자몽 살구 클럽으로 이끈 건 살고자 하는 네 의지였을 거야. 각자 처지는 달라도 살고 싶어 몸무림 치는 자몽 살구 클럽의 회원들에게서

너는 위안을 얻었을 거야. 그 어떤 경멸도 무관심도 배척도 없이, 아무런 편견도 없이 따듯하게 너를 품어준 언니들도, 빛과 그늘을 공유하며 서로를 살리는 데에 열중하는 삶의 전사들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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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만이 삶의 위안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엄두도 못 내고 온갖 학대와 방임과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너는 그들과 함께하며 웃기도 하고 염색도 하고 일탈도 했어. 어른들은 너희의 고민을 몰랐어.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거야. 육신의 양식을 버느라, 다른 어른들과 관계를 유지하느라, 더 높은 곳을 엿보고 탐하고

오르느라, 술을 마시고 싸우거나 다투거나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거야. 그 어른들도 사춘기를 지나왔을 텐데, 꿈 많고 반짝거리던 그 시절이 있었을 텐데, 왜 그 시절을 지나는 너희들의 아픔과 소망에는 시치미를 떼는 걸까. 그러니 꼰대 소리를 들어도 싸지.


너희는 바다에 갔어. 혹은 아픈 추억도 있고 좋은 추억도 있을 거야. 추억의 오솔길로 걸어보는 것.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아픈 기억을, 너는 짜디 짠 바닷물에 헹구어냈어. 짐짝처럼 짐칸에 실려, 추위와 생선

비린내와 절망에 절여져 가던 너. 알코올이란 악마는 네 아버지를 삼켜 교통사고를 내게 만들고 생업을 잃게 했어. 그 후로 그의 학대는 더 심해져, 너는 알코올 중독자의 딸에게 다가오기 마련인 최악의 시나리오를 저항조차 않고 그려보기에 이르렀던 거야. 그래도 바다의 품은 넉넉해서 어떤 슬픔이나 부조리도 상처도 싸매고 감싸줄 수 있을 것만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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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안 맞는 작은 운종화(중고 시장에서 사 온)를 신고 다녔을 소하. (제미나이 그림)

초록빛의 비밀을 공유하며 삶에의 의지는 공고해져 갔어. 다행이지 뭐야. 바다와 새싹과 토마토 영상들을

엿보며 해피 엔딩을 기대해도 좋겠네, 안심했어. 리더 태수 언니의 아름답지 못한 이별로 자몽 살구 클럽은

와해될 뻔했어. 그래도 보현은 병상위의 엄마와 감독이 되고 싶은 꿈과 보살펴야 되는 어린 동생으로 심장이

식지 않고, 가장 상심이 컸던 태수의 단짝 유민은 노래를 지어 태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살려고 애를 썼지.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소하 너도 언니들과 함께 엄마를 보러 갔어. 하지만, 새 가정을 꾸린 엄마는

너무도 완벽하게 행복해 보여서 다가가선 안 될 것만 같았지. 괜히 끼어들어 그 행복을 깨뜨릴 수는 없었어. 아버지가 앗아가 버린 엄마라는 존재, 못 견디게 그리워하던 엄마는 가출한 순간부터 너를 기억에서 깡그리 지웠던 걸까? 그동안 한 번도 찾아주지도 않고 연락도 없었던 것은 너를 완전히 잊어서일까?


엄마로부터 두 번씩이나 버림받았다는 슬픔! 갈기갈기 찢기고 너덜거리고 피투성이가 된 심장을 간신히

싸안고 너는 집으로 돌아왔어. 집 아닌 집으로. 오자 마자 너는 아버지로부터 죽지 않을 만큼 맞았어. 소주

한 병을 냉장고에서 가져갔다는 이유로. 태수 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할 틈도 주지 않았어.

피 같은 딸보다 소주가 중요한 아버지였으니까. 어차피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겠지.

감히 내 소주를 훔쳐? 역린을 건드린 너, 이어지는 무차별 폭행...... 차라리 죽고 싶었어, 아버지의 손에 의해,

더 나아질 것도 희망도 없는 세상과 이별을 고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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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악마는 너를 살려 두었어. 분하게도 살아야 했어. 살려면 짐승 - 알코올이 조종하는 짐승에게서

벗어나야 했어. 그는 힘이 셌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엄마의 사랑마저 받을 수 없던 고작 중학생인

여자애가 무슨 힘이 있겠어. 그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너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 마지막

선택밖에 없다고, 아버지를 뼛속까지 접수해 버린 악마가 너를 충동했어. 네가 저항조차 할 수 없도록

악마는 벼랑 끝에서 너를 떠밀어버렸지.


고뇌에 찬 햄릿처럼 너는 음악실로 향하는구나. 이제 악마에게 반기를 드는 일만 남았구나. 그중에는 태수

언니의 뒤를 따라가는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래선 안 돼. 유민과 보현을 살리기 위해 너도 살아야 해.

태수, 유민, 보현, 소하야! 너희를 질식하게 만드는 현실, 어른들이 가득한 이 세상일망정 앙버티고 꿋꿋이

살아 주었음 해. 너희는 소중한 새싹들! 그 무엇도 너희를 짓밟게 놔두지 마, 소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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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들의 철없고 발랄한 수다 일색이겠거니, 하며 첫 장을 넘겼다. 군데군데 조사를 생략해 연배가

있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젊은 작가님(!)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집 젊은이에게 자문을 구해야 했다. 하긴 아이들도 집에 간다고 하지 않고, 집 간다, 이런 말들을 자주 하긴 했다. 고나리나 가출 팸 같은 단어들 (인터넷 신조어 수강이라도 해야 하나), 여과 없는 육두 문자에 당황, 얼른 다음 구절로 눈길을 돌리고. 아무튼 마음을 쥐어짜며 마지막 장애 도착하고야 말았다.


소하가 엄마의 행복을 깨뜨리지 않으려 발길을 돌린 것이 이내 마음에 걸린다. 진창에 남기고 온 딸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엄마에게 움트고 있었을 거라 믿고 싶다. 가출 당시의 불행했던 엄마와

행복한 엄마는 마음의 품이 다를 거라고. 지레짐작만으로 뒷걸음질 치고 낙심과 절망의 나락으로 자신을

몰아간 소하! 설령 엄마가 아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음악선생님 같은 어른이 한두 명쯤 있을 만도 한데.

소하나 태수, 유민, 보현의 SOS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는 어른들이.


이 소설이 공상과학소설로 읽히는 그날이 오기를!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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