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에 돌아보게 되는 나의 작고 연약한 인간관계
구지 먼저 밝히자면 나의 인간관계는 거를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매우 좁고 또 비좁다.
학창시절은 좋지 않은 친구들의 기억으로 한손에 꼽을 몇을 제외하곤 일체 연락을 끊었다.
그 후엔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모든 인간 관계에서 벽을 치고 살아왔기에
애초에 인간관계라고 할 만한 관계도 얼마 없다.
그래서 항상 외로움을 친구삼고있지만
그나마의 부족한 나의 관계를 맺어주는 이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몇몇의 대부분은 연락을 자주 하지 않고, 교류가 많진 않아도
언제나 연락을 주고 받을 때 감사한 관계이자 내가 아끼는 이들이다.
그러나 최근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 이가 나에게 발바닥에 가시가 찔린 것처럼
매우 신경쓰이고 짐이되는 이로 변질되었다.
사실 주위에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쭉 듣더니 말했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그랬던 사람을 내가 이제야 '발견'한 것이라고.
나에게 거슬리는 가시같은 존재가 된 지인은
서로 알고 친해진지 15년정도가 넘는, 꽤 오래 알고 지냈기에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선 자신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항상 만나면 유쾌하였고, 통하는 부분도 많이 있었고,
서로 즐거운 일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털어놓으면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가까이 살거나 시간이 많아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연락할 일이 생기면 고민 없이 연락하고,
주기적으로 만나며 만남을 기다리는 지인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그 지인과의 만남 후에 찜찜한 기분이 이어졌고,
또 며칠동안 대화를 곱씹게 되었다.
물론 나쁜 기분으로 시작되어 곱씹은 대화는 항상 불쾌함으로 끝나
최근에는 어떻게하면 조용히 그리고 원만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이 관계를 종료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하지만 내가 고민이 길어지는 건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원만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이제는 이해하기는 포기한 몇몇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에 대화중에는 당혹스러움과 그냥 별일인가? 싶어 넘겼지만,
아직도 내 뇌리에 박힌 대화들은 아무래도 나에게 별일은 아니었나보다.
그 중 하나는 나의 병에 관한 고백이었다.
나는 감추고 관리하며 사는 프로 예민러인데,
결혼 이후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나의 예민함과 불안이 최고치를 찍으며
신체화 증상이라는 것을 겪은 후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이 병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언급할 일이 있겠지만,
답답함과 서러움을 나의 이 친하고 믿고있던 지인들에게 정말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큰 공감과 위로, 걱정은 아니더라도 내가 듣고싶던건 비교적 명확했다.
"그래? 정말 힘들었겠네."
뭐.. 누군가에겐 큰 공감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가 원하던건 이 정도의 한마디었다.
하지만 그냥 아무 대답이 없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지인의 이야기로 넘어갔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냥 뻘쭘해졌다.
그리고 애써 합리화를 했다.
요즘 정신과 가서 공황장애 진단받는게 별건가, 그냥 감기걸린것과 비슷하게 넘어간건가.
그리고 가장 최근의 만남에서 나는 혼란에 빠졌고,
이 사람은 확실히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 지인과의 만남은 늘 나를 포함한 세 명인데 우린 모두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다.
종종 육아 부분에서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것은 서로의 가정과 관련된 부분이기에 그럴 수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그런데 최근의 만남에선 7세고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아이들도 7세 안밖의 비슷한 나이대이기에
그정도로 아이를 강압적으로 교육시키는 건 아동학대에 가깝기에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니 그 지인은
"돈이 있으면 다들 그렇게 시키는 거지"
라고 하기에 내가 말의 핵심을 잘 못 전한건가, 싶어서
"물론 그 아이들 중에 잘 따라가고 성공하는 몇 명은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아이들이 부모의 욕심 때문에 너무 어린 나이부터 고통받고 있는거잖아.
나는 그 아이들이 크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
하며 다시 걱정을 표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 아이들은 네 아이를 만날 일 없어."
이 말을 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어떤 합리화도 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말에,
그리고 특히 내가 아닌 내 아이를 건드린 말에 나는 마음속의 이성적인 관계의 끈을 잘라냈다.
그렇다고 나는 무 자르듯 싹둑 그 지인과의 관계를 잘라내지 못했다.
여전히 서서히 멀어지기를 내 마음속에서 시도하고 있다.
기다리던 우리의 만남이 미뤄져도 전혀 아쉬운 티 내지 않으며
개인적인 그 어떠한 연락도 간결하게 답하며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그 지인은 알까. 그냥 알아서 멀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무래도 관계 자르기가 단호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앞서 말한 내 좁고 작은 인간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내 남편도 이 관계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자 이렇게 말했다.
"근데....여보, 정리하면 만날 사람이...."
뒷 말을 잇지 않았지만 나도 알고있어,로 종료했다.
그리고 너무 오래된 관계라는 것이 정리하는데
자꾸 여러가지 기억이 겹쳐, 그 기억들이 장애물로 변질되곤 한다.
어렵다. 학생시절의 관계는 졸업이라는 끝을 맺을 수 있었는데
나에게 어른의 관계를 끝맺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라도 친밀함을 덜어낸 나를 응원하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나를 지켜내려는 한걸음을 내딛은 나를.
아이는 올해 다른 기관으로의 첫 시작을 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 글을 쭈욱 읽었다면 내 아이의 나이를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최근에 얼마 없는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아이의 첫 시작처럼 나의 인간관계에도 조금 용기를 내기로 시작했다.
그래서 원래라면 전혀 내키지 않던 이런저런 모임에 얼굴을 들이밀며 분위기 파악을 하러 나섰다.
내가 선입견을 갖고 있던 그런 엄마들 관계가,
사실 들여다보니 모두다 조심스럽고 거리를 두면서도 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는 게
적정한 거리두기를 선호하는 내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로의 발을 담그려던 차,
그 중에서도 빌런을 발견해 버렸다.
새로 시작한 모임중에서도 책 모임이 있어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는데, 책이라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워
나름 기대와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였다.
고작 두 번째 모임에서 새로 만난 한 사람이 인상부터 좀 쎈 느낌, 그리고 쎄한 느낌이어서
갸우뚱 했는데 지난 첫 번째 모임과는 달리 그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어질 때마다
주위를 딱딱하게 만들어서 나와는 결이 안 맞는구나 했다.
(쎄한 느낌이라는 게 그냥 감이지만 나는 인간관계를 조용히 많이 관찰하는 편이라
한 8-90%는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 한 마디만 나눠보아도 쎄한 느낌이 느껴진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같아
어색하지 않으려 간단한 스몰토크를 나누며 집에 오는데
나와 둘이 남겨진지 5분도 채 안되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디 사세요? 아~ 00동이구나. 그런데 자가세요?"
하..
나는 또 다시 마음속으로 이 사람과는 둘이 남겨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관계를 싹둑 혼자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