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 나를 부르는 이름들이 달라지더라
나의 결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시기적으론 내가 계획하지 못했던 때에 진행되었다.
진행 과정 역시 순탄하진 않았고 어려움은 있었지만,
삶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순간이 쉽진 않을거라 예상하곤 있었기에
누구나 겪는 과정이겠거니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나와 남편의 호칭은 서로 '이름과 오빠', 정도로 불렀고
남들에겐 신혼이었기에 나는 '신랑'정도로만 부르면 되었다.
하지만 결혼과 찾아온 나의 새로운 가족에게 나는 며느리가 되었고,
형수라는 호칭도 얻게 되었다.
남편을 신랑으로 부르는 낯간지러움보다
얼굴 몇 번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족으로 불리우는 게 더 어색했지만
차츰 적응하겠거니 그냥 누가 그렇게 부르면, 그게 나인가 보다-하며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의 호칭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매우 큰 전환점을 맞게되는데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된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남편은 저절로 '아빠'라는 이름을 얻었다.)
뱃속에 있을 때는 실감나지 않던 그 호칭은 아이가 태어난 순간 땡땡이 엄마로 불리며
나는 엄마가 되었다.
사실 아이가 신생아 때만 해도 병원부터 시작하여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엄마'로 불리는게 매우 낯설었는데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시작하면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나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부분이 맴돌았다.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자 완성된 나의 호칭이라니.
나에겐 이 아이가 없었으면 한번도 불리지 못했을 이름이기에
나는 땡땡이의 엄마로 불리는게 싫지 않다.
요즘 나가는 학교의 엄마들 모임에서 엄마들도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며,
누구 엄마 대신 본인의 이름을 내세우는 걸 모토로 삼는데
나는 이 소중한 호칭을 너무 좋아해서 '엄마'라는 호칭이 그렇게 듣기 싫은가,
하며 그들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진 못한다.
하지만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남편에게서, 원가족에게서, 그리고 내가 일하는 조직에서, 그리고 내 인간관계에서,
이름으로 충분히 많이 불리고 있기에 이정도면 내 이름의 쓰임에 만족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환경에 따라 이름이 많이 쓰이지 못한 엄마들은
매일 듣는 엄마라는 호칭이 지겨울 수도 있을것 같다.
그렇게 짐작할 뿐이기에,
사실 나는 그냥 땡땡이 엄마로 불러줘요!라고 소심하게 마음속으로 외쳐보았다.
엄마라는 호칭에 이어 자연스럽게 결혼도 하고 나이도 서른이 넘고,
게다가 아이까지 있으니 나는 아이가 나를 '엄마'로 부른 순간부터는 '이제 나는 아줌마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줌마라는 호칭은 실제로 내가 많이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요즘엔 많이 쓰이지 않는 호칭같다.
하지만 내가 어릴적만 해도 분명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줌마'였다.
그리고 그 성별이 반대이면 '아저씨'였다.
크면서 생각이 변한건 내가 어릴적엔 위문 편지도 쓰고 분명 '아저씨'같았던 군인 아저씨는
대학가면서 앳된 동기들이 군대를 가는 모습도 보고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사회인이 되어 그들의 모습을 보니 그냥 청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에
'군인 오빠 혹은 형'이나 '군인 삼촌'정도가 맞지 않나 싶다.
그런데 여전히 군인한텐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아줌마는 왜 아줌마로 부르지 않는건지.
물론 아줌마라는 호칭 위에 연상되는 억척스럽고, 어쩐지 드세고, 성별은 여자지만
남성호르몬이 더 강할 것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그건 내가 아줌마여도 행동을 그렇게 연상되는 이미지처럼 하지 않으면 되는것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낯선 사람의 아줌마로 정의하였고,
혹시 그 호칭을 듣게 된다고 해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데 오히려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아이가 놀이터에 입문하게 된 후 놀이터에선 '아줌마'가 거의 금기어처럼 되어있는 것이었다.
모든 아이의 보호자인 엄마들은 스스로를 낯선 아이의 '이모'로 칭하고 있는 것에
나는 혼란스럽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만 어째서 '이모'인가,하며 저항하고 있었다.
나의 소심한 반기라면 나는 다른 아이의 아이한테 나를 칭할 땐 '아줌마'라고 칭한다.
심지어 의사소통을 꽤 하게 될 무렵의 한 친구는
"왜 땡땡이 엄마는 자기를 아줌마라고 해요?"라고 묻기도 했다.
당돌한 아이가 귀엽기도 했지만 정말 그렇게 '아줌마'라는 소리를 못들어본건가 싶어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응 나는 땡땡이한텐 엄마이고 너한텐 아줌마가 맞아서 그래."라고 대답했지만
어쩐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내가 아이의 앞에서도 이모라고 칭하는 사람은 아이의 친이모인 내 동생과
나의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몇 안되는 절친들 뿐이다.
내 기준 이모가 되려면 그 정도 자격은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내가 구식인가 그런가하며 꿋꿋하게 나는 아이의 친구들한테 '아줌마'가 되련다.
(그래도 사회적 눈치상 놀이터에서 스몰톡을 여러번 나눈 아이 친구의 엄마가
본인을 우리아이에게 '이모'라고 지칭할 땐 나도 그 아이에겐 '이모'가 되어준다...)
- 여기서,
나의 '일'에 있어서의 정체성 혼란 이야기가 더 길어질 예정인데
쓰다보니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글을 나눠 2에서 이어서 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