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더라 2

나의 일과 관련된 내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임시의 정착

by 황하루


- 1에 이어 곧장 2를 쓰던 나에게,

잠시 컴퓨터 오류에 이어 저장한 글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이슈로

원래 계획보다는 간략하게 줄여 '내가 누구더라 2'를 시작하겠습니다 -


나는 워킹맘이고 싶었지만,


원래는 남편과 둘 다 대리인 시점,

사회인으로 갓 적응을 했다 싶은 시점에 결혼했기에 나는 아이를 낳고도 일을 할 예정이었다.

돈도 없었고 일도 하고 싶었고.

물론 돈이 없었던 이유가 한 3배 쯤 크긴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후 어린이집에 적응시켜 복직을 했는데

변수는 그 때 시작되었다.

아이는 분명 일주일만에 적응하고 나와 헤어질 때도 문제 없었고

하원은 2-3시 사이에 나의 친이모에게 맡겨두어서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입소 후 3주 후에 이모가 아이 다리에 없던 멍이 생겼다고 한번 살펴보라고 하여

보았더니 길쭉한 멍이 양 허벅지에 2개 정도씩 생겨있었다.

내가 지켜보았던 아이는 분명 멍이 혼자 넘어지고 엎어져도 멍이 잘 생기지 않았고,

문제는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이후 토요일과 일요일, 아이는 이유없이 내내 울었다.

원더 윅스가 아니었고, 새로운 이가 올라오고 있는 것도 아니였으며 열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모든 계획을 변경하기로 마음먹고 다음 월요일 바로 아이를 퇴소시키고

남은 육아휴직을 소진하겠다고 회사에 사정을 알렸다.


육아는 변수의 연속이다.

나는 결혼전까진 파워 계획형 인간이었고-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며,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인간이다- 내 인생은 나의 계획1, 예비1,2,3.. 정도의 예상 안에서 굴러갔었다.

하지만 육아는 이런 나의 비좁은 계획을 비웃고 시험하기라도 하듯,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나가 나는 어느순간 계획하기를 멈추었다.

물론 완전한 무계획이라기보다 아주 넓은 방향의 계획, 예컨대 아이가 뭐를 잘 먹게 언제까지 몇개의 요리를 먹여보자든가 올 해 우리 가족 여행을 한번은 먼곳으로 떠나서 잘 놀다오자,하는 매우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것은 모두 미정으로 둔 그런 계획정도만 남기고 흘러가는 인생에 맡기기로 했다.

육아휴직 중에 코로나라는 전국민이 예측할 수 없던 거대한 변수가 또 찾아왔고,

결국 잔병치레가 잦은 아이를 맡길데 없던 나는 복직을 할 수 없이 권고사직 당했다.



돈이 벌고 싶어서,


육아휴직기간과 권고사직으로 인해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은 나도 수입이 계속 있었다.

심지어 남편보다도 더 길었던 근무경력으로 퇴직금도 꽤 되었다는 것이

더이상의 수입이 없다는 나의 불안감을 조금 덮어주었다.

하지만 이윽고 나의 무수입 기간이 찾아왔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싫다던가 집안일을 하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기간 나는 정말 일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의 아이가 정말 사랑스러웠고 그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 행복은 내가 회사에 돌아갈 수 있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있었던 것 때문이기도 했나보다.

실업자랄까, 전업주부가 된 나는 조금 울적해졌다.

막상 이력서를 넣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때문에 보통 회사의 9-6 시간동안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나마도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연락이 오는 곳도 없었다.

퇴사 사유가 '육아로 인한 퇴사'이기 때문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냥 취업이 어려운가보다 하는게 아이를 돌보는 내 입장에선 좀 더 마음이 편했다.

경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데 중소기업이긴 하지만,

한 기업에서 7-8년동안의 성실한 업무 경력을 쌓았고

그냥 나태하게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과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꾸준한 어학 공부는 물론

해당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이랑 자격증은 모두 취득했다. 소위 고시 급의 '사'자 자격증 외엔.

연봉을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니었고 하던 일을 그냥 하고 싶었을 뿐이라는게

날 더 서럽게 만들어서 한동안은 아이 탓은 할 수 없어 남편에게, 네가 육아휴직을 하지 그랬어,

라는 원망도 했다. 하지만 원망할 수록 자괴감이 커졌기에 나는 그냥 방향을 돌렸다.


그럼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손가락 빨 정도로 우리집이 어려운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것은 다행히도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돈에 한맺혀 어렵게(엄청나게까지는 아니어도) 자라서,

한참 돈을 벌던 때에 주변으로 짠순이 소리를 들으며 돈을 꽤 모았고

결혼비용도 신혼여행비용도, 심지어 조리원비까지 내가 모은돈으로 해결하고도

이런 무수입 상태가 되기 전에 신혼집을 매매하여

이후 남편의 수입으로도 우리는 집을 유지하고 세 식구 사는데는 문제 없었다.


돈의 필요성과 관계없이 그냥 나는 내 돈이 벌고 싶었다.

20대 이후 대학생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 용돈이란 걸 제대로 받아본 적 없고

내가 벌어 생활해오던 나는 돈을 벌지 못하게 된 내가 너무 낯설고 초라했기에.



우연히 길을 찾아,


그러던 중 동생이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집에서 하는 계약직을 구한다며 소개해주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또 열심히 공부해서 해당 자격증을 취득했고

동생이 알려준 예시를 열심히 학습하여 해당 일을 시작하게되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업무를 계약하여 건당 금액을 받는 재택 프리랜서로

당시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동안 일하여 어지간한 사회 초년생 월급정도를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 일로 또 6년이라는 경력을 쌓았다.

그새 이 업계는 많이 줄어들었고, 나는 계약한 회사를 몇 번 옮겨다니며

나와 맞지 않는 회사(라 말하지만 업무 담당자)와 만났을 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으며

또 불황의 연속이라 건당 계약금액은 동결 혹은 더 낮아져 같은 시간 일을 해도 받는 돈은 줄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놓지 못하는 건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 초조함의 늪에 빠지는 내가

아이가 없는 시간동안 일을 끝내고 오후에 아이를 케어하면서도

집안일까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 일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해마다 금액이 줄어들며 매번 일년의 계약직이라

이후의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이 일 말고 더 좋은 일을 찾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 일이라도 찾을 수 있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나를 우울과 서러움의 늪에서 건져내준 것이 나에게 돈을 가져다준 이 일이라고 다시 긍정회로를 돌렸다.



방황하던 나는

반나절 프리랜서근무자이자 육아맘이자 주부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주욱 보아오던 상사가 그랬듯이,

일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여유가 생기면 한번씩 휴가를 내어 가족과 놀러다니고

그렇게 어느정도 아이가 크고나면 좀 더 내 일에 몰두하거나 전문성을 키우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그러지고 다른 길로 빠져서 지금의 나는 전혀 예상도 못했던 내가 되었다.

나는 한 때 꿈꾸던 모습의 내가 아닌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자꾸 원망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내 계획과는 달랐지만 그 새 삶을 받아들이는 건 순전히 나의 마음에 달려있기에

나는 슬퍼하던 날을 뒤로하고 나의 새로운 삶에 순응했다.

이것은 단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나는 프리랜서로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기한도 지키며 꼬박꼬박 담당자들과의 소통도 성실히 잘 해내고 있다.

또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틈틈이 육아 서적과 유튜브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적응하고 아이와 같이 하는 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깨끗한 집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아이와 같이 먹는 하루 저녁 한끼는 맛있고 즐거운 식사가 되도록 잘 차려주고있다.

하루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이렇게 내 일을 하느라 밤에는 매일 녹초가 되는 일상이지만

가족이 아프지 않고 이렇게 내가 성실하게 내 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매일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워킹맘이 아니고, 전업주부도 아니면 뭐 어떠랴.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으로 살아온 게 나의 현재이고,

현재의 나는 매일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날에 나는 내가 하는 일로 나를 정의하고 싶어했지만,

그래서 지금의 나를 딱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하루 하루 잘 살고 있는 나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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