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하나가 아니다. 자갈 틈에 몸을 숨기고 이따금 집게발을 움직이는 생명이 본체다. 벗어놓은 껍데기는 물발이 없는 어항 안에서조차 가재의 미약한 움직임에 힘없이 휩쓸린다. 가재가 움직이지 않으면 껍데기도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 지나고 들여다보아도 가재는 숨었던 자리에 그대로다. 이틀째, 드디어 껍데기를 끌고 가서 갉아먹기 시작한다.
가재는 옛 껍데기를 벗어야 성장할 수 있다. 낡은 껍데기가 압력을 받고 쪼개지면 그사이를 빠져나와야 하는데 아마 끔찍한 고통일 게다. 새 껍데기가 단단해질 동안 몸은 무방비 상태다. 탈피 직후에 한참 숨어 지내는 이유다. 잘못하면 죽거나 기형이 될지도 모르지만 탈피를 못 하면 그 껍데기 안에 갇혀 결국 죽고 만다.
처음 탈피한 빈 껍데기를 보았을 때는 가재가 죽은 것인 줄 알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똑같은 모양과 색깔 그대로 벗어둔 그것은 너무 감쪽같아서 놀랄 만했다. 발가벗은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죽어버린 시간을 보는 것만큼 섬뜩했다.
가재가 탈피각을 스스로 먹는 것은 새 껍데기를 단단하게 하기 위함이다. 좁은 어항 안에서 갉아 먹던 껍데기 일부가 부유한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부딪히기만 하는 내 안에 맴도는 메아리처럼 보인다. 돌고 돌아도 닿는 곳 없이 떠다닐 뿐이다. 걷어내지 않으면 어항 안을 흐려 숨을 막고 말 것이다.
원기를 회복한 가재는 손바닥만 한 어항에서도 분주하다. 가재의 작은 세상에는 물레방아도 있고 열리지 않는 창문도 있다. 사람의 집을 본떠 만든 풍경에 더해 홍예다리를 건너다니는 가재는 나름대로 제 몫의 일을 하는 모양이다. 껍데기의 색도 점점 짙어진다. 튼튼해졌다는 증거다. 내 방의 창문은 언제든 활짝 열어젖힐 수 있는데 커튼을 걷지 않은 지가 오래다. 배불리 먹을 음식과 멀쩡한 두 다리가 있지만 모든 것이 빛바랜 고물처럼 붙박여있다. 핏기 없는 살갗은 제풀에 지쳐 꼬집고 때려도 한참 동안 창백하다.
지난겨울 우연히 대학 시절 은사님을 마주쳤다. 철벽같이 근엄한 교수님이었지만 졸업 후 스승의 날에 보낸 작은 선물에 손수 안부 문자를 보내주셨던 분이다. ‘강의 시간에 늘 반짝이던 네 눈동자가 아직 선하다.’라는 답장에 십수 년 전의 나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때의 나는 눈부시고 돋보였다. 엄격한 교수님의 눈길에서 총애를 느낄 만큼 스스로 빛났다. 다만, 넝마 같은 일상의 자락을 겨우 붙들고 있는 지금의 나는 몸을 숨기고 말았다. 빛바랜 내 눈동자를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춰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내 처지가 뼈아프게 실감 났다.
초라해지는 스스로를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시류에 올라타지 못한 나의 처지를 연민 없이 사랑하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주름은 늘어 가는데 진실 된 삶의 흔적은 헐겁다. 번지르르한 잉어등처럼 반사된 빛으로 연명하고 있을 뿐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진실이라는 폭풍은 가볍디가벼운 나를 늘 위협한다.
인생의 절정을 함께 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는 일은 씁쓸하다. 우리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고, 나는 시들어갈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남에게 굽실거리며 보내야 하는 나의 하루와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주소, 누가 볼까 봐 쫓기듯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일은 꽉 끼는 껍데기 안에 짓눌린 모습이다.
오열이 필요할 때가 있다. 숨이 멎을 만큼 울면서 속을 덜어내야 하는 때가. 애를 쓰며 버티던 무의식이 찢어졌다. 그토록 작은 눈물방울의 무거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얼어붙은 거리에서 나는 온몸으로 울음을 토했다.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고, 혈육과 연을 끊었고, 몸 안의 물질들이 뒤엉겨 약이 없으면 등을 펴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내 무릎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삶의 예각을 버티고 있었건만, 20대의 그림자와 마주친 날에 결국 꺾이고 말았다.
눈물은 삶의 고난보다, 몸피보다 무겁다. 그동안 나는 왜 울지 못했던가. 토해낸 울음은 몸을 절반쯤 가볍게 해주었다. 눈물에 불어 터져버린 틈새로 껍데기가 열렸다. 옛날, 빛났던 것은 맞으나 지금은 바래져 버린 과거의 영광을 붙들고 그 시절에 머무르려 했나보다. 작고 낡은 껍데기에 갇혀 현실을 회피하는 나,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고 갈망하기만 하는 나는 찢어지고 말았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한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처음 찾은 곳은 글을 배우는 곳이다. 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다. 글을 쓰며 만난 스승은 내 안의 고인 물을 다 퍼내야 새로운 샘이 솟는다고 하셨다. 아직 의연함이 부족한 탓일까. 빈 종이 위에 껍데기를 벗어놓고 상처 입은 몸으로 활자 뒤에 숨는다. 문장 사이사이에 부식된 감정이 떠다닌다.
새 껍데기가 기대했던 만큼 근사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대로를 사랑하리라.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더라도 나만큼은 변하리라.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은 낡은 껍데기를 갉아먹는 일이다. 맵고 쓰다. 어쩌다 목에 걸려 헛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반짝이던 시절은 더 이상 달지 않고 악취만 풍긴다. 가재가 벗어놓은 껍질을 먹으며 양분을 채우듯, 내 안에서 소란스럽게 부딪히는 상념과 메아리를 삼킨다.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부정하지 않는 것, 자신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것이 단단한 껍질이 되어 나를 감싸고 성장시킬 줄 믿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코 껍데기 안에 있는 것이다.
생각이 길어지는 동안 여기저기가 아파 실제로도 앓아누웠다. 탈피가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껍데기를 벗어내고 얻는 삶은 온전히 내게 달린 일이다. 온갖 가능성과 빛나는 미래로 점철된 젊은 날의 나에게 전하고 싶다. 그 빛을 잃어야 더 밝은 영광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껍질을 벗고 나오면 새로운 내가 과거의 나를 바로 보고서리라. 그 안에 갇혔던 시간 또한 나의 것이기에 버리지 않고 가치 있게 여기려 한다. 그 낡은 껍질이 나를 더 옹골지게 만들어 줄 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