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열차

by 현이

구원열차


한여름에도 고향 역은 시렸다. 도시의 규모에 맞지 않게 넓은 광장은 허우룩한 속처럼 굶주려 보였다. 기차는 누군가 정성껏 수놓은 선로를 따라 마음 편히 달려갈 텐데 나는 어디서 출발점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다만 어느 역이든 내려서는 곳에서 나를 맞아 주리라.

고향을 떠올리는 일에는 매번 신경통을 느낀다. 상처를 남기는 사건들은 원하지 않아도 땀땀이 연결되고 그 순간에 겪은 감정들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더군다나 그것은 현재가 아니라 오로지 과거다. 그때의 감정이 완성되어 있으므로 아무 때고 손댈 수 있는 밑그림이 아니다.

출입문이 자주 막히는 삶이었다. 헤치고 나갈 의욕이 모자라면 쉽게 떠나보내고는 했다. 중요한 일들은 배차간격이 길어서 다음 기회까지 막막했다. 의지할 데 없는 삶은 홀로 서서 무언가를 늘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내 정신에 빼곡하게 들어찬 어둠은 완전했다. 한 치의 틈도 없는 어둠을 어디서부터 걷어내야 할지 몰랐다. 그럴 때면 이유 없이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향 역은 피로하고 무거운 과업의 일부였다. 역에 내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들어가는 시골길은 무던히 지쳤다. 갑자기 끊어진 선로처럼 집 앞에 서면 삐걱거리는 대문턱이 발목을 할퀴었다. 무심중에 어수선한 집기들, 엄마의 식어버린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은 매번 나를 깊은 터널로 밀어 넣었다. 굽이진 삶으로 엄마가 얻은 것은 고작 귀밑머리 옆에 기찻길처럼 놓인 수술 자국이었다.

완충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앞뒤를 들이받는 날들이 있었다. 연결고리는 엄마였다. 남루한 그 삶이 내게로 옮겨붙는 것만 같아 모진 말을 쏟아내고 엄마를 버려둔 채 뛰쳐나왔다. 달아난 그날도 갈 곳이 마땅찮아 결국 기차역으로 향했다. 집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것과 반대로 갈 곳이 없어도 받아주는 곳이었다.

동대구역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북쪽이든 서쪽이든 닿고 싶은 데가 있겠거니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덜컹거리는 기차간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시커먼 터널에 들어갈 때마다 차창에 비친 내 몰골이 유령과 닮았다는 감상만 남아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제 길을 찾아 사방으로 뻗어가는 환승역에서 나만 귀를 틀어막고 정지해 있었다.

무턱대고 점촌역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길, 달아나는 중에도 인심 넉넉한 무궁화호의 속도는 창밖의 풍경을 붙들어 주었다. 바삐 달아나는 해가 야속했다. 사람도 소리도 희미한 오래된 간이역을 생각하며 자꾸 솟아오르는 감정을 내려 앉혔다.

점촌역에 섰을 때는 저물녘 하늘이 발갛게 열려 꽃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을날의 저녁은 작은 도시를 온통 감싸안고 토닥토닥 가라앉혔다. 플랫폼 끝자락에 걸려있는 볕 한 토막이 조용히 녹슬고 있었다. 덧없이 시간만 보내며 대합실과 플랫폼을 거닐었다.

선로를 따라 코스모스밭이 가지런했다. 그 안에 오래전 멈춰버린 증기기관차가 시간을 전시하듯 서 있었다. 꼼짝없이 그 앞에 멈추고 말았다. 달아나고 싶어 올라탄 기차였는데 그 멈춤이 목적지보다 더 멀리 나를 데려갔다.

한때 달리는 길마다 역사를 새로 쓰며 부지런히 세상을 누볐을 기차다. 무거운 화차를 끌고 밀며 쉬지 않고 몸을 놀렸을 게다. 지금은 코스모스 꽃놀이에 편안한 여생을 즐길지 모르겠으나 우렁찬 기적 소리 울리던 젊은 날의 환호를 잊지 못할 터이다. 이제는 영영 빛이 말라버린 전조등으로 꽃을 알아볼 수는 있을까. 상흔으로 얼룩진 바퀴에 절룩이는 엄마의 다리가 겹친다. 외로워 보인다.

안광을 잃은 엄마의 눈동자가 감각을 넘어왔다. 생기를 잃고 탁해진 눈동자에 이 꽃밭을 바치고 싶었다. 꽃잎이 물을 머금고 흐드러졌다. 코스모스가 얼굴을 더듬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아주느라 그랬는지 코스모스는 그래그래, 등을 굽히고 나를 품었다.

길을 잃고 멈춰 선 영혼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결국 가늠조차 어려운 각진 바퀴의 삶이었다. 절룩이는 다리는 이가 빠진 바퀴를 굴려 달리듯이 고단했다. 일생 정차한 적 없는 무거운 열차였다. 열 량쯤 되는 화차를 끌고 밤낮 달리기만 하며 당신 한 몸 불사르고 말았다. 재만 남은 회색 눈동자는 한 때 꽃도 보고 빛도 발했다. 엄마의 눈동자를 꺼트린 것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 당신의 탓이 아니었다.

걸음걸음 매인 삶이었다. 달아날 곳을 찾아 떠나지도, 청청한 길을 따라 걷지도 못하는 엄마의 삶을 나는 담보로 삼았다. 한창 빛나던 눈동자는 나를 업고 달리면서도 많은 세상을 비춰주었다. 내가 달아난 빈자리를 맴돌고 있을 허망한 동공이 사무쳤다. 돌아갈 곳은 집이 아니라 엄마였다. 여전히 낡고 모난 바퀴를 굴리고 있을 엄마에게 돌아가야 했다.

계절이 달라진 듯 어둠살이 내려앉았다. 고향 역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낱장인 표가 두 장인 듯 손바닥에 포개졌다. 올 때는 아니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받은 기차표에는 왜인지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일말의 구원을 바라며 그런 생각이 들었으리라.

기차역이 점점 뒤로 물러났다. 점촌역의 다사로운 가로등이 나를 배웅했다. 굽이지는 철길 사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쯤 용서를 얻어가는 마음이 들었다. 얼른 지나쳐가는 풍경 속에 나를 파묻었다. 기찻길에 칸칸이 나를 내려놓았다.

고향 역에 내렸다. 마치 한 번도 그 역에 내려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먹먹해진 양쪽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한낮의 태양 아래 선 듯 어둠이 사위고 눈이 밝아졌다.

그곳은 여전히 흉이 남은 상처다. 아득한 폐선 부지 위에 위태롭게 선 엄마도 이따금 마주한다. 그럼에도 귀를 틀어막지 않고 유유히 플랫폼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한 갈피를 잡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랫동안 멈춰있던 기차가 움직인다. 끝을 모르는 터널일지라도 철컹철컹, 전조등을 밝히며 완만히 진입한다. 한 땀 한 땀 철길 따라 내 이야기를 엮어낸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이해의 터널을 지난다. 치유와 성장의 터널도 지날 것이다. 온갖 상흔을 매단 긴 기차가 지난한 터널을 벗어나면 비로소 대답을 들려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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