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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킴 Apr 14. 2024

겪어야만 했던 별거.

지금이 떠날 마지막 기회는 아닌 걸까.

 2020년 결혼을 하고 고비가 올 때마다 나는 '삼 년만 버티고 결정하자'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 빼고 다들 잘만 사는 결혼 같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어느 순간부터 무슬림 남자는 금장구를 착용하면 안 된다며 결혼반지도 안 낀 남편. 빈 손가락을 보다가 딱 삼 년 차 은반지를 사줬다. 본인 문화에선 남편이 다 해주는 거라지만 나는 내가 끼워주고 싶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삼 년 차가 된 어느 날 '그래 삼 년, 부정적인 것보단 긍정적인 게 더 많았으니 이 결혼 계속 유지할만하다'라고 혼자 결심을 내렸다.

삼 년이라는 시간이 날 비웃기라도 한 듯 그날부터 며칠 안 가 큰 사단이 우리 관계에 덮쳤고 어쩌다 보니 우리는 별거 중이었고 이혼을 논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 그는 프랑스에.


  3개월 만에 영국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 식탁 중앙에 비참하게 고개를 떨구고 죽어있는 릴리 그리고 차갑고 생기 없는 작업실에 겨우 노랗게 남아있는 산세베리아를 먼저 마주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릴리를 다시 소생시킬 생각조차 안 해본 게 나도 어지간히 마음이 바빴나 보다. 

누구보다 이혼에 강경했던 그였지만 온전한 본인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보니 많이 뉘우쳤는지 내가 도저히 차갑게 돌아설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순간의 감정은 아닌 걸까, 안 그래도 많이 싸우는 커플이고 환경도 어려운데 굳이 다시 돌아가는 게 맞을까..


알 수 없는 마음이었지만 나만 생각하고 움직였다. 한국에 직업도 그 사이에 구해 놨고 돌아가는 비행기도 예약했고. 다만 우리 끝이야라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냥 조금 더 시간을 갖자고 얼버무려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진짜 끝인 본능적으로 남편이 고맙다고 해야 할지 밤새 생기 없이 어눌한 한국말로 '우리 같이, 우리 같이.. '입 밖으로 외웠다.

내 머리는 돌아가야 한다지만 도저히 행동으로 옮겨지지가 않았다.

한국의 오퍼를 거절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놈의 죽일 놈은 아니니 그냥 살아보려고"

"그래, 너희가 겪었어야 할 시기야.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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