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버스의 추억
두 번째 실습
다들 어쩔 줄 몰라 어수선하던 찰나,
평소 우아한 분위기의 명옥(가명) 선생님이
정적을 깬 조용한 한마디를 건넸다.
“다들 괜찮으시면… 우리 집에서 실습해도 좋아요.
전 바구니 써도 상관없어요.
근데 집에 워낙 물건이 많이 없어서 실습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그 순간,
‘기품이란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실습 장소가 정해졌다.
우아한 명옥 씨 댁은,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가 본
고급브랜드 아파트였다.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화려하지 않은 단정한 살림살이가 집주인과 참 많이 닮아있다. 평소 명옥 선생님의 분위기도 그랬다. 수수했지만 교양이 넘치는 그런 분이셨다.
딱히 치울 것도 없는 집을 정리하려니
그냥 노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이날은 명옥선생님이 차려준 맛있는 점심 얻어먹고,
말 그대로 호강만 하다 온 날이었다.
세 번째 실습 장소를 찾아 나서다
벌써 흐지부지 두 번의 실습을 마쳤다.
이제 단 한 번의 기회만 남았다.
마지막 실습만큼은 진짜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었다.
내가 지금 취미로 정리를 배우러 온 사람도 아니고
나중에 현장에서 일하려면 실습 경험 한 번도 그냥 날려버리기엔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팀 막내였던 내가 직접 발로 뛰어
실습 장소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맘카페
“정리수납 1급 실습을 진행할 집을 찾습니다.
무상으로 공간 정리 도와드립니다.”
초보 육아맘 시절 자주 드나들던 동네 맘카페에 먼저 글을 올렸지만
광고성 글로 신고되거나 등업 문제로 인해
올리는 족족 글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아직 활성화가 덜 된 작은 맘카페들을 공략해 보기로 했다.
일일이 신규 가입을 하며 틈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드디어 한 회원이 관심을 보였다.
집도 좁고 아이가 둘이라 정리에 큰 어려움이 있다며
본인 집이 실습 장소로 선정되면 너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실습처가 결정됐다.
거리도 이겨낸 열정
문제는 거리다.
우리 교육생들 대부분의 거주지는 서울 구로구였는데
마지막 실습지는 경기도 시흥이다.
워낙 날짜가 임박해서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먼 거리임에도, 막내가 며칠간 애써 구해온 실습처라며
팀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사님은 “은주선생님은 뭘 해도 성공할 거예요”라며
격려의 말까지 건네주셨다.
그간 애쓴 노력이 보람이 된 순간이다.
시흥으로 가는 빨간 버스
실습 장소는 해결됐지만
처음으로 생판 모르는 집을 정리하는 상황이라
한편으로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나 혼자 가서 하는 것도 아니고,
베테랑 강사님과 든든한 동기들이 함께라
크게 불안하진 않다.
이번 실습만 무사히 마치면
정식 전문가가 된다는 사실이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시흥 가는 빨간 버스에 몸을 싣고
의뢰인의 집을 향했다.
마치 현장 체험학습을 떠나는 학생들처럼
설렘 반, 기대 반의 얼굴로 다들 표정이 밝다.
시흥에서의 마지막 실습
실습집은 아담한 평수에 단란한 네 식구가 사는 집이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지 거실과 방 곳곳에는
장난감과 아기 옷이 가득했다.
우리는 아이들 장난감과 옷 위주로 정리를 시작했다.
공간이 좁아 처음엔 막막했지만,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자
집 안 공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정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온 집 안을 채우는 카레 냄새가 허기를 자극했다.
집주인은 우리가 정리하는 동안 정성껏 끓여둔 카레와
시댁에서 공수해 온 맛있는 김치를
점심으로 대접해 주셨다.
다들 든든히 배를 채우자
지친 몸에 금세 에너지가 돌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정리를 이어갔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집주인도 아주 만족했고,
우리 역시 결과물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마지막 실습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시 빨간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들 피곤했는지 하나둘 눈을 감았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차분히 정리해 봤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조금 감이 잡혔다.
이참에 어린 자녀를 둔 육아맘의 집을
집중 공략해 보기로 했다.
또래 아이를 키우다 보니
대화도 잘 통했고,
육아맘들이 겪는 살림 고충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보 실습생 딱지는 딱 오늘까지 만이다.
이제 1급 자격증이 나오면
정식으로 정리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활동할 일만 남았다.
그것도 아주 의미 있는 일로 말이다.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
당시 내가 들었던 정리수납 수업은 지역사회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구로구에서 교육비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원래는 일반 교육으로 신청해 한 주 수강하던 중, 이 프로그램을 새로 알게 되면서 기존 수강료를 환불받고 이 과정으로 옮겼다.
무료라는 점도 좋았지만, 2급과 1급을 따로 들을 필요 없이 한 번에 통합 과정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완전 무료는 아니다.
무상으로 교육을 지원받은 대신,
지역 내 취약계층 가정을 정리해 주는 봉사활동에 일정 횟수 참여하는 방식이었고,
자격증 응시료는 별도였다.
다음 화 예고
정식으로 정리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시작한
첫 활동은 ‘지역 내 드림스타트 봉사활동’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