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이 사람들 좀 치워주세요'
봉사 현장이 늘 따뜻하고 보람찬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날의 일은, 지금도 떠올리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봉사의 시작
정식으로 정리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지역 내 취약가정의 집 정리를 돕는 봉사활동이었다.
총 다섯 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번 참여할 때마다 몸이 상당히 고되다 보니
대부분은 한두 번만 참여하고 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많은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다섯 번 모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약속된 봉사를 모두 마친 뒤에는
아예 구로구를 벗어나 협회 대표님이 매년 진행하던
드림스타트 주거 정리 지원 사업에도 참여했다.
거의 서울 끝과 끝을 오가는 거리였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망설임 없이 따라갔다.
그렇게 여러 집을 다니며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익혀 갔다.
열악한 환경
봉사로 방문하는 집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생활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TV에서나 보던 쓰레기 집을 만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현장을 몇 번 겪고 나니
온갖 벌레나 쥐를 봐도 잠깐만 움찔할 뿐,
곧바로 하던 일을 이어갈 만큼 평정심이 생겼다.
어느 날은 작업 현장에 있던 바퀴벌레를
집까지 데려온 적도 있었다.
그 뒤로는 요령이 생겼다.
어떤 집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니
항상 큰 비닐봉지를 챙겨가
가방과 겉옷을 넣어 꽉 묶어두고 일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일할 때 조심해야 할 2가지
대표님은 우리가 일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을
수업 중간중간 알려주셨다.
그땐 그냥 ‘주의사항 정도’로 들었지만,
왜 그런 말씀들을 하셨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첫째, 고객을 가르치려 들지 말 것.
정리는 누군가의 생활을 ‘바르게 고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교재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정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사용자 우선의 원칙’을 꼽는다.
정리는 결국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취향과
생활 방식에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집의 살림을
내 기준으로 해석하거나 판단하는 태도는
일을 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었다.
둘째, 어디서든 말을 아껴야 한다.
누가 어디서 들을지 알 수 없다.
무심코 뱉은 농담도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현장에서는 더 각별히 주의하라고 하셨다.
이 당부는 모두 실제 사례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예전에 팀원 두 명이 작업을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집 상태가 너무 심하다는 얘기를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하필 엘리베이터 안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그 집 친정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날 두 사람의 경솔한 언행으로 팀 전체가 큰 곤란을 겪을 뻔했다고 한다.
그땐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실제로 있겠어?’
하고 가볍게 듣고 넘겼던 얘기였지만,
나는 곧 이와 비슷한 일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잊지 못할 그날의 사건
그날 우리가 방문한 집은
엄마와 딸, 그리고 어린 손녀까지
세 모녀가 함께 사는 집이었다.
이혼 후 딸이 친정으로 들어오면서
늘어난 살림이 집 안 곳곳을 가득 채운 탓에
정리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나는 주방 구역을 맡았다.
최소 10년은 된 조미료들이 나올 정도로
버릴 것들이 많았다.
어머님은 고물상 일을,
따님은 의류 매장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집 안에는 잡동사니와 옷이 유독 많았다.
주방 정리를 서둘러 마치고 옷방으로 합류하기 전,
대표님과 나는 잠시 편의점에 들러
다 같이 마실 음료를 사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던 평범한 하루다.
하지만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큰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뛰어가 보니
사람들이 마당에 모두 나와 있었다.
그중 우리 팀원 한 분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서서 집주인께 계속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이미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 이 사람들 좀 치워주세요.”
순간, 멍했다.
어떻게 흘러가는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다.
대표님 역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무슨 일이에요?” 하고 물었지만
현장에 있던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알고 보니,
옷방을 정리하던 중 그 맨발의 팀원이
집주인을 험담하는 말을 하다가 당사자에게 딱 걸린 것이었다.
집주인 옷들이 다소 짧거나 화려한 편이었는데,
그걸 두고 선을 넘는 막말을 해버린 것이다.
“술집 여자 아니냐”는 식의 비하부터
집에 대한 모욕적인 말까지…
필터 없는 무지막지한 발언에
듣고 있던 나조차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수습할 기회
대표님은 화가 난 집주인을 달래고 계셨고,
나는 말실수를 한 팀원의 짐을 챙겨 조용히 밖으로 나와 일단 댁으로 돌려보냈다.
막말 수위가 워낙 높다 보니, 지금 상황에서는 그 팀원을 집주인 눈에 안 띄게 하는 게 상책이었다.
볼 때마다 왠지 그녀의 화를 돋울 것만 같았다.
우리는 집주인께 진심을 다해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부탁드렸다.
정리를 끝까지 마친 뒤 다시 이야기하자고 간곡히 요청했다.
당시 집 안은 마치 막 이사 온 집처럼
짐들이 전부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봉사를 중단하면 집주인 혼자서는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머님이 퇴근해 돌아오시면
이 모습을 보고 놀랄 건 불 보듯 뻔했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집주인은
어머니가 이 상황을 아시면 엄청 속상해하실 거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은 정리를 마무리지어 달라고 하셨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말 그대로 죽어라 일했다.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고,
상처 난 마음이 쉽게 아물 리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집을
정성껏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을 허투루 쓸 여유가 없었다.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집주인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는 듯했다.
우리를 위해 커피를 사다 주시기도 했다.
옅은 미소 뒤 커피를 받아 든 표정들은 다들 무겁다.
모두가 그저 이 상황이 속상하다.
보통 봉사 작업은 오후 4시면 마무리되지만
그날은 밤 9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나는 아이가 어려 6시 무렵 먼저 돌아와
마지막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어머님께서 정리된 집을 보시고 우셨다고 했다.
“정말… 너무너무 고맙다”라고
우리는 모두 울컥했다.
중간에 그 일만 없었다면
참 따뜻한 하루로 남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사실 이날의 실수는,
협회 이미지 실추는 물론
대표님의 생계까지 흔들 수 있는 큰 문제였다.
공기관이 지원하는 복지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집주인과 센터 측에서
고생한 우리 팀원들을 봐서
이번 일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며칠 뒤, 다음 봉사 날에는
센터 담당자님이 직접 현장에 오셔서
한 번 더 주의를 당부하고 가셨다.
실수한 팀원은 그 이후로
그 봉사활동에 다시 참여할 수 없었다.
큰 갈등 없이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날의 분위기와 그 난리 속에서 배운 건
지금도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그날 얻은 강력한 교훈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건
기술도, 체력도 아니다.
바로 입조심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언제든 칼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날 이후 절대 잊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