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사과정까지 가게 된 이유

낭만 있던 그날의 면접

by 각선생


사실 난 처음부터 강사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저 빨리 컨설턴트로 취업하고 싶었다.

내가 자격증을 취득한 협회는
일반 고객 대상 컨설팅을 운영하는 곳이 아니어서
취업 연계도 없었고, 외부 업체와 연결될 통로도 사실상 없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강사과정까지 이어간 이유는
결국 취업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강사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면접에서 조금이라도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또한 협회 대표님 수업도 재미있었고,
기초부터 시작했던 곳이라
익숙한 환경에서 이어서 배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정리수납 업계의 현실

정리수납 컨설팅은 보통 여러 명이 팀으로 움직인다.
실력이 쌓이고 현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
여러 업체에서 불러주는 일이 많지만,
생초보를 신규 인력으로 바로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우리처럼 업계 인맥 하나 없는 신입들에게는
결국 업체 면접이 유일한 첫 진입 통로인셈이다.

이후에는 본인 하기 달렸다
같이 일을 했을 때,
일머리가 있고 성실함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다음 작업이나 다른 업체 소개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런 식으로 점차 인맥이 생기고, 그 인맥을 통해
더 많은 현장을 경험할 기회가 열린다.
요즘은 다양한 정리 전문 플랫폼이 생겨나 일할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청소 전문 플랫폼인 미소가 유일했다.

그래서 나중에 정 취업이 안 되면
“우리끼리라도 뭔가 해보자”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리 교육기관을 고르는 팁

나처럼 정리를 업으로 삼기 위해 배우는 거면,
정리·수납 컨설팅도 같이 운영하는 기관에서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현장 중심의 실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실제 고객의 집에서 실습이 이뤄지기도 한다.

컨설팅을 운영하는 기관에서는 실습생 신분으로 현장에 동행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성실함이나 작업 스타일이 팀장의 눈에 띄면 자격증 취득 후 곧바로 일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내가 원했던 그림이 바로 이거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격증 취득 후에도 자원봉사나 기수·선후배 모임이 이어지는 협회는
정서적·실무적 지원을 받기 쉽다.
입문 단계에서는 이런 연결점이 더욱 도움이 된다.
협회가 운영하는 블로그나 카페를 보면 어느 정도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나를 더 성장시킨 계기

나는 컨설팅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찾아야 했기에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다
같은 협회 선배 중에도 먼저 이 길을 간 사람이 없었다.
우리 동기가 컨설팅을 시작한 첫 기수다.

그 이후 뒷 기수 강사님들도 차례로 우리와 같은 수순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객 의뢰가 들어오면 견적은 어떤 방식으로 책정되는지,
어떤 준비물들을 챙겨야는지
예를 들면 장갑. 라벨기. 접이식 의자. 작업시트. 등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직접 부딪치며 필요한 것들을 익혀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과정 모두가
경험이 되었고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첫 면접의 기회

강사과정을 신청해 놓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가고 싶은 업체들에 틈날 때마다 이력서를 넣었다.
그때 당시 정리 브랜드 중에서는 ‘덤*’과 ‘베리*’이 가장 유명했다.
이 두 곳은 기회만 되면 꼭 일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중 ‘베리*’에서 연락이 왔다.
본부장님이라고 소개하셨고, 그분과 첫 만남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무실 문이 열리자 환하게 맞아주신 본부장님은 첫눈에 빛이 났다.
예쁘다, 인상이 좋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멋있었다.
커리어 있는 전문가’ 포스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멋짐이었다.
내가 선택한 업종에 더욱 믿음이 생겼다.

본부장님과의 면접 분위기는 생각보다 편안했다.
현장의 실제 분위기와 프리랜서 구조에 대해서도
성의 있게 알려주셨다.

프리랜서 구조의 현실

정리수납 컨설팅은 시즌마다 일의 편차가 큰 편이다
일이 몰릴 때는 휴일도 없을 만큼 정신없이 바쁘지만
한동안 일감이 뜸한 상황도 흔한 일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모든 인력을 정규직으로 둘 수없다.
그래서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 선생님들을 넉넉하게 확보해 두는 방식이라고 했다.


본부장님이 이번 면접을 진행한 이유도 그 이유다.
예비 인원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것이고, 1순위로는 자사 (베리*)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교육생에게 먼저 기회를 준다고 했다.

다만 일할 기회를 드려도 안착하는 분이 생각보다 적다고 했다.
현장 특성상 체력 부담도 크고,
일정 역시 일정치 않다 보니
몇 번만 해보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내가 업계에 있어보니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인원을 넉넉히 확보할 수밖에 없고,
내 차례가 되면 연락 주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나는 본부장님을 만난 김에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죄다 물어보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어떤 앞치마가 편한지,
운전은 필수인지,
내가 곧 강사 과정을 앞두고 있는데
나중에 팀장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등등.

지금 생각하면 다 기본적인 질문들이지만,
본부장님은 아주 세심하고 상냥하게 알려주셨다.

앞치마는 바로 브랜드를 알려주셨다.
검색해 보니 정말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이었다.
공방 작가들이 많이 착용하는 스타일인데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현장에서 쓰는 앞치마는 나를 나타내는 유일한 유니폼이라 전문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신경 쓰는 게 좋다고 조언해 주셨다.

운전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팀장이 되면 각종 수납 도구와 장비를 챙겨 다녀야 하고 교통편이 불편한 현장도 많기 때문에
차가 있으면 확실히 유리하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곧바로 운전학원으로 향했다.


강사 과정에 대한 조언도 지금 보니 모두 맞는 말이다.
본부장님은 충분한 현장 경험이 있어야 좋은 강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컨설팅을 천 번은 해봐야 교안 없이도 사람들 앞에서 한두 시간 술술 떠들 수 있지 않겠어요?”
라며 경험에서 우러난 현실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컨설팅 천 번 해보기를 목표로 잡았다.

낭만 있던 그날의 면접

그날 나는 면접 보러 가서
본부장님께 꽤 많은 팁을 얻고 돌아왔다.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이미 감사한 시간이었다.

헤어질 무렵, 본부장님은
“나도 선생님 나이쯤에 이 일을 시작했어요”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배우는 강사 과정이 끝날 무렵,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때가 12월이라
“눈 올 때쯤 다시 보자”라고 하신 말이
아주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정말로,
본부장님은 크리스마스 무렵 그 약속을 지키셨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그 시기, 동기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게 되면서
결국 그 업체와는 인연이 닿지 못했다.

본부장님은 여전히 멋있었다.

앞으로를 응원한다는 답변을 끝으로 다시 뵌 적은 없다.


하지만 그날의 현** 본부장님은 여전히 내 기억 속

멋진 워너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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