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다.

콤플렉스로 시작된 강사 과정

by 각선생

지금 내가 수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기적에 가깝다.

나는 처음부터 강의를 하겠다는 목표로
강사 과정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여느 강사들처럼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며,
타고난 무대 체질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까지 와 있다는 사실이
요즘도 가끔 낯설다.

사실 대학에 대한 미련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더 심해졌다.

어느 날, 오빠에게 지금이라도 대학에 가는 게 맞는지 물었다.
친정 오빠 역시 뒤늦게 야간대학을 다니며
일과 학업을 병행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 누구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었다.

오빠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꼭 필요한 전공이 아니라면,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학이 아닌 이상
‘간판’을 위한 진학은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했다.

차라리 그 시간과 비용을
지금 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데 쓰는 편이
훨씬 실속 있는 선택일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다 늦은 나이에 학점은행제나 사이버대학을 다니면서 남편에게 더는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한 외조 덕분에
강사 과정까지 등록할 수 있었으니,
이제는 나도 경제활동을 통해
남편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대학 진학의 꿈은 내려놓았고,
대신 이 일을 더 깊이 파고들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교안이 뭔지,
PPT가 뭔지도 몰랐다.
게다가 나는 사투리도 꽤 심한 편이다.
서울에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스승님은 사투리가 너무 매력적이니
굳이 고치려 애쓰지 말라고 했다
내 말투 안에 사람을 끄는 힘이 있고,
그 힘은 분명 나만의 색을 가진 강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그저 좋게 말해주시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강의 초반 인사부터
내 말투에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건 사실이다.

강의는 첫 시작에서
청중을 집중시키지 못하면
분위기를 끌고 가기 어렵다.
그만큼 인트로가 중요하다.



강사 과정이 열린 첫날,
파워포인트 설치부터 막혔고,
발표 자료를 만드는 건 더 막막했다.
동기 중에는 대학생 자녀에게 도움을 받아
교안을 준비해 오는 분들도 있었다.

슬라이드 없이 그냥 말로만 설명하면 안 되냐고
강사님께 여쭈니,
우리가 하는 수업은
말로만 설명해서는 전달되기 어려운,
사실에 기반한 교육이기 때문에
시각적 자료가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결국 또 배워야 했다.

그 무렵 마침 동네 문화원에서
어르신 대상 컴퓨터 수업이 열린다는 정보를 얻었다.
나는 만 원을 내고 그 수업을 바로 신청했다.

선착순 접수라
접수 시작과 동시에 광클릭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다행히도 운 좋게 정원 안에 들 수 있었다.

첫 수업 날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어르신들 사이에서 내 존재는 단연 눈에 띄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몇 번 받다 보니 괜히 혼자 뻘쭘했다.


하지만 어색함은 잠시였다.
수업이 시작되자 모두가 배움에 집중했고,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춘 느긋한 설명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배워서 알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배운 건 지금도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다
아주 능숙한 건 아니지만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정리 한번 해보겠다고 시작한 일들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
운전부터 컴퓨터까지,
온통 배울 거 투성이다
정리 하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이걸 해결하면 저게 부족했고,
저걸 채우면 또 다른 빈칸이 드러났다.


그래서 나는 배울 때마다 작은 기준을 하나 세웠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지 않기로.
딱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도 계속 배워나가는 중이다.

챗gpt부터 영상 편집까지 ᆢ

트렌드가 계속 바뀌니 어쩔 수가 없다.

하기 싫어도 필요한 상황이 되면 그냥 한다.



이 모든 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학벌이 없어도,
한 분야를 오래 붙잡고
그 분야 전문가가 되면
강사가 될 수 있다.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컴퓨터로 문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내가
지금은 이 자리에 강사로 불리고 있다.

나는 그저 끝까지 이 일을 놓지 않았을 뿐이다.
버틴 시간만큼, 내겐 경력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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