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통보받은 이후, 소소하지만, 회사에서 주는 혜택을 받기 위해 인사 부서 담당자와 가끔 통화를 했다.
한없이 친절했던 담당자의 말투가 사무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다가 몇 번은 언성을 높였고,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 끝내 "윗사람 바꾸라"라고 해야 했다.
자격지심에 내가 예민한 탓이려니 했다.
같은 상황의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착각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의도하고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나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받았던 것은 특별대우였다.
‘나쁘다’라고 느꼈던 일이 회사 밖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퇴직 이후 삶의 방향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은퇴한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도 하고 가르침도 받았다.
그 와중에 한 분은 일부러 서울까지 와서 내게 가르침과 위로를 해주셨다.
브런치에 커피까지 사주셨다. 그날의 점심과 카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었다.
오래 알고 지냈던 협력사 대표도 전날의 과한 술로 아침까지 누워있던 나를 찾아와 용기를 주었다.
나는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그린 은퇴 후의 그림은 제쳐 두기로 하고, 다시 월급쟁이가 되기로 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너무 지나면 갈 곳이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나의 경력과 성격에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손을 내밀어 주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렇지만 퇴임 후에도 아무 곳에나 내 맘대로 갈 수는 없었다.
회사, 즉 윗선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나는 자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줄에 묶인 머슴이었다.
인사 담당 임원에게 내가 가려는 곳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최종 의사 결정권자를 잘 이해시켜 주기를 바랐다.
공식적인 퇴사일쯤에 이르러, 타 회사로 입사 허락이 떨어졌다.
송별 식사 자리에서 뵌 부회장님은 “뭘, 그리 서둘러?”라는 말씀으로 나의 상황을 알고 있음을 에둘러 알려 주었다.
한편으로, 나의 조급함을 일깨워 주신 것임은 나중에 깨달을 수 있었다.
약간의 오해와 소통의 오류를 거쳐 갈 곳을 정했다.
퇴직 전 일과도 연관이 있어 적응에 힘이 덜 들것으로 기대했고, 나의 강점을 살릴 수 있으리라 싶었다.
공식적인 퇴직일 후 스무날을 쉬고 새로운 회사로 출근했다.
또 다른 머슴살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