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의 햇살과 혜산시의 기억
한가로움이란 단어를 온전히 품은 듯, 햇살은 따뜻하게 내려앉고 바람은 산들산들 스쳐 간다. 10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기는 여전히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인턴십을 위해 West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운 좋게도서류와 면접을 통과해 이곳 샌디에고까지 오게 되었다. 머무는 숙소에서 바다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타월을 펴고,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낀 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는 지금, 나는 미드 속에서만 보던 장면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책을 읽는 사람, 반려견과 함께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그리고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가족들. 해변에는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삶이 고요히 흐르고 있다. 나는 지금, 꿈에도 꾸지 못할 꿈을 살고 있다. 바다 옆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고, 그래서 더 감사하다. 오늘은 그저 평화롭고,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하루다.
하지만 이렇게 햇살 아래 누워 있으면, 마음 한 켠에는 어린 시절 혜산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 고향 혜산시는 산과 강이 흐르는 평화로운 도시였지만, 바다는 늘 먼 꿈처럼 존재했다. 평생 바다를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조개껍질 하나에도 설레고 행복해했다.
그 시절 내 곁에는 ‘림 삼춘’이 있었다. 그는 평성 출신이었지만, 군대에 나와 혜산시에 배치되었고, 우리 집이 매대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주 들르게 되었다. 군복 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던 모습은 언제나 든든했고, 집 안은 금세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올랐다. 어린 나는 삼춘을 단순히 든든한 오빠처럼 느꼈지만, 돌이켜보면 그의 다정함은 이미 나를 향한 작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어느 날, 삼춘은 평성 고향으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그가 집에 다녀오는 동안, 부모님이 챙겨주신 돈으로 음식을 한 아름 사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또한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주워 나에게 선물로 가져왔다. 나는 그 순간, 이미 그것이 군인 월급으로는 결코 마련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써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삼춘은 내가 힘든 날이면 누가 나를 괴롭혔는지 끝까지 묻고, 자신이 대신 화를 내주며 나를 다독였다. 다리를 다친 날에도, 배고플까 봐 군복 주머니 속 사탕을 내 손에 쥐어주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다정함 속에서 나는 보호받는 듯 안도했고, 알 수 없는 설렘에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청년근위대 훈련으로 집에 가지 못하던 날. 수료식 마지막 날, 부모님과 친척들이 모였고, 삼춘도 그 속에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망가뜨려 사진을 남기지 못했지만, 삼춘은 다음엔 자신이 카메라를 사 오겠다고 미소 지었다. 그때 느꼈던 설렘과 안도감은 지금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삼춘을 두고 탈북을 해야 했다. 그때는 내 마음이 그에게 얼마나 깊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탈북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성에서 그와 함께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다는 내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닿지 못한 사랑과 설렘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심장처럼 남아 있다.
이제 나는 샌디에고의 해변에 누워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갈매기가 하늘을 스치고, 파도는 햇살을 반짝이며 속삭인다. 조개껍질 하나에도 설레던 아이가 어느새 진짜 바다 위에 누워 글을 쓰고 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풍경이 겹치는 순간, 나는 혼자 흐뭇하게 웃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삼춘에게 속삭인다.
“어디에 있든 아프지 말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해와 달이 어디에 있든 서로를 볼 수 있듯, 내가 보는 하늘을 삼춘도 보고, 햇빛이 삼춘을 비추어 나처럼 방긋 웃길 바래. 바람이 내 마음을 실어다 주어, 삼춘에게 닿기를.”
바람이 전해주는 파도 소리와 햇살의 온기 속에서, 나는 그 말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리라는 믿음을 느낀다. 북한에서라면 바다를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을 테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겠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하늘과 바다와 바람 속에서 마음껏 숨 쉬고 있다. 오늘도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그 따스한 평화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