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숨 쉬는 한, 그대는 기억의 일부가 되어 영원할 것입니다.
영화 노매드 랜드(nomad land)
노매드 랜드라는 영화에 이동진 평론가가 별 5개를 주었다고 몇 번 언급되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카드 할인으로 저렴하게 볼 수 있어서 즉흥적으로 보러 갔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고를 때에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거나 보통 이야기 흐름이 끌리는 것으로 선택하는데 정말 아무런 기본 정보도 없이 선택해서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노매드(namad)가 방랑자, 유목민이라는 뜻인 줄도 모르고 갔으니 할 말 다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no mad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가장 최근에 보았던 미나리라는 영화와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나리의 경우 마치 한 일대의 브이로그를 보는 듯 어린 시절 기억 속에 크게 남았던 일상을 파편처럼 나열하고 자연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영상미와 80년대 아버지가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는 그 한심하고 답 없음에 짜증 나고 또 무해한 내용에 그리운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면, 이 노매드 랜드는 펀이 겪은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최소한의 자막으로 짧게 알려주고 그냥 현재 노매드로 살아가는 주인공 펀의 모습을 바로 보여주어 관객과 주인공 사이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게 만든 뒤 펀에 대해 천천히 알아 가게끔 만든다.
펀이 뭘 좋아하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어떤 사람인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왜 저렇게 살아가는지로 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영화 내내 아주 천천히 풀어낸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에 대해 초반에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아 인물을 파악하고 공감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서서히 달라지는 펀의 태도와 감정 변화에 대해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고 미나리처럼 결말을 흐지부지 끝내는 것이 아니라 펀이라는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조금씩 바뀌는지, 마지막에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지까지 타당하게 설명해내서 결말 또한 또렷하게 만들어낸다.
펀은 탄광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성실히 살았었다. 2011년 탄광산업이 몰락하고 한순간에 버려진 마을을 떠나오게 되면서 남편은 죽고 (이건 영화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주인공의 대사에 슬쩍 등장한다) 자신은 결혼반지 하나, ‘선구자’라고 이름 붙인 자동차 밴(van) 하나, 창고에서 몇 개 골라 담은 짐을 싣고서 ‘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생활한다. 밴 안에서 마리아의 무릎을 베고 누운 예수의 모습을 노래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한편에 산타 조명을 켜 두고 자는 펀의 생활은 마음 편히 머물 곳 없이 버려진 외로운 어린아이 같다.
펀은 타인이 자신의 상황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려고 하면 자신은 괜찮다며 주문을 걸듯 되뇌고 도움의 손길과 호의를 완강하게 거절해버린다. 그러면서 지금의 노매드 상태를 아무렇지 않게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 모습에서 낡은 차에서 사는 생활도 정상적인 집에서 사는 것처럼 안정되어 보이려는 마음과 함께 비참함과 외로움, 고집스러운 자기 합리화까지 느껴져서 참 쓸쓸했다. 자신이 주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시작하게 된 생활도 아니고 씻는 것 하나, 자는 것 하나 편하지 않은 노매드 생활을 지속하며 일을 찾아 헤매던 펀이 마트 안에 있는 판매용 안락의자에 앉아 짧게 조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신을 걱정하는 호의를 거절한 대가로 춥고 고된 밤을 보낸 펀은 어스름한 새벽 자신의 밴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린다가 억지로 쑤셔 넣듯 알려주었던 노매드들이 모이는 곳, 사막으로 향하게 된다. 펀은 타인을 향해 쳐두었던 벽 사이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린다가 슬며시 건넨 호의를 용기를 내어 잡는다. 펀이 시끄럽고 자본에 얽매이게 만드는 도시를 떠나 고요한 자연이 있는 사막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자 묵직한 피아노 연주가 처음으로 시작되는데 그 음악소리가 강하게 다가온다. 그곳에서 린다와 재회하고 자신과 같이 차박 생활을 하는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펀은 노매드의 한 일원으로 원하는 음식을 제공받고 팔이 불편한 스완키의 손이 되어주고, 그곳에서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연설을 듣는다. 그곳에서 펀은 자신과 같은 차박 생활을 하는 노매드들에게 마음을 열고 마음껏 웃으며 펀! 하고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눈짓으로 인사한다. 이 부분은 펀이 아마존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과 점심을 먹으며 무심하고 기계적으로 이름을 소개하고 인사하던 때와 대조된다. 은은한 햇빛을 받으며 노매드 랜드를 천천히 걷는 펀의 표정은 마치 내리는 햇빛에 은총이라도 받는 듯 평안하고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노매드 랜드에서 배운 지식들로 진정한 노매드에 조금 가까워진 펀은 조금 더 능숙하게 사막에서의 노매드 생활을 지속한다. 그 과정에서 펀은 노매드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을 넘기며 타인이 노매드 생활을 하게 된 이유와 노매드 생활을 하며 각자가 무엇을 찾고 있는 중인지 듣게 된다. 노매드 랜드에서 알게 된 노매드들은 펀이 노매드 생활을 하는 동안 우연히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데 노매드 생활이 길어질수록 펀은 노매드 동료들에게 자신이 먼저 다가가 인사하기도 하고 기꺼이 그들을 도우며 교류한다. 펀은 스완키가 특정한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보며 펀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찾은 것 중 하나가 아빠에게서 세트로 선물 받았지만 이제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단풍무늬 접시였는데 나중에 데이브가 부주의하게 깨버릴 때 진심으로 화를 내고 접착재로 고이 이어 붙여 보관한다. 그리고 스완키가 절벽 아래에서 제비와 함께 하늘을 날던 그 여한이 없던 순간의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 마지막 여행을 떠날 때 자신이 어린 시절에 쓰던 인형들까지 나눔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스완키가 암이 뇌로 전이되었다는 판정을 받고는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했던 물건들을 모두 담아 떠나왔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물건들을 목적지를 향해 떠나기 전 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행위를 보며 사람은 죽어도 전해진 물건은 또 다른 기억을 품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노매드들이 펀에게 나누어주었던 캔 따개와 의자가 펀의 일상 속에 녹아있게 되고 (굳이 클로즈업이나 강조해서 찍진 않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펀이 나누어준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가 또 새로운 공룡뼈 라이터(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중생대에 살던 생명의 일부가 남아 지금까지 이어진 거라고 하니 그 유쾌한 비약에 웃음이 났다)로 돌아오는 부분에서 우리의 정신이나 사물의 일부가 지금처럼 돌고 돌아 순환하며 영원히 살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안정된 노매드 생활을 지속하던 펀에게 돈은 언제나 발목을 잡는 존재다. 노매드 생활을 지속할수록 자동차 밴도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하고 지금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펀은 돈이라는 인위적이고 경제적인 굴레 속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돈을 빌리기 위해 언니와 긴 통화를 하고 잠시 언니의 집에 들르게 되는 펀. 펀은 경제 붕괴로 남편과 살던 마을을 떠나야만 했는데 언니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집을 많이 사둘걸 그랬다며 집값과 돈에 대해 떠들어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렇게 펀은 몸이 안락한 언니의 집이 아닌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곳을 집이라 칭하며 다시 노매드 생활로 되돌아간다.
펀이 청년 노매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펀과 그의 남편이 결혼식 때 읊었던 서약인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을 말하는데 여기서 연극 알 앤 제이 지뢰를 거하게 밟았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한다면 그댄 그 어떤 여름날보다 사랑스럽고 온화합니다. 거친 비바람이 5월의 사랑스러운 꽃망울을 흔들고, 우리가 빌려온 여름날은 너무나도 짧기만 합니다. 때로는 천공의 눈이 뜨겁게 빛나고, 또 때로는 그 황금빛 얼굴이 금세 흐려집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으로부터 시들기 마련이고 우연 혹은 자연의 변화로 빛을 잃지만, 그대라는 여름은 시들지 않고 그대의 그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입니다. 죽음도 그대를 그늘 속에 가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는 영원한 운율 속에 시간의 일부가 되리니,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남아 그대에게 새 생명을 줄 것입니다.”(모두 재의역) 이 시를 읊은 펀이 시의 아름다움에 동조하며 시들어 사라져 버린 아름다움과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 깨달은 모습이 참 좋았다.
결국 이 영화는 이 영원한 사랑의 서약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열심히 달려왔던 듯하다. 영화 속에서 펀은 노매드들과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고 마지막엔 또 보자 인사하는데, 죽음이 가두어 이젠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과 함께한 여름날 같았던 시간이 우리의 숨과 눈에 남아있으니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이젠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남편이 ‘네가 살아 있고 숨 쉬고 있는 한 우리의 짧았던 여름날은 영원히 살아남아서 당신에게 생명을 안겨줄 거야.’ 하고 전해주는 말처럼 느껴져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로맨틱하다. 결국 우리는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의 총체이며, 많든 적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것이 나에게 일부가 되어 남는다. 밥 웰스가 펀에게 해주는 말처럼 우리는 사랑하던 사람에게 “또 보자” 인사하고 언젠가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면 된다.
펀에게 지속적으로 수작을 부리던 데이브의 집에 초대를 받은 펀은 데이브에게서 이 편안하고 안락한 집에서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자신의 자리가 아닌 집에 고요하게 작별을 고하고 애초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의자를 밀어 넣고 울타리를 벗어난다. 남편과 함께 살았던 지역에 들러 그곳에 아직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들과 마지막 눈인사를 건넨 후 펀이 과거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떠나는 엔딩까지 완벽하다. 펀은 이제 남편과 살던 마을에서 외부적인 요인으로 쫓겨나 노매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이 돌아오듯이 주기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기꺼이 노매드가 되기를 선택하여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펀이 자신은 ‘일’을 좋아한다고 반복해서 어필하며 일이 있는 곳을 향해 운전대를 잡는 모습에서 나쁜 경제 상황과 함께 펀이 생계유지를 위해 절박하게 일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편으로는 펀이 선택했던 유일한 가족인 남편을 잃은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헤쳐나갈 시간을 스스로 주지 않으며 회피하고 삭막한 현실 속에 숨어 잊으려는 것만 같아 슬펐다.(이런 면에서 도시는 사막보다 더 삭막한 것 같다.) 노매드로 살며 거대한 자연 속에서 펀이 스스로를 돌보고 몸으로 느끼며 삶의 방향을 배워서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맞추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성장이 너무나 기특하다. 펀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다니던 시끄럽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만연한 도시의 소음과 자연에서의 그 고요한 발자국 소리와 빗소리를 듣는 순간이 대비되는 것처럼 도시와 자연이 주는 서로 반대되는 풍경과 소리를 참 잘 표현했고 음악이 나오는 시점들, 하늘의 빛과 시점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잘 다루어서 꼭 조용한 영화관에서 서라운드로 들리는 음향에 집중하며 보았으면 한다. 영화 속 펀의 행동의 변화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보면 크게 감정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아니고 물건의 순환을 통해 아주 잔잔하게 영원히 남을 기억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