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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o Million

Jailbreak

by Jimmy Park

"Innovation is taking two things that already exist and putting them together in a new way." (Tom Freston)


창업 후 3개월 내 매출이 찍히지 않는 사업은 버린다고 했다.


작년 말 트레바리 마지막 모임이 있었다.

참석자가 몇 명 되지 않아 책 외의 내용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난 클럽장이었던 박지웅대표께 물었다.

"처음에 왜 회사를 창업하셨어요?"


생각을 정리하며 한참을 뜸을 들인 후 그는 입을 열었다.


"회사를 여러 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패스트트랙아시아는 Company Builder로 만든 회사입니다.

회사를 여러 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명확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설립 후 3개월 내에 매출 1억 가능한 것만 한다.'

그러다 보니 투자받아 수년간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은 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건 이미 검증된 모델이었어요.
다른 나라에서 검증이 되었는데 국내에는 아직 없는 사업, 그런 게 가장 확실했습니다.
패스트파이브가 그랬어요.

WeWork이 사업모델을 이미 검증했기 때문에 우리는 잘 실행만 하면 됐었습니다.
처음엔 차별화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차별화 아이디어를 내면 낼수록 어설퍼진다고 생각했어요.
가구 사이즈와 배치, 복도 폭 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철저히 따라 했어요.
수년간 사업을 통해 얻어진 데이터 기반 결정이었을 테니 그게 가장 확실했습니다.
2년 후 WeWork이 한국에 들어왔어요.
다행히 우리도 이미 자리를 어느 정도 잡았었고, 그제야 차별화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사업에서 쌓인 경험과 데이터로 뭘 어떻게 차별화할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턴 경쟁이었으니까요."


신선했다.


내가 경험해 온 스타트업 씬에서는 전통적으로 Zero to One을 신봉해 왔다.

다들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 지구에 흠집을 내겠다고 이야기했다.

Zero to One이 대단한 건 어렵기 때문이다.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아무도 걸은 적 없는 눈 덮인 산 길과 같아서
내가 오롯이 위험을 감수하고 발걸음을 내딛으며 길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앞으로 굴리려면 아무리 어려워도 누군가는 그 일을 해내야 한다.

단 한 번뿐인 그 창조의 순간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를 최초로 창조해 낸 창업가들을 높게 평가한다.


박지웅대표의 말은 달랐다. 오히려 반대였다.

Zero to One은 중요하지만 어렵다. 그건 자기가 잘할 수 없는 거라고 보았다.

잘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One to Million으로 승부를 보기로 한 것이다.

냉정한 판단이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을 돌리기 위해 그 역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남의 사업모델을 베꼈다는 비판을 기꺼이 감수하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사업에는 무한대에 수렴하는 어려움이 늘 존재하기에

베낀 사업을 더 크게 키우는 것 역시 대단한 일이다.

창업 후 3개월 내에 매출을 내는 건 신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사업으로 돈을 벌 시간에 돈을 써가며 기술개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고객 대상으로 당장 사업에 뛰어들 서비스가 필요했다.

MBA에서 Case Study를 했던 Groupon이라는 회사가 떠올랐다.
Groupon은 Andrew Mason이 28세 때 만든 소셜커머스 기업이다.
2008년 11월에 설립하여 16개월 만에 유니콘에 등극하여 기록을 경신했다.

사업 모델은 단순했다.

Groupon은 그룹(Group)과 쿠폰(Coupon)의 합성어로
일정 수의 구매자가 모이면 할인 혜택이 활성화되는 일종의 '공동구매' 모델이었다.
동네 상점에게 한 상품을 50~90%까지 할인해서 팔겠다는 동의를 받은 후
할인 쿠폰을 '매일 하나씩' App에 올려서 그 동네의 미래 구매자들을 모아준다.
App에서 판매한 쿠폰 거래 금액은 Groupon과 상점이 5:5로 나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50% 이상 할인을 한다고 하고
할인도 하루에 한 개뿐이니 매일 쿠폰을 확인하는 게 수고스럽지 않았다.
사용 유효기간도 1년을 준다.
'로컬 상점이니 사두면 오다가다 1년 내에 한 번은 쓰겠지.'

그럴듯한 상품의 쿠폰이 뜬 날은 안 살 이유가 없었다. 득템의 기회였다.
하지만 상점 입장에서는 최대 90%까지 할인하는 캠페인에 왜 참여를 할까?
이유는 확실한 마케팅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음식점, 학원 같은 상점들은 벼룩시장 같은 로컬 광고지에 돈을 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마케팅 비용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Groupon은 누가 몇 명이 와서 뭘 먹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게다가 쿠폰을 쓰려고 온 고객들은 다른 상품도 함께 구매했다.
쿠폰은 미끼상품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비용 대비 효과가 눈에 보였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또한 학원, 극장처럼 고객이 늘어나도 한계 비용이 거의 제로인 곳들은

아무리 싸게 할인을 해줘도 이득이다. Better than Nothing 인 것이다.
쿠폰 선결재로 돈이 돌기 시작하니 캐시플로우도 좋아졌다.
지나고 보니 1년 후 쿠폰을 쓰지 않은 사람이 40%나 된다는 통계도 나왔다
의도치 않은 낙전 수입까지 생긴 것이다.
그러니 로컬 상점들 입장에서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신박한 모델이었다.

그런데 Groupon이라는 회사가 떠오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을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그들의 사업 추진방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App을 구성하는 템플렛을 플랫폼화 시켜 두었다.
상점과 상품의 사진 및 정보만 업데이트하면
새로운 지역의 서비스가 뚝딱 완성이 되도록 프로세스를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는 여러 도시에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시에 고용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로컬 스토어들을 방문해서 서비스를 소개하고 신규고객을 유치했다.
한 지역에 60개의 고객 상점이 모이는 순간 바로 그 지역 서비스를 오픈했다.
프로세스와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서비스 지역은 급격히 늘어났다.
시카고에서 시작했던 서비스는 보스턴, 뉴욕, 토론토를 지나
2년 만에 북미 150개 도시와 유럽, 아시아, 남미 100개 도시로 확장되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든 것도 아니고 엄청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순한 아이디어와 빠른 사업추진모델만으로 단시간에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었다.
박지웅대표가 말한 단기 사업화라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런 류의 서비스가 아니라 기술 기반 사업을 빠르게 만들어 내고 싶다면
신기술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활용하는 쪽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예전 LG에서 과거 혁신 사례들을 분석했을 때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Zero to One으로 세상에 없던 기술을 최초로 만든 회사보다는
남의 기술을 따라 만들며 완성도를 높이거나
그 기술을 써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 회사들이 세상을 바꿔 왔다는 것이다.

컴퓨터 마우스는 1960년대 말 SRI 연구소에서 최초로 만들었지만

1983년 Apple이 컴퓨터에 번들링으로 제공하며 온 세상에 퍼뜨렸다.

휴대폰은 1970년대 초에 모토로라가 가장 먼저 만들었지만
20년 뒤 노키아가 합리적인 가격과 다양한 디자인으로 인류의 손에 쥐어 주었다.

Apple도 한 때 Zero to One 방식의 혁신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93년 Newton MessagePad라는 펜 기반의 PDA를 최초로 만들었다.

1994년 컴퓨터에 SonyTV를 합친 TV Computer를 최초로 만들었다.

1998년 저가형 교육 전용 노트북인 eMate300을 최초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모두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Apple은 이 경험을 교훈 삼아 기술이 아니라 고객에 집중하기로 했다.

세상에 없던 기술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완벽하게 조합하여 고객이 충분히 이해할만한 혁신을 만들어 냈다.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iPhone 프로젠테이션을 생각해 보라.

"아이팟, 폰, 인터넷, 아이팟, 폰, 인터넷...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보다 더 간결하고 명쾌할 수 있을까?

2001년의 iPod가 그랬고, 2007년의 iPhone이 그랬으며,

2010년의 iPad, 2015년의 Apple Watch, 2016년의 AirPods가 그랬다.

그 누구도 Apple을 Copy Cat이라 욕하지 않는다.

비록 Zero to One은 아니었지만

One to Million을 너무 완벽하게 해내서 전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빠르게 사업을 만들어 내기를 원한다면

고객의 Pain Points를 바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내든지

기존의 기술들을 완성도 높게 조합하여 새로운 편의를 제공하면 된다.

숙성의 시간을 통해 세상에 없던 기술을 만드는 것만이 혁신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Zero to One인지 One to Million인지가 뭐 그리 중요할까?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 고객에게 사랑받을 자신이 있으면 그걸 하면 되는 것이고

세상에 있던 걸 더 잘 만들어 더 많은 고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걸 하면 된다.


어차피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승부는 고객이 결정한다.

고객이 내는 돈이 내가 만들어낸 가치다.

가치를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만들면 될 일이다.


(Trevari meeting,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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