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삶을 향한 여정

by 모아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부채를 가지고 살아가는 두 주인공이 나온다. 먼저 가후쿠는 아내인 오토의 외도를 두 눈으로 목격한다. 그리고 할 얘기가 있으니 집에 일찍 와줄 수 있냐는 오토의 부탁에 알았다고 대답하지만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정처없이 밖을 맴돈다. 그 사이 오토가 죽었다. 미사키는 눈사태가 일어났을 때 어머니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혼자만 도망치고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가 죽었다. 이들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연극제에서 감독과 운전기사로 만나게 된다. 연극제 측에서 가후쿠에게 붙여준 운전기사가 미사키다. 하지만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운전대 넘기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가후쿠에게 차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후쿠에게는 오토가 녹음해준 연극 대사 테이프를 틀고 운전하는 것이 절대 거를 수 없는 습관이다. 설득 끝에 미사키가 시운전을 해보고 나서야 운전대를 완전히 넘긴다.

이제 가후쿠가 해야 할 일은 연극 연출에 집중하는 것. 배우들을 선발하기 위해 연 오디션 현장에 자신이 두 눈으로 목격했던 오토의 외도 상대인 타카츠키가 등장한다. 가후쿠는 그를 주인공 바냐 역할로 캐스팅한다. 하지만 타카츠키는 가후쿠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대 배우와 하룻밤을 보내며 오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내고, 가후쿠와의 술자리에서 자신을 몰래 촬영하던 남성에게 심하게 화를 내는 것을 가후쿠가 말렸다. 그리고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그저 대사만을 읽는 가후쿠의 연습 방식에 따라가기 가장 어려워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타카츠키였다. 최종 리허설 날, 타카츠키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숨기는 것이 서투른 타카츠키에게 감정을 숨겨 대사를 읽기란 배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드디어 감정을 마음껏 표출해야 할 최종 리허설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형사들이 들이닥쳐 그를 체포한다.

앞서 말했듯이 가후쿠와 타카츠키는 반대의 사람이다. 가후쿠가 숨기는 사람이라면 타카츠키는 드러내는 사람이다. ‘체호프는 두려워. 그의 대사를 입에 올리면 나 자신이 끌려 나와. 못 느껴? 그걸 견딜 수 없게 됐어.’ 오토의 죽음 이후 가후쿠는 자신을 끌어 내는 연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타카츠키는 가후쿠에게 타인을 이해하려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타카츠키의 하차로 가후쿠가 바냐 아저씨 역할을 맡게 된다. 연기를 하지 못하게 된 그가 다시 무대에 서야하는 것이다.

가후쿠는 이제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야만 한다. 공연을 앞두고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자신을 그녀의 고향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오래전 미사키가 살던 집에 도착한다. 눈 속에 파묻힌 집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포옹을 나눈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해. 어떤 형태로든. 그게 계속되지. 너와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가야 해. 괜찮아.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비슷한 아픔을 가졌던 두 사람이 드디어 소리 내어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이다.

가후쿠는 마지막 숙제였던 연극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평온을 얻게 되겠지요.” 극중 소냐가 바냐 아저씨에게 건네는 대사다. 결국 우리는 이 말을 받아들이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어쩌면 뻔할지 모르는, 너무 직접적일지도 모르는 말. 하지만 온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지나온 시간들과 결합하며 강력한 의미를 갖는 말.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 여정을 담은 영화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사키가 타고 있는 차는 가후쿠의 차다. 가후쿠가 미사키에게 자동차를 넘겨준 것이다. 그의 일부였다고도 할 수 있는 차를 놓아주었다는 건 그간 가후쿠를 묶고 있었던 집착들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사키에게도 운전은 어떤 의미에서 구속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전이 직업이었으며,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었기에 해온 일이 운전이었다. 그러나 미사키는 이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을 보고 돌아가기 위해서 달린다. 미사키는 드디어 자신을 위해 운전한다. 미사키와 가후쿠가 미사키의 고향으로 가던 길, 카메라는 두 사람이 지나온 긴긴 터널을 비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운전하는 미사키의 앞으로 펼쳐진 탁 트인 도로다. 그간 과거를 돌아보기에 바빴던 두 사람은 이제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