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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Jan 04. 2022

흐름을 짚어보는 것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하여 전시를 관람했다. 주어진 90분의 시간 내에서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들을 선택하여 관람할 수 있었다.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와 <낯선 전쟁>,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H2O> 3개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감상하는 데에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적으면 1개, 많으면 3개의 전시 관람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3개의 전시를 모두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감상을 시작하니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다.


  가장 처음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을 감상하기 전에 도록을 보며 사전 설명을 들었다. 시대 순으로 나누어진 이 전시에서는 한국 미술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 화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대부분의 작품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1부는 개항에서 해방까지, 2부는 분단시대의 서막, 3부는 국제 미술을 향해, 4부는 민주화와 동시대 글로벌리즘이다. 한국 미술은 갑작스러운 개항으로 인해 자국만의 개성보다는 애매한 모방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1부 고희동의 <자화상>은 흔히 한국 미술에서 드러나는 화풍이 아니다. 옅고 섬세한 붓질과 색감이 특히 그렇다. 모네 같은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 같다. 서양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화풍으로 한국의 생활을 담아내서 그런지 어색하기도 하고 오묘하다. 이 작가는 인상주의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이러한 색채를 차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고희동 <자화상>



  또한 김환기의 <론도>는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과 닮았다. 그러나 약간의 재현을 허용한 것 같기도 했다. 오직 캔버스에서의 긴장감과 비연속성을 추구했던 몬드리안의 그림과 다르게 무언가의 형상이 드러난다. 애매한 모방과 차용. <론도>에서 이 시기의 한국 미술의 특성을 잘 느낄 수 있다.


김환기 <론도>



  2부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미술에 대해서는 항상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시기는 일본의 영향권, 즉 친일파가 주를 이루었던 분위기에서 탈피하게 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항상 작가들은 시대 흐름에 맞춰 일괄적으로 같은 방향성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흐름을 주도하는 압력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생성되는 것일까? 3부에서는 이제 조금씩 캔버스를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백남준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재현하기 위한 1부, 2부와는 달리 3부에서는 박서보의 작품같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기록한 작품 등 실험적인 부분이 많다. 점점 이해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읽히는 어떠한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비추어 관람하면 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별세하신 김창열 작가님의 작품도 다시 공부하고 보니 큰 울림을 주었다.)


  4부에서는 흔히 현대미술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1980년대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삶과 인간에 대한 주제가 미술로 확장되는 시기이다. 실험미술, 민중미술, 여성미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개가 펼쳐진다. 또한, 21세기 글로벌리즘 시기를 맞이하여 디지털과 첨단기술, 산업혁명 등이 작품에 녹아있다. 특히 나에게는 <사이보그 W5>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불 <사이보그 W5>


  불쾌한 골짜기라고 하던가, 기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오묘하게 인간상을 띤다. 단독의 하얀 조명을 받으며 공중에 매달려있는 작품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외롭고, 고독하고, 차갑고, 일부를 잃어버린 듯한 형태. 오싹한 느낌까지 들었다. 함께 갔던 선생님께서 매달려있는 높이, 조명, 장소까지 작가가 연출한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만약 내가 느낀 것이 의도한 것이라면, 작가는 정말 정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큰 규모의 전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전시를 관람한 것 같다. 당시 입시를 준비하던 나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다. 작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시장 안에서 이러한 체험을 하는 것이 큰 정신적 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에 파묻혀 사는 삶이란,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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