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보기』 서평 쉽게 쓰기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미술 전공자들의 필독서이자 예술 교양서로 알려져 있다. 소설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존 버거와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크 딥이 제작한 강의 시리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존 버거, 마이크 딥, 화가인 스벤 블롬베리, 도서 편집자인 크리스 폭스, 그래픽 디자이너인 리처드 홀리스, 다섯 명이 공동으로 만들었으며, 총 일곱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네 편은 글과 이미지가 함께 사용되었고, 세 편은 이미지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시각 자료만으로도 다양한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미술작품을 바라봤던 방식이 올바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일들을 단순히 신비한 것으로 포장하거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작품을 해석하는 행동들처럼 말이다.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와 같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목표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10p)’, ‘우리는 단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만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일종의 선택 행위다(11p)’ 우리는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파악해볼 수 있다.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가 개인의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는 방식이 특정한 목적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관습이 있는데, 이 책의 3장, 누드화에 대한 내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초기에 누드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였다. 이후 회화가 유행하면서 <파리스의 심판>과 같은 다른 테마에서도 누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위치와도 관련이 있다. 이전부터 남자의 능력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졌고, 여자의 능력은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대접을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여자들은 개인의 능력을 통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남자들의 보호 아래에 존재했고, 자연스럽게 남자들은 여자를 관찰함으로써 그 능력을 평가하게 되었다. 초기 누드화를 통해 남자가 ‘신의 대리인’으로서 여자를 종속하게 되었음을, 이후에는 아름답다는 자격을 부여하는 ‘심판자’의 역할까지 차지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벌거벗음에 대한 수치심을 드러내는 것에서, 누드를 여성의 능력 - 즉 아름다움으로 정당화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에 따르면 단순히 벌거벗은 몸과 누드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상태인 벌거벗은 몸과 달리 누드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전시되는 예술의 한 형식이다. 즉, 누드화에서 나타나는 부자연스럽고 뒤틀린 자세는 당시 주된 감상자인 남성들을 위해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점차 나라는 존재에 대해 스스로가 가지는 생각보다 ‘타인에게 평가받는 나’의 모습이 중요해졌다.
수많은 그림 속 매끄럽고 풍성하게 묘사된 여자의 몸과 환상적인 분위기는 하나의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누드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통해 누드화가 미술의 한 주제라고 애써 납득하려고 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인식했고, 지울 수 없었던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실제로 이전까지의 보는 방식들에 의문을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그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그러나 익숙한 것들을 바꾸기는 쉽지 않고,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개념까지 사용했기 때문에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 아쉽다. 또한 이미지만으로 구성된 장이 충분히 그 목적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마지막에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살펴보길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77p)’라고 말한다. 떠올려보면 아마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과거의 방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보는 행위가 그저 개인적인 감상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던져졌다. 어떻게 작품을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