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오늘이 지나면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다. 이런저런 약속으로 며칠간 집을 비우고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강화로 오면 12월 중순이 지나게 될 텐데 그때는 완전한 겨울에 접어들었을 때다. 오늘 할 수 있는 월동준비는 대략 마쳐야 한다. 파라솔 지지대의 물통에 부동액을 채우는 일과 이제는 꽃이 뭉그러져지고 줄기가 쓰러진 국화화단을 정리해야 한다. 부동액을 채우는 일은 구매한 부동액이 있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국화화단 정리작업은 꽤 손이 많이 간다. 우선 좌우측으로 국화화단의 넓이가 꽤 되고 우측의 삼각화단은 무성했던 국화꽃의 일부가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어서 차마 잘라서 철거해 버리기가 아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계속 미루고 있다. 시든 꽃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너무 야박한 생각이 들어 어쩌지 못하고 있다. 만물은 늙고, 늙으면 병들고 추해지며 보기도 싫어지는 법이니 시들어진 꽃을 처리하는 것이 뭐가 그리 아쉽냐고 하겠지만 봄부터 순 치기를 하고 가꾼 것이라 서리 몇 번 맞고 초췌해졌다고 금방 뽑아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땅이 얼기 전에 국화대를 걷어내고 빈자리에 튤립 구근을 심어야 하고, 또 아무 탈 없이 겨울을 버텨내야 하는 국화의 뿌리가 얼지 않고 잘 월동할 수 있도록 줄기를 자른 자리에 왕겨라도 듬뿍 뿌려주어야 한다. 이래저래 마음이 급해진다.
한 그루 감나무에는 오직 한 개의 감만 달려있다. 올해 거의 50개가 좀 넘는 감을 수확해서 홍시로 먹었고 5-6개 정도는 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단맛이 들어 홍시가 되기 시작하면 새가 달려들므로 홍시가 되기 직전에 수확해서 2-3일만 실내에 두면 맛있는 홍시가 된다. 나무에 달린 모든 감을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어서 하루이틀 있다가 보면 어느새 새가 파 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파 먹은 감은 그냥 계속 먹게 내버려 두었는데 문제는 새가 처음 파 먹고 반쯤 먹고 난 다음에는 이 홍시가 땅에 떨어져 버리니 떨어진 홍시는 또 새가 먹지를 않는다. 그러고는 또 새로운 홍시를 파 먹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홍시가 되기 직전에 수확을 하고 3-4개를 홍시가 되도록 내버려 두었더니 귀신 같이 알아서 잘도 파 먹었다. 이제는 그 파먹은 홍시도 떨어지고 딱 1개의 감만 남았는데 이 것도 그냥 먹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다. 키가 150 센티미티도 되지 않는 작은 감나무에서 50여 개가 넘는 감이 달렸고 그중에서 90%는 내가 먹고 나머지 10%는 새가 먹었지만 엄청 성공한 셈이다.
감이 익어가는 동안은 나는 거실 유리창을 통해 매일 감의 개수를 세면서 즐거웠다. 가을은 감이 익어가야 정말 가을을 느낄 수 있다. 파랬던 감이 누렇게 변해가고 감나무 잎이 한 두 장씩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감도 빨갛게 익어간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감나무의 감은 셀 때마다 숫자가 달랐다. 덜 익은 감이거나 감잎에 가려지면 잘 보이지 않던 것도 잎이 떨어지고 빨갛게 되면 그 숫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모든 잎을 떨구고 선명한 빛깔의 감만 남은 감나무는 정말 예쁘다. 집사람은 매일 감의 개수를 세는 나를 보고 저거 다 따고 나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홍시를 먹는 재미도 있으니 상심할 것은 아니다. 월동준비로 감나무 아랫부분을 부직포로 감싸고 왕겨도 듬뿍 덮었으니 내년에는 더 많은 감이 열릴 것이다.
올 가을은 감나무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이래서 항상 감사함을 느끼며 또 한 계절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