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일기를 쓰니 좋은 점이 많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과 세수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일기 쓰는 일인데 이렇게 일기를 쓰고 나면 뭔가 한 가지 일을 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든다.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이 정리되고 다음에 할 일을 계획하여 일부를 글로 옮겨보니 재미있기도 하다.
이 '강화도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벌써 햇수로 3년이 되니 작년과 재작년에 무엇을 하였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어제 틀밭 3곳 중 한 곳에 튤립 구근을 심었다. 이 시기에 심는 것이 맞나 망설이다가 일기장을 찾아보니 작년 11월 20일에 튤립을 심었던 것을 기록해 둔 것이 있어서 바로 틀밭으로 나가 삽으로 땅을 파서 구근을 심을 수 있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 방학숙제로 썼던 일기를 제외하고는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고 꽤 장기간인 만 2년 가까이 쓰게 된 것은 강화도로 와서 생활하면서부터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방학 때가 되면 매번 숙제로 일기를 썼으므로 일기 쓰는 일이 몸에 베일만도 한데 국민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한 번도 제대로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숙제로 일기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쓸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어릴 때 이렇게 강요한 것 때문에 청소년기와 성인이 되어서 더 일기를 안 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환갑 지나서 은퇴할 무렵이면 비로소 옛날 생각이 나고 여유도 있어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기 쓰기가 어려운 것은 국민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방학 때마다 그날 써야 할 일기의 소재를 찾지 못해 연필을 들고 망설였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비슷하다. 연필이 아닌 키보드를 두고 뭘 쓸까 망설이는 시간도 적지 않다. 매번 날씨나 기분, 몸 상태 등을 쓰게 되는데 너무 비슷해서 나중에 읽어보면 좀 식상하기도 하다. 또 일기라는 것이 기승전결이나 서론, 본론, 결론과 같은 완결된 문장형태가 아니다 보니 뒤죽박죽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요즘은 가급적 생각한 느낌이나 주제 하나를 중심으로 써보려고 하는데 그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가지 주제만 쓰면 또 일기로서의 맛도 없어지므로 어쩔 수 없어 두서없는 생각을 적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일기이므로.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이순신 장군인데, 그분이 쓴 난중일기를 보면 정말 존경심이 절로 난다. 생사를 오가는 전쟁 중에 일기를 쓴다는 것도 정말 대단하다. 이순신 장군을 오늘날 존경받게 하게 한 것이 바로 그 ‘난중일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그의 전공(戰功)은 물론이고 장군으로서의 인품이 지금까지 알려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급 군인 한 명까지도 그날의 전쟁에 참여한 병사 이름을 일일이 장계에 기재하여 상부에 보고하는 내용이 기재된 난중일기를 보고는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이나 군사가 상관을 존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순신처럼 해야 한다.
나는 국가와 백성을 위한 전쟁은 아니지만 나의 난장(亂場)인 강화도에서 이 일기를 쓰면서 또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