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부 이력
공직을 그만두고 또 환갑이 지나면서 공부할 일이 거의 없어졌는데 다시 조금씩 공부를 한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면서, 이제부터는 새로이 공부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고 특별히 뭔가를 위해 공부를 하지는 말자, 이제는 나를 위해 즐겁게 살아가기만 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대형 로펌 변호사를 하면서는 주로 형사사건을 다루었고 24년의 검사생활을 한 나로서는 변경된 판례를 익히는 것 외에 새로운 공부는 잘하지 않았다.
그러나, 검사 업무를 하는 동안은 매일매일 새로운 공부를 해야 했다. 매일매일 배당되는 사건들이 새로운 사건이고 전문분야의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건축이며, 환경, 법의학, 컴퓨터, 조세, 회계, 특허, 금융 등 그 사건에서 문제 되는 분야들에 대하여는 새로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검사를 시작한 지 3-5년 되었을 때까지는 서점에서 새로운 분야의 책을 사서 사건 해결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했다. 물론 그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해당분야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지식만 공부하면 된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조사를 하면 당사자가 ‘검사님이 어떻게 이걸 아시냐고’하는 분도 꽤 있었고, 사건 처리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므로 그때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수사를 했었다.
중견 검사가 된 후에는 주로 기업범죄, 공직비리, 금융범죄 등 특별수사 분야의 일을 주로 해서 조세나 회계, 금융 관련 공부를 주로 하였다. 압수수색한 회계장부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 분개, 경리 업무뿐만 아니라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의 수사를 하기 위한 꽤 깊이 있는 회계지식도 쌓아야 했다. 서점에 나와있던 ‘알기 쉬운 회계장부’ 등 ‘알기 쉬운 000’ 시리즈를 시작으로 좀 더 깊이 있는 전문 서적을 구입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지검 특수 1부에서 파생금융상품 관련 사건 수사 당시에는 파생금융상품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생소한 최신 금융기법에 대한 원리 등을 주로 책으로 공부하였고 이를 토대로 해서 금융감독원 직원과 은행, 금융부띠크 회사의 피의자들을 상대로 파생상품의 원리며 구조 등을 파악, 수사하여 꽤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보다 한참 전인 초임검사 때인 1994년 무렵에는 컴퓨터를 다루는 검사들이 매우 적을 때였는데 컴퓨터 기초인 도스 등에 대한 것부터 책으로 공부했고, '천리안'과 '하이텔'이라는 전화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란 CD롬과 아래한글 2.1 복제본 등을 제작, 판매하는 조직을 적발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검찰청에서 타자기를 이용하여 조서를 작성할 때인데 개인 돈으로 구매하여 사용하던 컴퓨터로 한글 프로그램 복제 조직을 적발하였으니 대단하게 여겨졌고, ‘전국 최초의 컴퓨터 수사검사’라는 칭호를 얻어 검찰총장 상을 받기도 했으니 검사시절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었다.
물론 그 시절의 수사를 위한 아주 초보적인 공부에 불과하였으니 공부라고 하기도 민망할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당분야에 대한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등 업무를 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되어서는 거의 평생을 해 온 공부가 하기 싫어졌고 잘 모르는 분야는 전문 분야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특별하게 공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강화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면서 강화군 노인복지관 직원으로부터 상담의뢰를 받았는데 8명의 상담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법률문제가 대부분 민사, 상속, 유언 등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사실 상속, 유언에 대한 것은 사법시험 공부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뤄본 일이 없었으므로 도리 없이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오랜만에 민법의 상속 편에 대한 공부를 해보니 새롭고 재미있다. 민법의 가족법과 명의신탁에 대한 법리, 판례 등이 참 많이 바뀐 것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나이 들어 안 하던 공부를 다시 하니 재미있기는 한데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문해력이 떨어져서 진도가 그렇게 빨리 나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조금씩 공부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좋다.
남들보다 튼튼한 체력을 타고난 것은 아니라서 육체적 노동으로 봉사할 수는 없고 이런 방식으로라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냐.
돈을 안 받으니 돈값을 해야 할 채무가 없어 내가 항상 갑(甲)이다.
공부한 만큼,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