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서의 일상

나는 매일 이렇게 산다

by 프로스윤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흐린 날씨 덕분에 일출시간이 훨씬 지난 6시 반 무렵에 잠에서 깼다. 어제 사료를 덜 먹더니 새벽부터 배가 고팠던지 길고양이 ’팡팡이’ 혼자 창가 캣타워에서 나에게 빨리 나오라는 시늉으로 방충망을 긁는다. 야생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방충망을 긁으면 웬만히 튼튼한 방충망도 견디기 어렵다. 얼른 나가서 사료부터 챙겨준다. 우리 집에 오는 새끼 길고양이 세 마리는 이제 맨 사료만 주면 잘 먹지를 안는다. 참치 통조림을 섞어서 주어도 잘 안 먹는다. 아내와 옆집 아주머니는 사료에 고기국물이나 북엇국, 멸치 등 맛있는 것을 자주 섞어 주다 보니 내가 주는 참치 통조림은 입에 당기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아주 드물게 냉동된 날고기를 조금 녹여서 주거나 츄르라는 간식을 줄 때도 있지만 사료에 섞는 참치 통조림 이외에는 잘 안 준다. 아내나 옆집 아주머니처럼 항상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 그렇게 길들여지면 사냥은커녕 야생으로서의 본능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더 이상 밖에서 살아남기도 힘들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양이 밥을 주고 나면 문가에 세워 둔 막대기를 들고 정원으로 나선다. 혹시라도 잡초 사이로 유혈목이가 나올 수도 있어서 꼭 막대기로 톡톡 치면서 정원과 틀밭을 지나간다. 작년에 뱀 퇴치용 크레졸 비누액을 곳곳에 두고 뱀이 싫어한다는 소리를 내는 태양광 뱀퇴치기도 설치했다. 작년에 태어난 길고양이 새끼 세 마리가 매일 잔디밭에서 뛰놀기 시작해서인지 이런 도구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올해는 뱀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제일이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지팡이용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


지난 목요일에 잔디밭 중앙의 대형 화분에 심은 미니 백일홍은 꽃이 피었다. 현관 데크 앞에 새로 설치한 길쭉한 방부목 화단에 심은 백일홍은 봉오리만 맺혔지 꽃이 피지는 않았다. 한참 줄기를 뻗고 있는 오이 틀 밭에서 백오이 두 개를 땄다. 내일은 백오이 한 개와 청오이 한 개를 또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오이가 생산되는 바람에 다 먹을 수 없어서 냉동시킨 오이만 해도 열 개가량 된다. 옆집에도 텃밭에서 오이와 호박을 생산하고 있어서 굳이 나눠줄 필요도 없어 그냥 남는 것은 냉동시키고 있다. 해동된 오이를 잘게 썰어서 소금과 깨소금을 넣고 버무리면 맛있는 오이무침이 되므로 계속 열리는 오이를 따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계속 따줘야 또 새로운 열매가 맺히므로 오이 윗부분이 누렇게 되기 전에 미리 따줘야 한다.

삼각화단의 국화는 너무 웃자라서 키가 50센티미터도 더 됐다. 6월 초에 순 치기를 해줬더니 새 줄기들이 빽빽하게 나와서 완전히 화단 전체가 국화로만 채워졌다. 아내는 꽃은 드문드문 색색이 있어야지 한 가지 색으로 뒤덮이면 보기가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융단처럼 노란 국화로 채워진 모습이 더 좋아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제 다시 더 순 치기를 할 수도 없다. 지금 순 치기를 해버리면 꽃눈이 잘릴 수도 있어서 정작 가을에는 꽃을 못 볼 수도 있다. 좌측의 에메랄드그린 나무 뒤편 맥문동도 키가 40센티미터가량 자랐다. 잡초를 방지하기 위한 지피식물로 그늘에서 잘 자라는 맥문동을 나무 아래에 심은 것인데 2년이 채 안되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간간이 보이는 키 큰 풀만 뽑아주면 될 정도이고 처음처럼 매주 제초작업을 해야 할 단계는 지난 것 같다.

문제는 에메랄드그린 나무 앞 잔디밭에 길고양이 ‘하트’가 항상 똥을 누고 있어 골치 아프다. 다른 녀석 두 마리는 화단의 흙에 똥을 누고 제 발로 덮기라도 하는데 이 녀석은 꼭 잔디에 그대로 눈다. 그래서 항상 거기로 갈 때면 조심조심 가고 작은 삽에 모래를 반 삽정도 가지고 가서 뒤처리를 한다. 고양이 똥은 냄새도 심하고 내버려 두면 파리가 끓어서 정말 괴롭다. 대문 밖에 넓은 풀밭도 많고 흙이나 모래가 있는 공터를 두고 왜 잔디 위에 누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녀석들 때문에 유혈목이가 나타나지 않고 집사람이나 딸들이 좋아하니 계속 고양이 똥을 치울 수밖에 없다. 공터에 좀 더 편안한 모래밭을 마련해 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정원을 순찰하고 나면 시장해서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은 어제저녁에 불려 둔 서리태를 갈아 두유를 만들고 틀 밭에서 딴 오이, 방울토마토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보통은 계란 프라이를 해서 함께 먹는데 여름이 되니 화구에 가기 싫어져서 그냥 간단하게 먹게 된다. 대신에 점심은 좀 시간을 들여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요즘은 밭에서 내가 생산한 오이, 호박, 방울토마토, 고추 등으로 야채 볶음이나 무침을 하고 그 위에 계란물을 부어서 야채 부침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찐빵 2개를 데우거나 인절미 세 개 정도를 해동하여 함께 먹는다. 아무래도 단백질이 부족할 듯하여 단백질 보충제를 추가로 먹는다. 저녁은 좀 더 잘해 먹는다. 야채와 버섯으로 라면, 국수, 스파게티, 어묵탕, 배춧국 등을 만들고 냉동해 둔 잡곡밥을 해동하여 먹기도 한다. 물론 이런 요리들은 아내가 있어도 대부분 내가 한다. 강화에서는 내가 요리를 하는 것으로 정했고 가끔 아내가 요리를 하면 적어도 설거지는 내가 한다. 강화에서는 요리가 생활의 중요 부분이고 그 자체로 수행방법이다. 요리를 하면서 깨달은 것도 많다. 소금만으로도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조미료 없이도 재료의 배합에 따라 감칠맛이 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별 특별하지도 않은 재료로 요리라는 행위-볶거나 삶거나 무치거나 끓이는-를 통해 나의 감각 작용인 맛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엄청 신기했다. 소금은 왜 짠맛이 날까 같은 의문에서부터 나는 이 맛을 왜 짜다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까지 꽤 복잡한 질문들도 스스로에게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책이나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는 일도 많아졌고 요즘에는 이런 궁금한 것들을 생성형 AI에게 자주 물어본다. 또 그전에는 아내가 해 주던 요리들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먹기만 했는데 요리의 과정을 내가 직접 해보니 재료 구입부터 손질, 조리까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강화에서는 이런 요리가 생활이고 수행이고 또 즐겁다.


아침을 먹고 나면 주로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쓴다. 나이가 들어서 눈이 침침해지고 난독증 같은 것이 생겨서 오래 책을 볼 수도 없다. 일기는 매일 쓰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 국민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로 하던 것을 환갑 지나서 그렇게 하기 싫던 일기를 쓰려고 하니 쉽지가 않다. 그래도 가급적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기는 쓴다. 아이들이 있는 서울 집으로 가거나 여행을 할 때는 자주 빼먹는다. 강화에서 아무 일 안 할 때도 안 쓸 때가 있다. 써야 하는 동기가 없다가 보니 왜 쓰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서 그만두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내가 이렇게 1년 6개월가량 쓴 일기를 모아서 ‘나의 강화도 일기‘로 1인 출판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계속 써보려고 한다.


일기를 쓰고 나면 주로 무료 법률상담 준비를 한다. 로펌 변호사를 그만두고 강화로 오면서 시작한 일인데 벌써 1년 6개월이 되었다. 내가 24년간을 검사로 일했고 로펌 변호사로서 7년 정도 보냈으니 이제는 뭔가 남들을 위하여 되돌려줄 때가 됐는데 그래도 제일 잘 아는 것이 법률 쪽이므로 법률상담을 하기로 했다. 이곳 강화도에는 상주하는 변호사도 없어서 수요가 있을 듯하여 전국 자원봉사 포털을 통하여 정식으로 등록을 하여서 2024년 2월부터 강화군 노인복지관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한 달에 1-2번 정도 상담을 나가는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상담도 많아서 꽤 준비를 하여야 한다. 강화에는 노인 인구가 많아서 주로 상속, 유언 등에 관한 상담이 많고 민사적 분쟁에 관한 상담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새로이 공부를 하고 잘 모르는 부분은 옛날에 근무하던 로펌 후배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래도 재미있다. 역시 돈을 받지 않고 봉사로 하니 의무가 아니라 자부심이 생기고 일할 맛이 난다. 이런 느낌도 강화에 와서 알게 됐다.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일이나 현관 앞 데크의 썩은 방부목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등 제법 일 같은 것을 좀 한다. 잔디를 깎는 일, 봄에 오이, 가지, 토마토, 호박, 수박 등을 심고 가꾸는 일과 철쭉나무 사이로 무섭게 올라오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 튤립 구근을 심고 국화를 삽목 해서 화단 곳곳에 옮겨 심는 일,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배롱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일, 방부목 교체나 방부목에 오일스테인을 바르는 일들은 꽤 힘이 드는 일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하면 되는 일이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어서 노동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게을러지면 금방 표시가 나는 일이라서 안 할 수가 없다. 정원이나 틀 밭에 나가서 수시로 잡초를 뽑고 나뭇가지를 바로 잡아주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물론 항상 이런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수시로 용진진 앞 제방길이나 강화 나들길을 따라 산책을 나가고 강화 읍내에 있는 탁구장에 나가서 아내와 한 번씩 탁구도 친다. 탁구 동호회에 가입하여 정식 회원이 되었는데 그렇게 자주 나가지는 못한다. 또 1-2주에 한두 번은 서울에 나가서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경조사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모임은 강화로 오면서 많이 줄였다. 변호사 할 때는 매일 점심, 저녁 약속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거의 약속을 하지 않는다. 꼭 가야 할 모임 이외에는 잘 가지 않는다.

저녁 때는 거실에 설치된 빔프로젝트로 넷플릭스 영화나 유튜브를 보기도 하는데 TV는 잘 보지 않는다. 처음부터 거실에 TV를 설치하지도 않았고 축구중계를 보기 위하여 서재로 사용하는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축구 중계를 주로 본다.


내가 강화에서 생활한다고 하니 지인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고 묻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서 꿈같은 생활을 한다고 하기도 한다. 강화에서의 생활은 전혀 심심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 길고양이 밥 주고, 밥 해 먹고, 정원 가꾸고, 운동하고, 산책하고 책도 좀 보면서 지내니 바쁠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바빠서 매일 해야 할 분량을 빼먹는 날이 종종 있다. 그렇다 하여 이런 생활이 남들이 말하는 꿈같은 생활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선택한 삶이다. 돈 버는 변호사를 하기 싫어서 변호사를 그만두고 이런 생활을 하기로 내가 선택한 것이니 즐겁다. 무료 법률상담 봉사하는 횟수도 좀 늘릴 생각이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이 그 일이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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