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일기

생각의 차이

by 프로스윤

I. 이제 3월도 거의 반이 지났다. 시간이 속도가 아님에도 날짜가 바뀌고 달도 바뀌고 절기도 바뀌고 하는 것을 ‘참 빠르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느껴진다. 속도가 시간의 함수라는 물리적 지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감각과 언어는 절묘하게 결합되고 표현된다.


강화의 겨울은 참 길다고 생각됐는데 어느새 3월이 되었고 튤립 싹이 뾰족이 얼어붙었던 흙과 왕겨층을 뚫고 올라왔다. 날씨가 추워 외부 활동이 줄었고 활동이 줄어듦에 따라 생각도 움츠려졌다. 그래서 겨울은 할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인데 봄이 되면 참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작년에 만든 길쭉한 화단에 데이지라도 사다가 심고 데크를 침범한 잔디 뿌리를 캐내야 한다.


좀 더 따뜻해지면 자전거를 타고 좀 더 멀리 나가게 될 것이다. 작년 10월쯤 자전거를 탄 이후 한 번도 자전거를 타지 않았는데 이제 슬슬 자전거 근육도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2008년에 자전거를 사서 한강 주변을 거의 10년 가까이 열심히 타다가 그 이후에는 아예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작년에 강화로 와서 조금씩 다시 타기 시작했는데 나의 다리 힘만으로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것이 힘들어서 얼마 전에 전기 모터를 원래의 자전거에 달았다. 평소 힘의 반만 써도 어느 정도 속력으로 갈 수 있으니 참 편하다. 자전거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대로 느끼면서 힘은 덜 드니 얼마나 좋으냐?

함께 열심히 자전거를 탄 친구들은 내가 전기 모터를 설치한 것을 두고 '변절자'가 됐다고 말한다. 힘이 들어 편하게 가고자 하는 것이 일제에 협력한 변절자 취급을 받다니. 나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전거를 타면서 스스로 즐거우면 된다. 그와 자전거 타기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모터를 달든 다리 힘으로 페달을 밟든 봄날을 즐길 수 있으면 뭘 해도 상관없다. 벚꽃 휘날리는 제방뚝길을 자전거로 달릴 날이 다가온다.


II. 엊그제 서울에서의 저녁 모임에서 어느 선배가 자신은 고가의 예술품, 미술작품 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를 구매하고 감상하면서 대단하다고 평하는 것은 인간의 허영심의 외적 표현에 불과하고 그런 예술품이 인생의 문제에 대한 어떤 해답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과 예술관을 섞어서 삶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넋두리이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나는 아직 미술이나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미술작품이나 음악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감동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10여 년 전에 미국 방문길에 꽤 오랜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낸 적이 있지만 그때에는 내가 책에서 본 그 위대하다고 칭해지는 예술작품의 진품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감흥 때문에 그렇게 감동한 것일 수 있다. 모조품을 전시해 놓았더라도 나는 그 진위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내 감동은 동일하였겠지만 나의 그 감동이 그동안 쌓인 미술작품에 대한 얄팍한 지식들의 조작된 결과물이라고 비난할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작품을 알고 있었으므로 느낄 수 있었던 그 감동과 전혀 처음 보는 것임에도 엄청나게 느껴지는 감동이 다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잘 알지 못하는 처음 보는 것에 대하여 감동이 느껴질지 도 의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위에서 나온 감동이면 어떤가? 내가 감동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도 강화에서 감동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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