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기억

어느 봄날의 기억

by 프로스윤

마지막 꽃샘추위인지라 아침은 영하의 기온이지만 낮부터 영상으로 회복하여 8도까지 올라가고 지금부터는 큰 추위는 없다고 한다.

오늘은 튤립 화단과 틀 밭의 부직포를 철거했다. 튤립은 3-4일 전부터 싹이 움터서 이제는 햇볕이 더 따사로울 것 같아서 저녁에 덮고 아침에 걷어 주던 흰색 부직포를 완전히 제거했고, 마늘과 쪽파 밭에 덮은 천으로 된 부직포는 활대와 구조물들을 철거하여 처음으로 마늘, 쪽파에게 찬바람을 쐬게 했다. 아직 찬 날씨지만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던 겨울을 견뎌낸 튤립, 마늘, 봄동 들이라 이런 날씨는 시원하고 오히려 생육에 더 좋을 것이라는 이웃의 권고도 있어 과감하게 부직포를 철거한 것이다.

사실 정원의 화단, 텃밭에 겨울 내내 흰색 부직포가 덮여 있고 찌그러진 구조물 위로 펄럭이는 부직포 자락들로 인해 정원의 모양이 좀 볼썽사나웠는데 이것들을 걷어 내고 나니 마늘과 쪽파, 봄동의 파란 빛깔이 누렇게 된 잔디의 색깔과 대조적으로 생동감이 있고, 노랗게 뿌려진 왕겨 위를 뾰족이 올라오는 튤립 새싹들은 정말 싱그럽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작년에 심은 청경채가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말라죽은 틀 밭 두 곳에는 삽과 괭이로 땅을 깊게 파 흙을 갈아엎고 그 위에 전 집주인이 두고 간 계분을 넣고 다시 섞어 주는 작업을 하였다. 이렇게 가축분으로 거름을 하면 채소 등이 튼튼하게 자란다는 계분 포대의 설명서대로 충실하게 밭갈이를 하였다.


나 어릴 때 이맘때면 아버지는 집 헛간에 여름부터 모아둔 두엄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논밭으로 가고 나는 리어카를 뒤에서 밀거나 염소를 끌고 밭 기슭으로 가서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풀의 새순을 뜯어먹게 하고는 혼자서 비석 치기를 하곤 하였다. 그때 아버지가 뿌린 거름은 지금과 같이 계분에 여러 영양소들을 배합, 발효시켜서 비닐포대에 잘 포장한 것이 아니라 여름부터 가을까지 풀을 베어서 모았다가 그 위에 소나 염소의 배설물들을 끼얹어 삭힌 것으로 냄새도 심하게 났다. 풀과 짚에 덜 삭힌 쇠똥도 그대로 들어있기도 했음에도 아버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만지며 거름을 뿌렸다.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농토가 넓지도 않고 소출도 많지 않아 항상 힘든 생활이었고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그 무렵 봄은 특히 힘든 시기였다. 추수 후 2-3개월이 지나서 쌀이 떨어지고 보리쌀도 나오기 전이므로 오로지 고구마나 취로사업에서 받은 밀가루로 버텨야 했다. 셋째 형은 중학교 졸업하고 얼마 안 된 봄이 올 무렵 진주의 약방에 밥만 먹여주는 조건으로 사환으로 갔다. 입을 하나 던다는 것은 엄청 큰 도움이 되는 시기였다. 둘째 형은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우리 농사 정도는 아버지와 어머니 힘만으로 충분히 지을 수 있다고 하며 농사철이 오기 전에 옆 동네 오서리에 있는 부잣집 머슴으로 갔다. 둘째 형이 머슴으로 가던 날 그 해 세경으로 쌀 가마니 두어 개를 그 집 머슴들이 지고 왔는데 어머니는 방 안에서 그 광경을 보고 참으로 많이 울었다. 자식이 머슴으로 가서 받아온 쌀을 먹을 수 없다고 며칠 동안 어머니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런 봄날이 내 어릴 때의 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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