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잠깐 다녀왔다

당신은 어디에?

by 뜰에바다

"당신의 잘됨이 나의 기쁨입니다."


나는 지난주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으로 잠깐 지옥을 다녀왔다. 이석증이라고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혹시 뇌 문제인가 싶어 쓸데없는 근심이 앞섰다. 몸은 멀쩡한데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그 순간, 사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알았다. 서양에서는 사람이 분노할 때. '지옥에나 가라(Go to hell!)'라고 말한다지만, 막상 그 지옥을 조금이라도 맛보니,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 말인지 알았다. 지옥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단순한 비유일까?


당신은 세상살이하면서 작은 '천국'과 '지옥'을 자주 경험한다. 기분 좋은 날, 일이 잘 풀리는 날, 소통이 잘 되는 순간은 천국 같다. 몸이 무너지고, 관계가 깨지고, 마음이 흔들릴 때는 지옥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이 단순한 비유일까?

천국과 지옥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당신이 삶 속에서 스치듯 맛보는 그것은 실제요, 현실의 일부다.


예수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그것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준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 있다가 눈을 들어 보았다.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나사로가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았다." (누가복음 16:23)

흥미로운 사실은 천국과 지옥을 가장 많이 말한 이가 바로 그 천국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극명하게 갈리는 두 세계


그렇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을 조금 더 또렷하게 대조해 보자.


첫째, 빛과 어둠이다

천국은 눈부신 아침 햇살처럼 어둠 한 점 없이 모든 것이 환히 빛나는 세계다. 눈이 시릴 만큼 맑은 빛, 그 안에 사랑이 가득하다. 반대로 지옥은 빛이 단 한 줄기도 없는 곳이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어둠이다.

둘째, 찬양과 절규다

천국은 모든 숨결이 노래다. 감사와 기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지옥은 소리는 있지만 음악이 없다. 후회와 원망, 고통의 절규만이 영원히 메아리친다.

셋째, 생명과 죽음이다

천국은 생명이 흐른다.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지옥은 멈춘 고통이다.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는 채, 반복되는 고통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당신은 하루에도 수없이 선택한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무엇을 살지.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선택은 미룬다. 왜일까?


선택을 미루는 이유 3가지


첫째,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해서'다.

천국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신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당장의 쾌락은 달콤하다. 빛은 오히려 당신의 어둠을 드러내기에 부담스럽다. 그래서 사람은 빛을 알면서도 피한다.

둘째, '실제가 아닌 상징으로 여겨서'다.

눈앞의 세상은 분명하고, 천국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붙잡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미룬다.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드러날 현실이라면, 이 선택을 이렇게 가볍게 미룰 수 있을까?

셋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다.

의외로 '나는 착하게 살았으니 굳이 천국이 없어도 괜찮아.'라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 말은, '나는 신 없이도 충분하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과대평가한 교만이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천국은 강요되지 않는다. 지옥도 강요되지 않는다. 신은 누구에게도 '지옥에 가라'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신 없이 살겠다'라는 선택, 그 결과가 곧 '지옥'이다.



나는 지난주 잠깐의 어지럼 속에서 지옥을 스쳤다. 그리고 알았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오늘도 선택한다. 아주 사소한 선택들 속에서, 사실은 방향을 정하고 있다. 천국인가? 지옥인가? 오늘,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