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피의 계산서'

by 뜰에바다

많은 사람이 '십자가'를 목에 거는 액세서리나 밤하늘을 수놓는 교회의 예쁜 조명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본래 십자가는 아름다운 상징이 아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잔혹하고, 치욕적이며, 고통스러운 형벌을 집행하던 '최악의 사형 틀'이다.


십자가형에 이르기 전, 예수가 당했던 채찍질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채찍 끝에는 날카로운 뼛조각과 납덩이가 달려 있었고, 그것이 휘둘러질 때마다 살점이 갈고리에 걸린 듯 찢겨 나갔다. 그의 등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졌고, 피와 상처로 뒤덮여, 사람이라기보다 '핏덩어리'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거대한 못이 손과 발을 관통해 십자가에 박혔고,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는 숨을 쉴 때마다 체중이 상처를 짓눌러, 호흡이 고통이었고, 고통은 곧 질식으로 이어졌다.

성경 속 예수는 고요히 조용하게 눈을 감은 것이 아니다. 그는 비명과 피 칠갑 속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렇다면 왜, 신의 아들이라는 그가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을까?


1. 죄의 대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당신과 나의 죄에 매겨진 '대가' 때문이다. 당신은 한 번씩 '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품었던 증오와 탐욕, 감추어 온 음란과 비겁함,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의 어두운 구석을 신 앞에 펼쳐놓는다고 상상해 보라.

우주는 정의롭기에,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 죄의 대가는 '영원한 단절(죽음)'이다. 그래서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당신과 내가 앉아야 할 형벌의 자리에 대신 앉았다. 당신과 내가 치러야 할 그 끔찍한 계산서를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결제한 것이다.


2. 상식을 넘어선 '미친 사랑'

십자가는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다. 이성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사건도 아니다. 어떤 왕이 반역을 저지른 노예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사형장에 내어주겠는가! 십자가는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닌, 인류를 향한 신의 절규다.

"너를 포기하느니, 내가 대신 그 자리에 서겠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일이 우연히 일어난 비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 이미 성경은 그 고난을 예언하고 있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사실 앞에서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누군가가 당신을 대신해 몸이 찢기며 죽었다면, 그것을 그저 "좋은 이야기네요"라고 넘길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그의 희생을 모욕하는 일이다.

십자가 앞에는 중간이 없다. 십자가를 나와 무관한 이야기로 치부하며 지나가든지, 십자가의 그 피가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그 사랑 앞에 서든지, 둘 중 하나다.



지금도 십자가는 묻는다.

"내가 너를 위해 내 생명을 내주었는데, 너는 나에게 무엇을 내어줄 것이니?"

이 물음 앞에 멈춰 서면, 거기에는 용서와 생명이 있다. 외면하고 지나간다면, 언젠가 스스로 그 대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