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지속성

by 뜰에바다

(직장에서 가장 빨리 승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일까? 아니다. '퇴사하지 않는 사람'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사실이다. 직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깨닫는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결국 중심이 된다.)


인생도 비슷하다. 연초에는 누구든지 다 잘 나간다. 목표가 또렷하고, 의욕도 크다. 문제는 3월이다. 꽃은 피는 데 마음이 지치기 시작한다. 6월이 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9월쯤 되면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걸 왜 시작했지?'

시작 선에는 사람이 많다. 결승선에는 소수만 남는다. 그래서 조직과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은 시작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사람이다. 지칠 때도,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박수 소리가 사라졌을 때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 말이다.


1.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다

당신은 속도에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다. 빨리 결과를 내야 인정받고, 빨리 성장해야 박수받고, 빨리 성공해야 가치 있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 너무 빨리 달린다. 처음 두 달을 전력 질주하고, 나머지 열 달을 방전된 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한 번의 프로젝트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다음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열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지속성은 화려하지 않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직은 결국 지속하는 사람 위에 세워진다. 그는 매일 제시간에 온다. 크게 튀지 않지만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진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래서 조직에서 진짜 신뢰는 '와, 저 사람 대단해!'가 아니라, '저 사람은 믿고 맡겨도 돼.'라는 말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두 개의 냄비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한 냄비에는 감자를 넣었고, 다른 냄비에는 달걀을 넣었다. 시간이 지나자 감자는 부드러워지고 달걀은 단단해졌다. 둘 다 뜨거운 물속에 있었는데,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인생은 피곤함, 스트레스, 실망 같은 뜨거운 물속을 지나간다. 그때 어떤 사람은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단단해진다. 차이는 능력이 아니다. 끝까지 하느냐, 다.


2. 예수, 속도보다 방향을 선택했다

예수의 삶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화려하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도 아니었고, 거대한 조직의 지도자도 아니었다. 세상을 단번에 뒤집지도 않았다. 오히려 느려 보였다. 사람 한 명을 만나기 위해 멈추었다. 병든 사람 곁에 오래 머물렀다. 배신할 사람을 알면서도 끝까지 품었다. 예수는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방향을 잃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방향, 진실을 말하는 방향,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방향을. 그리고 끝까지 그 길을 걸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


또한 예수는 손뼉 칠 때만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오해받을 때도, 버림받을 때도,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같은 길을 걸었다. 그 삶은 실패처럼 보였다. 그러나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삶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속도는 순간을 만들지만, 지속은 역사를 만든다.


처음에는 화려했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평범했지만 3년, 5년, 10년이 지나며 조직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왜일까? 그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수해도 다시 일어났고, 평가가 낮아도 그 자리를 지켰고, 인정받지 못해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늘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 속에서 산다. 그래서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워하고, 조금만 흔들려도 낙심한다. 하지만 조직이 원하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사람이다. 오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루, 한 달, 한 해를 지나가다 보면 어느 날 당신은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생각보다 멀리 와 있구나.' 왜냐하면 당신은 끝까지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