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gain

거듭남

by 뜰에바다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거듭난 사람의 별명은 무엇일까? 'New-나' '새사람'. 그렇다면 거듭남의 반대말은? '그대로')


많은 사람이 교회 다니는 것을 '좀 더 착하게 살아보자'라는 도덕 캠페인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변화는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다. 단순히 행동을 조금 고치는 도덕 수준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 자체가 바뀌는 일이다. 설사 평생 기준에 못 미칠지라도 말이다.


1. 애벌레와 나비

애벌레는 열심히 기어다닌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산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하늘을 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애벌레의 본질이 '나는 존재'가 아니라 '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날개가 생기고, 시야가 달라진다. 땅을 기어다니던 존재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다. 땅 위의 잎사귀에만 매달려 살던 삶을 끝내고,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더 착해지려고 애쓰는 애벌레'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본질이 바뀐 나비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거듭남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교회 출석도 기준이 아니다. 거듭남이란 내 인생의 주인이 '나'에서 '예수'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 변화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 변화가 어떤 사람은 오래 걸린다. 어떤 사람은 한순간에 일어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생의 운영체제가 바뀐 것이요, 삶의 모든 앱이 달라진 것이다.


2. 니고데모

성경 속에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종교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그가 예수를 찾아왔다. 왜 하필 밤이었을까? 낮에는 완벽했지만, 밤에는 공허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가 그에게 말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한복음 3:3)

니고데모는 이해하지 못했다.

"제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


그는 육체적인 탄생을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는 영적인 탄생을 말하고 있었다. 거듭남은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그저 당신 안에 들어온 '새 빛'을 온 마음으로 받는 것뿐이다. 선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생 더 나은 애벌레가 되려고 애쓴다. 조금 더 성실하게, 조금 더 도덕적으로, 조금 더 착하게. 하지만 예수는 "조금 더 나은 애벌레가 돼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는 모든 인생에게, "거듭나라."라고 천명했다.

당신은 어떤가? 여전히 '그대로'인가, 아니면 새사람(New-나)인가?

예수는 오늘도 당신에게 묻는다. "애벌레로 살 것인가, 나비로 살 것인가?" 차제에 당신이 이렇게 기도하면 어떨까?

(제 노력으로는 거듭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이미 열려있는 은혜의 선물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여전히 '그대로'에 머물러 있는 저에게 날개를 허락하시어, 어서 애벌레의 삶을 지나, 나비의 자유로 비상하게 하소서.)

토요일 연재